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자 골프 5] 골프의 길(도)을 찾아서
참 많이도 쳤다. 그리고 참 많이도 마셨다. 공을 많이 쳤으면 술이라도 줄였으면 좋으련만, 해가 중천에 떠있을 때부터 달을 보면서까지 양파급으로 마셨다. 마시는 동안은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세상 더없이 즐거웠으니까. 후회는 다음 날 아침 6시 51분 리즈코스 첫 번째 티박스에 섰을 때 찾아왔다. 페어웨이가 눈에 잘 안 들어오는 건 강렬한 일출 때문만은 아니었다.
본격적인 줄타기가 시작됐다. 널찍한 페어웨이 놔두고, 생과 사가 갈리는 해저드 라인으로 공이 날아갔다. 운 좋게 살아 어제보다는 좀 낫다는 판단이 들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술 좀 덜 먹었으면 더 잘 쳤을 텐데.’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려는 순간 다른 생각이 뒷덜미를 잡았다. ‘누가 그렇게 술 쳐 먹으라고 하든? 누구를 탓하려고!’ 얼굴이 화끈해지고 소름이 끼쳤다.
여기에 온 것은 내 선택이고, 이 공을 치는 것도 내 몸인데, 지금 이 순간 누구에게, 어떤 과거에 책임을 돌릴 수 있을까. 공이 잘 못 날아간다면, 그 공을 잘 못 친 클럽 탓이고, 클럽이 잘 못 휘둘러졌다면, 그걸 쥐고 있는 내 몸 탓이고, 그 몸을 잘 못 놀렸다면, 다 ‘내 탓’이다. 다 큰 어른이 컨디션 조절을 못했다고 징징댈 수는 없지. 조용히, 온몸으로, 후회를 견뎠다.
마흔 이전, 인생 전반전을 살 때, 남 탓, 아니 신(神) 탓을 좀 했다. 누구보다 진지하고 종교적인 삶을 살았기에, 종교 활동을 함에 있어 많은 일을 감당해야 했고, ‘나’로 살지 못함을 신 탓으로 돌려버렸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책임은 좀 져주셔야 되지 않습니까?’라고 당당하게 말도 못 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 내 인생에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았다.
골프를 시작할 무렵, 그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내 인생의 키는 온전히 내가 쥐어야 한다. 내 길은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져야 한다. 얼마 전 사망 보험을 들었다. 내가 오래 살수록 해지환급금이 커진단다. 산등성이(Ridge) 같은 인생에서 쓰러지지 않으려면 스스로 관리를 해야 한다. 필드 위에서 어지러운 나를 보며 ‘될 대로 되는 시대’와의 작별을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