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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린 Jul 04. 2023

정규직 교사 앞에서 나는 이유 없이 초라해졌다

시간 강사의 교실은 없다

“선생님, 제 그림 너무 하찮죠?”


수업이 끝날 무렵, 6학년 남자아이가 자신의 그림을 내밀며 말했다. 졸라맨을 그렸다가 지운 배경 위에 얼굴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다. 대책 없이 뻗은 머리카락, 단추 모양 눈, 까맣게 칠한 사다리꼴 모양 코, 길게 뻗은 일자 입술이 여섯 살 아이의 것 같았다. 나는 재미난 구경이라도 하는 듯 큰 소리로 웃었다. “아니, 하찮지 않아. 잘 그렸어.” 턱선은 왼쪽으로 비뚤어져 있었는데 여러 번 고심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아니, 하찮지 않아.’ 집에 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그 말을 읊조렸다. ‘나는 이곳에서 하찮아.’ 사실 그 말은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학교에 가면 아이들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운동장에서 만나면 짐을 들어주겠다고, 손을 잡고 같이 가자고, 안아달라고 뛰어오는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교사의 자격은 갖추지 못한 ‘시간 강사’였다. 정규직 교사 앞에서 나는 이유 없이 초라해졌다.


둘째가 세 살이 되던 해, 초등학교 시간 강사를 시작했다. 모든 꿈이 나를 배반했을 때, 육아와 가사를 겸하며 ‘임용’의 문턱을 넘을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방과후 강사로 살기로 했다. 두세 학교를 돌아가며 매일 나가면 150만 원 정도의 수입이 보장됐다. 40분에 3만 원이면 큰돈이라고, 신경 쓸 행정 업무가 없으니 다행이라고, 워킹맘에게 좋은 직업이라고 내가 나를 다독였다.


하지만 나는 괜찮지 않았다.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일어나는 날들이 많았다. 꿈이 꿈이어서 다행인 꿈을 꿨다. 시험을 앞두고 다른 일을 하는 꿈, 버스를 잘못 타서 내려달라고 애원하는 꿈, 차를 잃어버려서 목적지에 늦는 꿈, 뒤쫓아 오는 누군가를 피해 옥상으로 올라가는 꿈, 녹아버린 지우개를 쥐고 어쩔 줄 모르는 꿈….


시간 강사의 교실은 없다. 학교에 일찍 도착하거나 다음 수업까지 시간이 남으면 갈 곳이 없었다. 잠시 복도를 배회하다가 5분 전에 교실 문을 두드리곤 했다. 담임교사는 하던 업무를 급히 마치고 자신의 자리를 내어줬다. 공적이고 사적인 서류가 가득한 책상 구석에 짐을 올리고 의자에 반쯤 걸터앉아 이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님을 의식하며 컴퓨터에 USB를 꽂았다.


아이들은 무례했다. 그림책을 읽고 활동을 하는데 한 아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나 안 해. 안 할 거야.” 아이를 설득을 했지만 내가 제시한 방법이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순간 아래에서 묵직한 것이 올라왔다. 분노보다는 슬픔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나는 별말 없이 교탁으로 가서 칠판을 지웠다. ‘내가 시간 강사라서…. 고작 초등학교 강사라서…. 강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서….’ 훈계보다 체념을 택하는 편이 익숙했다. 얼마쯤 지나면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하하거렸지만 아무리 지나도 구겨진 내 존재는 펴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당돌했다. 정규 수업 시간에 하는 수업은 괜찮은 편이었다. 7교시부터 시작하는 학력 보충 수업에 비하면…. 아이들은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저 이제 안 올 거예요.”라며 식식대거나 “네? 네? 네?”라며 언짢은 눈으로 되물었다. 문구점에서 사 온 아폴로와 쫀쪼니를 먹으며 영화 보듯 내 수업을 관람했다. ‘안 그래도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또 수업을 들으려면 얼마나 힘들까’ 헤아리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교실을 가득 채운 오징어(숏다리) 냄새는 견딜 수 없었다. 아이들은 수업 내내 누워있다가 가기도 하고 지난 시간에 가르친 것을 되물으며 “통분 안 배웠어요.”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아이들은 미숙했다. “얼마 벌어요?”, “화장이 이상해요. 목이랑 얼굴이랑 색깔이 달라요.” 방긋거리며 넘겼지만 좀처럼 소화되지 않는 말들이었다. 아이들은 해맑게 나를 흔들어 놓았다. 그 얼굴이 하도 무해해서, 실은 내게 얼마나 유해했는지 깨닫지 못했다. ‘난 어른이잖아. 아이들은 어리고….’ 어른인 내가 아이에게 상처받는다는 것이 창피했다.


아이들은 무구했다. 한 아이가 나를 보더니 “으악, 공부 선생님이다.”라며 도망쳤다. 수학이 되어버린 수학 선생님처럼 나 또한 독서 논술이 되어버린 독서 논술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은 책이 싫은 거지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니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엄마의 책장》을 출간한 뒤로 그 괴리감은 더 커졌다. ‘난 이런 취급을 받을 사람이 아닌데…. 내가 누군지 알면 이렇게 대하지는 않을 텐데….’ 아이들은 나를 작가로 보지 않는데 나는 언제나 작가인 나를 데리고 학교에 갔다. 그렇게 나는 나와 서걱거렸다.


초등학교가 아니라 여대에서 강의를 하는 나를 꿈꾼다. 언젠가 여대를 나온 친구가 말했다. 수업 시작 전에 교탁 앞에 음료수 수십 개가 쌓인다고, 교수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매 순간 경쟁한다고 말이다. 나에게 학점이라는 권력이 있다면 어떨까. 날 것의 아이들을 떠나 그녀들 앞에 선다면…. 알맞은 눈빛과 적절한 끄덕임 속에서 내 이야기를 펼친다면 어떤 기분일까.


초대받지 않은 곳을 서성인다. 발 디딘 곳은 초등학교인데 머리는 여대를 향하고 있다. 사실 모두 없는 것들…. 없는 곳, 없는 누군가를 바라보느라 ‘지금 여기’를 보지 못했다. 누군가 앞에서 하찮아진다는 건, 누군가 앞에서는 훌륭해진다는 뜻이다. 비슷한 도토리 사이에서 내가 조금 더 크면 우월감에 젖고 내가 조금 작으면 우울해졌다. 아무도 그러지 않았는데 내가 나를 하대하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내가 나를 우대했다.


수업 10분쯤 지나 한 아이가 교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독서 논술 하려고 뛰어왔어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아이는 나에게 마음을 주었으나 나는 아이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시간 강사는 아이에게 마음을 줄 자격도 없는 것처럼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슬프다. 사랑하지 못하는 나…. 어렵게 마음 에 맺힌 오답 하나를 찾아낸다. 그 오답이 정답을 가리킨다.



“그 누구도 하찮지 않아.”


Photo by 2y.ka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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