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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연 Mar 13. 2018

엄마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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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힘들어?
응. 힘들어.
나 때문에 힘들어
아니. 너 때문에 안 힘들어.



나 좀 힘들게 하지 마.

너무 힘들어 죽겠어.


사춘기를 겪던 소녀는 엄마와 종종 언성을 높여 다투곤 했다. 너무 힘이 들었다. 주변에는 온통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뿐이었다. 공부가 힘들고, 어른들이 힘들고, 살아가는 일이 힘들었다. 날 힘들게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러나 내 말은 어른들에게 말대꾸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어른들은 내게 ‘말대꾸’하지 말라고 꾸짖었으나 나는 그저 '말'이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것저것 부족함 없이 다 해주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냐고 어른들은 말했다. 나는 그저 내게 이유를 물어봐주고 그것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 사람이 없기에 사춘기 소녀는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잘 놀다가도 어느 순간 드러누워 울고불고 떼쓰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본다. 부족함 없이 다 해주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인 걸까 생각한다. 그러다가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옛날의 어린 소녀가 떠올랐다. 아이는 말이 하고 싶은 거다. 하지만 말이 부족하니 그보다 더 빠른 몸으로 표현을 한다. 혹은 말을 해봤자 그것을 온전히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다 아이의 불만이 온몸으로 폭발한다. 


회오리 같은 시간이 한바탕 지나가고 다시 평화가 찾아오면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눕는다. 자기 때문에 힘드냐고, 아이는 물었다. 아이의 질문에 오늘 내가 힘들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되짚어본다. 셀 수가 없을 정도라 도저히 세어지지가 않는다. 동그란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묻는 아이 얼굴을 보니 내가 무슨 말을 한 건가 싶은 생각에 머리가 멍해진다.


너도 힘들겠지. 나 때문에.

'너 때문에 힘들어.'라고 소리치지 못해서 힘들지.

그저 많이 좋아하는 것뿐인데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아 더 힘들지.

네가 부를 사람은 나 하나인데 되돌아오는 대답이 없어서 힘들지.

나로 인해 미움의 감정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너는, 그래서 삶조차도 힘들구나.


엄마 많이 힘들어? 나 때문에?

응. 힘들어. 하지만 너 때문에 안 힘들어.


아이가 또렷한 눈동자로 바라보며 건넨 한마디가 계속 맴돈다.


준이송 약송 준이송 약송.

우리 엄마 아프지 마라.

호 쎄쎄 아프지 마라.

엄마 힘들지 마.

아프지 말고 여기 오래오래 있어.


힘들면 아프고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는 공식이 아이의 머리에 잡혀 있는 모양이다. 힘들다는 엄마를 눕혀놓고 배를 쎄쎄 문질러주는 아이의 작은 손이 따뜻하다.

나는 도저히 너 때문에 힘들 수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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