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벌레. 반딧불의 다른 이름이다. 어린 시절 <개똥벌레> 노래를 흥얼거리면서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마당에 쌓인 개똥만큼 흔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도시로 떠나던 1995년에도 반딧불은 여름밤이면 어김없이 찾아왔다. 하지만 15년의 도시 생활을 마치고 아파서 시골에 돌아왔을 때, 반딧불을 볼 수 없었다. 아니, 그 존재는 머릿속에서 이미 사라졌고,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들을 떠올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2012년 결혼을 하면서 지금 살고 있는 산 아래에 집으로 들어왔다. 8월 말, 어느덧 시원해진 밤바람을 쐬기 위해 집 밖으로 나왔는데, 반짝이는 것이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반딧불이었다. 15년 만의 재회, 먼저 반가웠고, 잊고 있음에 미안했고, 다시 찾아주었음에 고마웠다. 이후 밤이면 밖에 나가서 반딧불을 보면서 나만의 불꽃놀이를 만끽했다. 몇 해 뒤에 아이가 태어났을 때에는 살포시 손으로 안고 들어와 집안에서 생명의 불을 밝혔다.
처음 반딧불을 봤을 때는 일주일 정도 머물다 사라졌다. 그런데 해가 지날수록 머무는 시간이 줄었다. 8월 말에 나올 것을 알면서도, 매년 8월 중순부터 반딧불을 기다렸다. 그런데 올해는 기다림의 시간이 길었다. 설마, 올해는 안 오나 싶어 걱정하고 있었는데, 8월의 마지막 날에 밤나무 아래 작은 불빛이 하나 반짝했다. 고작 한 마리였지만, 반가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그렇게 올해는 지나가나 싶었다.
뜨거운 여름이 9월이 되어도 쉬이 식지 않았다. 그래서 밤바람을 맞으러 나갔는데, 산 여기저기서 반짝, 반짝 불빛이 보였다. 반딧불이 하나, 둘, 셋, 넷…. 열 마리도 넘게 날아다녔다. 온 가족을 데리고 나왔고 우리는 모두 눈앞에 펼쳐진 반딧불꽃놀이를 보고 감탄했다. 한참을 봐도 질리지 않았다.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들어오는 길에 그들에게 말했다. “내일도 와줘. 귀한 손님이 올 거거든.”
다음날 어린 손님과 오래된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가 떠날 때가 되자 내 마음이 떨렸다. 이 아이는 그 풍경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깜짝 선물을 주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갔는데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제 그 많던 반딧불이가 하루 만에 어디론가 다 사라진 것이다. 손님에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것 같아 더 서운했다.
생각해 보면 반딧불은 날이 좀 시원해지면 나타났다. 그런데 여름이 계속 뜨거우니까 나올 수가 없겠지. 또 너무 서늘해지면 사라지는데, 지난 1주일 사이에 밤 기온이 ‘더움’에서 ‘서늘’로 바뀌었다. 그래서 그들은 작별 인사도 없이 서둘러 사라진 것 같다. 지구가 뜨거워질수록, 기온의 변화가 심할수록 반딧불을 만날 기회는 사라진다. 여기도, 이미 다른 곳이 그렇듯이…. 나의 자랑이었던 반딧불을 내년에도 만날 수 있을까.
일주일이 지난 9월 9일. 밤나무 아래서 반딧불 한 마리를 보았다. 힘이 빠져 날지도 못하고, 불빛도 가쁜 숨을 내쉬듯 반짝였다. 그 반딧불은 인사 없이 떠나는 게 마음에 걸려서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둠 속에서 단 하나 불을 밝히고 있는 그에게 말했다. “나는 덜 뜨겁게, 덜 변덕스럽게 살게. 그러니까 내년에도 또 와줘. 너의 존재만으로 나에겐 큰 힘이 된단 말이야. 고마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