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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밍이 Jan 14. 2021

급할수록 돌아가라 : 내 공간 찾기 프로젝트 1

스위트 홈, 삼십 대의 자취생활 이야기



나도 역세권에 살고 싶어요


 우리 집은 그야말로 '비역세권'. 전철에서 20분가량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게다가 우리 집은 안양과 인접한 서울 끝자락에, 우리 대학교는 1호선 동대문구 끝자락에 있어 같은 서울이지만 끝과 끝을 향해 있었다. 기본 통학시간은 Door to Door 1시간 40분, 왕복 3시간 20분이었다. 통학길은 나에게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엄마 아빠에게 매일같이 투정 부렸다. 이사 가자고. 하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이사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질 않았고 항상 마음속에 독립에 대한 꿈을 품게 되면서 그렇게 졸업을 하고 취업을 했다. 회사는 더 멀리 인천을 배정받았다. 다행히도 우리 회사는 '관사'제도가 있어 입사 1년 차 때 회사 근처 관사에 머물며 출퇴근을 하며 '세미 독립'을 하게 되었다.

 관사에서 직원들 몇 명과 함께 산지 1년이 지나 나이는 서른이 되었고 이제 나도 '온전한 독립'을 할 때가 다가온 것 같아 독립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인사발령이 인천항에서 인천공항으로 나면서 급하게 인천공항에서 출퇴근할 자취방을 구하게 되었다.


 나에게 조건은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 서울에 있을 것. 지난 1년 인천에서 타지 생활을 하며 외로움을 심하게 탔다. 친구들을 자주 만날 수 있는 서울로 무조건 가고 싶었다. 둘째, 통근버스가 있는 김포공항 근처로 갈 것. 공항철도를 타면 차비가 일반 전철의 2-3배가 들기 때문에, 서울에서 저렴하게 출퇴근하려면 김포공항에서 셔틀버스를 타야 했다. 셋째, 역세권일 것. 앞에 말했듯 고생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전철역 가까운 곳에 살고 싶었다. 이 세 가지 조건만 충족하면 만족할 것 같아 급하게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전세 5000이면 가능하다면서요, 직방 씨?


 아빠와 강서구 공항동에 처음 집 구경을 오기 전, 인터넷을 통해 주변 시세부터 파악해보았다. 그때는 어떤 게 정확한지 전혀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제일 유명하다던 직방으로 집을 검색해보았다. 전세 5천.. 5천500.. 이 정도면 버팀목 대출이랑 신용자금 대출받으면 이자도 괜찮고, 이사 갈 수 있겠네! 하고 부동산을 찾았다. 그러나 전세 5천짜리 원룸은 없었다. 설령 있다 해도 지층으로 내려가거나 1층의 곰팡이가 잔뜩 핀 관리가 안된 집들이 었다. 원룸 4-5평짜리를 얻으려면 적어도 전세는 아주 싸야 8천500, 못해도 9천은 필요하다는 대답을 듣고 아빠와 망연자실한 채로 돌아왔다. (현재는 1억이 넘는 집에서 살고 있다.) 직방은 분명 5천짜리 전세가 되게 많았던 거 같은데..?


 상한선을 높여 전세 8500도 괜찮으니 연락을 달라고 여기저기 부동산에 번호를 뿌리고 온 후 1주일 동안 간간히 전화가 오긴 했었다. 그러나 막상 가서 보면 너무 오래된 건물인 경우가 많았다. 2주 차쯤 됐을까? 빨리 거취를 정해야 된다는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찰나에, 신축 건물이 전세 8500에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방이 좀 좁긴 했지만 창이 두 개가 나있었고 전철역과는 3분 거리, 신축이라 깨끗하기까지 했다. 아빠께 그냥 이 집으로 빨리 계약해야겠다고 말씀드린 뒤, 계약서에 도장을 덜컥 찍어버렸다. 그렇게 나의 완전한 독립의 첫출발은 급발진을 밟으며 시작하게 되었다.




집을 보는 조건은 세 가지로는 불충분하다


 그렇게 관사에서 짐을 빼고 아빠 엄마가 이삿짐을 옮겨주시고 간 날, 짐을 풀고 설레는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밖에서 나는 소리였다. 분명히 나는 창을 잠그고 있었는데, 밖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새시를 보니 빈틈이 있었다. 새시 자재가 불량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창문 밖에는 술집이 있어 밤늦은 시간까지 고함과 웃음소리가 크게 들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는 너무 좁아서 해도 잘 들지 않았고, 옆 건물에 사시는 할아버지는 우리 집을 향해서 라디오를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틀어놓고 끌 생각을 하질 않았다. 나는 한 달간 이 자취집에서 살고 부모님께 죄송함을 무릅쓰고 말씀드렸다.


"나 방 뺄래. 더 이상은 못살겠어."


이렇게 내 자취 시작은 결국 망해가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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