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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메리 Oct 16. 2019

미래의 나와 내 고양이를 먹여살리기 위해

<나와 작은 아씨들> 출간 전 연재


“한 가지만 기억해주렴. 엄마 아빠는 언제나 너희의 좋은 친구로 남아 있을 거야. 결혼을 하든 안 하든, 너희가 언제까지나 우리의 기쁨이 자랑이 될 거라고 믿고 또 바란단다.”


“One thing remember, my girls.  Mother is always ready to be your confidant, Father to be your friend, and both of us hope and trust that our daughters, whether married or single, will be the pride and comfort of our lives.”


-『작은 아씨들』 중에서




얼마 전 지방으로 강연을 다녀왔다. ‘직장인에서 프리랜서로’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였는데, 최근 맹렬히 불고 있는 퇴사 열풍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다양한 연령대의 방청객이 몰리면서 참가 신청이 조기 마감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한창 PPT를 만들고 스크립트를 짜면서 준비에 몰두해 있을 무렵, 주최 측에서 메일 한 통을 보내 왔다. “강연 준비에 참고해주세요.”라는 간결한 메시지와 함께.


첨부된 워드 파일에는 방청객들이 참가를 신청하면서 적어낸 신청 사유가 쭉 적혀 있었다. 대학 새내기인데 프리랜서의 삶이 궁금해요. 직장생활의 단조로움에서 한계를 느끼고 프리랜서로 전향을 꿈꾸고 있어요. 아이를 기르면서 할 수 있는 직업 정보를 찾고 있어요.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글들을 쭉 읽어 내려가던 중, 내 시선은 유달리 눈길을 끄는 문장 하나에서 저도 모르게 멈춰 섰다. “프리랜서로 어떻게 돈을 벌어서 미래의 나와 나의 고양이를 먹여 살릴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이 문장은 작성자 분이 적어주신 말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제각각이면서도 저마다의 진심이 배어 있는 수십 개의 사연 중에서, 그 글귀는 유달리 내 마음에 큰 울림을 가져왔다. 나는 담담한 듯 써내려간 글자 하나하나에서 사랑하는 존재를 지키려는 책임감과 낯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20년 전에 같은 주제로 강연을 했다면, 아마도 이와 같은 신청 사유는 찾아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시절은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혹은 ‘아이들 학원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던 때였으니까. 고양이란 여유 있는 집에서나 키우던 애완동물이었고, 애완동물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을 한다는 것은 나사 빠진 인간의 배부른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오늘날 고양이는(강아지나 도마뱀, 족제비와 마찬가지로) 애완동물이 아니라 반려동물로 인정받는다. 우리는 반려자의 행복을 위해 일을 하듯 반려동물에게 건강과 행복을 선사하기 위해 일을 한다. 비록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상황일지라도,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일부 보수적인 어르신들이 이런 세태를 걱정스런 눈길로 바라본다는 사실은 잘 알지만, 이러한 현상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도 특별히 이상할 것 없는 자연스러운 변화의 일환이다.


21세기 초반을 지나고 있는 이 시점에 가장 일반적인 가정의 형태는 배우자와 자녀 한두 명이 함께 지내는 핵가족이다. 하지만 우리 윗세대 까지만 해도 ‘가족’이란 3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을 뜻했다. 그 전에는 가까운 친척들이 한 울타리 안에 거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아직도 어떤 지역에는 아주 먼 친척들까지 같은 마을에서 함께 지내는 집성촌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집성촌이 대가족으로 줄어들고,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축소되는 동안에도 혀를 끌끌 차는 사람들은 반드시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착실히 변해 왔고, 우리는 이렇게 핵가족의 시대를 거쳐 또 다른 형태의 가족이 존재할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콩코드 교외의 작은 마을에 살던 마치 가족은 아마도 당시 기준에서 지극히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가정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부부가 결혼해서 네 아이를 낳고, 한 마을에 사는 숙모할머니를 큰어른으로 모시며, 훗날 결혼한 자녀들 또한 같은 동네에 터를 잡고 아이를 낳아 기른다. 하지만 작품 곳곳에는 현실과 마찬가지로 막을 수 없는 변화의 물결이 슬쩍 슬쩍 내비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예는 역시 조가 뉴욕에서 지냈던 커크 부인의 하숙집일 것이다.


대도시 한복판에 위치한 그 건물에는 젊은 여성부터 외국에서 온 청년, 나이든 신사까지 서로 다른 성별과 연령,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각각 방 한 칸씩을 차지한 채 지내고 있다. 요즘으로 치면 원룸 오피스텔 정도 될까? 서로 모르는 남녀가 한 지붕 아래 산다는 주거 형태 자체도 파격적이지만, 그곳에서 조와 새로운 우정을 쌓아가는 인물인 노턴 양은 콩코드 시골에서는 볼 수 없던 특별한 캐릭터이다. 그녀는 하숙집에서 홀로 지내는 여성으로, 부유하고 지식이 풍부한데다 인간성까지 좋다. 사교계와 무도회에만 목을 매던 고향의 소녀들과 달리, 노턴 양은 극장과 음악회에서 교양을 쌓으며 지식인들과도 폭넓게 교류한다. 문학계의 유명 인사들이 참석하는 토론회에 조를 데려가준 것도 바로 그녀였다.


《작은 아씨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노턴 양은 분명 외로운 노처녀가 아니라 당당한 독신 여성이다. 혼기 놓친 여성이 인생의 패배자 취급을 당하던 그 시대에도(심지어 메그는 열여섯 살부터 그런 운명을 맞을까봐 전전긍긍했다) 멋지고 자유로운 독신 여성들은 이렇게 한 명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뉴욕에는 노턴 양과 같은 여성이 못해도 수만 명쯤 존재할 것이다. 19세기에는 마냥 특이하게 비쳤을 노턴 양의 삶이 시간의 가호를 받아 평범한 여성의 일반적인 선택지로 자리 잡았듯, 고양이를 먹여 살리기 위한 그 신청자분의 상냥한 노력 또한 언젠가는 지극히 당연한 삶의 형태로 자리 잡으리라고 믿는다.


나는 다른 누구보다도 그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고양이의 주인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강연을 준비했다.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은 언제 겪어도 떨리는 경험이지만, 그날만큼은 수십 명의 관중 사이에 앉아 있을 그 한 사람이 혹여 내 이야기에 만족하지 못할까 봐 유독 긴장이 되었다.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돌보는 데서 행복을 발견하는 사람.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보다 누군가가 의지할 버팀목이 되기 위해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길을 찾아 해매는 사람.


“오늘 이 자리에 와주신 분 중에 인상적인 삶의 목표를 갖고 계신 신청자분이 계신데요.” 나는 강연 중에 잠깐 시간을 할애하여 그 사연을 언급했다. 개인적으로 응원을 전하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그 분의 작지만 굳건한 신념이 ‘회사’라는 틀을 벗어나고 싶어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방청객들에게 비유적으로나마 위로와 용기를 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혹시 수줍은 성격을 갖고 계실지도 모르니까, 손을 들어 달라거나 하진 않을게요. 하지만 자신과 자신이 보호하는 생명을 책임지고 싶다는 그 마음이 너무나 멋지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장장 두 시간에 걸친 강연과 질의응답을 마치고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날 무렵, 한 호리호리한 여성분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그 고양이 사연, 제가 쓴 거예요. 정말 감사합니다.” 내 이야기가 그 분과 고양이의 미래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을까? 나는 떨리는 마음에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프레젠테이션 때문에 어둡게 낮춰 놓은 조명 속에서, 그녀는 살며시 미소 짓고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부터 전국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에서 <나와 작은 아씨들> 단행본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___<!!


작가 인스타그램: @seo_merry

작가 유튜브: 서메리Merry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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