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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웨인 Feb 21. 2019

고통⑤

히키코모리가 꾸는 꿈

새벽빛이 접혀 에 닿는다. 잠에서 깼다. 머리맡 초록 물약을 본다. 이끌리듯 마셔버렸다. 다리의 상처와 통증이 사라진다. 놀라움에 두발로 성큼 걸었다. 아팠던 것이 마법처럼 흩어진다. 트롤의 피로 만든 포션인가 보다.


혹시? 액정이 나가 방치한 노트3 핸드폰을 켰다. 알람이 여러 번 울리더니 화면이 켜진다. 수십 개의 문자를 확인한다.


"힘들었지? 조금만 기다려, 이제 곧 갈게."

"아픈 것 나으면 술 같이 먹자. 사랑해 아빠"


포기했던 따스함에 가슴이 메인다. 시크한 아들과 저녁을 함께 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처음 듣는다. 눈시울이 뜨겁더니 하얘진다. 지갑을 가져오지 않았다. 당황한 내 앞에 돈을 건네는 누군가 서있다.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그녀가 미안하다고 한다. 그럴 필요 없다고 대답했다. 괜찮다고, 잘 지낸다고 중얼거렸다. 차가운 슬픔이 5°정도 덥혀 미지근한 슬픔이 된다. 목발 없이 함께 걷는다. 하늘과 노을이 보인다. 어깨가 닿을 듯 나란하다. 익숙한 냄새가 난다.


피부를 스치는 모든 것이 기껍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이제야, 그들처럼 행복하다고 써본다. 행복하다 쓸 수 있어 행복하다. 


모든 것이 희미해진다. 그녀도 아들도 꿈이었다. 느낀 순간 잠에서 깼다. 잔향의 기억은 없다. 역겨움만 남았다. 꿈이라도 꿀 수 있어 다행이다. 그렇게 위로한다.


.


상처와 아픔은 그대로이다. 계단에 뒹군 것은 현실이다. 몇십 미터가 버겁다. 넘어질까 땅을 주시한다. 요철과 경사를 버티는 끝을 본다. 땅 위를 꾸물거리는 개미를 본다. 잠자처럼 벌레가 될 것 같아 낮게 가라앉아 기를 쓴다.


주춤 걸으면 비린내가 난다. 어둠 속 보이지 않는 먼 바다의 파도, 거품 속 공포처럼 물비린내를 느낀다. 걸음을 멈춰 냄새를 찾는다. 부실한 허벅지에 코를 대고 맡아본다.


슬프든 기쁘든 흐르며 살았다. 고여있는 경험은 처음이다. 신진대사가 어디쯤 멈춘 것 같다. 무거워 잠시 놓았는데 그새 고였다. 썩은 비린내가 온몸에 흩어진다. 박박 문질러도 소용없다.


새벽, 그 바다는 등대 아래 방파제를 품었다. 칠흑 바다는 파도를 끊임없이 뱉는다. 쉼 없는 신음처럼 뱉어낸다. 포말 아래 물비린내는 나를 안아 내 비린내를 회수한다.


어두운 방파제 밑으로 내려간다. 행복하자고 아무리 애원해도, 살려달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네발을 가진 기괴한 테트라포드는, 기도도 외침도 불허한다. 히키코모리 같은 나는 서서히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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