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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Nov 24. 2022

엄마, 이제는 내 허락 없이 내 사진 올리지 말아줄래?

엄마, 이제는 내 허락 없이 내 사진 올리지 말아줄래?


딸 아이가 이렇게 말했던 것이 작년 여름 무렵의 일 입니다. 학교에서 디지털 미디어 학습에 관한 교내 규칙을 배우고 나서 부터였던 것 같아요. 인터넷이란 무엇인지, 소셜 미디어란 어떤 것인지, 주의해야 할 것은 무언지 알고 나니 엄마가 밤마다 자기와 놀아주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건 다름아닌 소셜 미디어였고, 거기에 본인의 허락없이 사진과 동영상을 올렸다는 사실을 알곤 이렇게 선언 했던 것이죠.


이후로 저는 아이들의 사진을 찍거나 올릴 때 미리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지요. 나와는 다른 인격인 아이들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공개된 자리에 올린다는 것은 입장을 바꾸어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일 이니까요.




어제는 아이와 오랜만에 단 둘이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신카이마코토#新海誠)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스즈메의문단속#すずめの戸締まり)원래는 저번주에 보러 가기로 했었는데 코로나로 가지 못하고 일본의 국경일인 어제 다시 예매를 해서 다녀왔어요.


▼스즈메의 문단속 일본 공식 사이트 

https://suzume-tojimari-movie.jp/


포스터 앞에서 사진을 찍고, 팝콘을 기다리며 줄을 서는데 문득 ‘엄마, 아까 그 사진 안 올릴거지?’. ‘응?? 으응… 그럼’. 정곡을 찔린 느낌! 그렇게 저는 조용히 핸드폰의 전원을 끄고 가방 깊숙이 넣어 두었습니다. 


핸드폰이 없는 그 자리는 아이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채워주었어요.


영화를 보고 나와서

“엄마!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날씨라던지, 사후 세계 같은 걸 좋아하나봐”


근처의 큰 문구점에 들렀다가

“엄마! 나 도서관이나 문구점 이라면 3시간은 거뜬히 있을 수 있어!”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으며

“엄마! 카페라떼는 뜨겁게 마셔야 제대로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아(물론 디카페)”


조잘조잘 떠드는 아이와의 시간이 이렇게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 줄이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 슬며시 다시 핸드폰을 꺼내는 나에게 아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


“엄마, 사실 나는 오늘 피자랑 파스타가 먹고 싶었는데, 엄마가 평소에 그 카페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거기로 가자고 했어. 저녁은 우리 피자 먹을까?”


…암만!

당연하다말다!

우리 딸이 그렇게 말하면 이 엄마, 피자가 아니라 피자 할아버지라도 모셔오마!


그렇게 우리는 도미노 피자를 시켜먹고 잠에 들었습니다. (웃음)


아이들 앞에선 핸드폰을 하지 않는다. 이제는 의지와 노력이 아닌 약속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신 아이들의 눈과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보석같은 말들을 잘 보듬어 주려고요.


아직 아이들이 깨지 않은 시간. 잊고 싶지는 않아서 활자로 나마 한 자 적어봅니다.


이제 출근하러 가야죠!


▶커버사진 출처:映画『すずめの戸締まり』予告②【11月11日(金)公開】

https://www.youtube.com/watch?v=FVU0zESXS5c




Tokyo Japan 

읽고 쓰고 그리는 사진작가 / 읽는인간 정아 

공저 <쓰다 보면 보이는 것들>이 출간되었습니다. 

진아 / 정아 / 선량 작가와 함께 글쓰기의 바다를 함께 유영하고 싶으신 분들은 12월에 있을 저자의 3인 3색 릴레이 강연(신청 무료)에 참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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