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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mi May 23. 2021

나의 창업 아이디어 노트

내 핸드폰 메모장에는 창업 아이디어 노트가 있다. 생각날 때마다 그때 그때 적어놓곤 했는데, 목록이 꽤 길어져 있었다.
지금 보면 다소 허무맹랑한 것들도 있지만, 꽤 그럴싸해 현재 비슷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실제로 만들어진 것들도 있어 "스타트업에 발 담그기"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작성하기에 앞서 과거 아이디어들에 대해 글을 써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내가 창업 아이디어를 처음 고민한 때는 바로 고등학교 때였다.


당시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제 1회 창업 아이디어 경진 대회에 Forest 라는 어플리케이션 기획서를 제출했고, 운 좋게도 수상까지 할 수 있었다. 환경 보호를 위한 사용자의 작은 노력을 기록하는 것이 어플리케이션의 주 기능이었다. 예를 들어, 텀블러를 들고 다님으로서 일회용품의 사용을 줄였다던지, 양치컵을 사용하여 물을 절약했다던지.. 등의 일상 속의 작은 노력이 축적되어 죽어 가는 숲을 되살린다는 컨셉으로, 변화하는 숲의 모습이 사용자에게 동기부여를 제공하여 선순환을 완성시키는.. 그런 내용이 기획서에 포함되었다. 당시 미대 진학을 준비하던 친구에게 부탁해서 황폐했던 숲에서 푸르른 숲으로 변하는 과정을 이미지로 첨부했던 기억이 난다.


학생들의 생활기록부 수상 내역을 위해 급조된 느낌이 강했던 대회라 그 이후에도 지속되었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로 하여금 '창업'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해 본 기회가 된 재밌는 추억이다. 사실 잊고 살다가, Forest 라는 앱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알고 생각이 났다. 진짜 Forest 앱은 환경과 관련된 건 아니고,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 사용자의 집중을 도와주는 앱이다. 만들어진지 벌써 7년이 넘었고, 대만의 대학생이 만들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용 후기도 많은 글로벌 인기 앱이다. 우리의 Forest 는 스마트폰 사용자가 점점 늘어날 때라 이를 겨냥해 제품 대신 어플리케이션을 선택한 접근이 좋았던 것 같은데, 이렇다 할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지는 못했었다. (그래서 장려상 받은 듯) 실제 Forest 의 비즈니스 모델은 앱 내에서 나무나 꽃을 심어 숲을 꾸미거나, 실제 나무를 심기 위해 포인트를 구입하는 방식인데, 모바일과 실제 세계를 연결한 것이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포레스트 앱 소개 화면

    



서울 방방곡곡에 퍼져있는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을 때 단톡방에서 가장 핫한 주제는 '오늘은 어디서 만날까' 였다.


적당히 놀거리가 있으면서, 어떤 한 친구가 너무 먼 길을 와야 하는 수고로움을 최소한으로 줄여주는 장소를 찾기 위해 항상 고민했다.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적절한 장소를 찾는다 해도, 맨날 거기서 만날 수는 없으니까 그 다음 약속에서도 토론은 계속되었다. 우스갯소리로 각자의 집을 지도에 찍은 후 페르마 점 (직선거리의 합이 최소가 되는 점) 을 구하거나, 외심 (삼각형의 모든 꼭짓점으로부터의 거리가 동일한 점) 을 구해서 그곳에서 만나자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ㅋㅋㅋ).


사실 차가 없는 대학생들은 약속 장소를 대부분 지하철역으로 정하고, 이 때 중요한 건 직선거리보다 소요 시간이다.각자의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의 대중교통 소요시간을 계산하여 모두에게 합리적인 지하철역을 정하고, 그 역 주변의 음식점이나 놀거리를 추천해주는 앱이 있다면 수요가 꽤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 이야기를 함께 했었던 친구들이 2019년 출시된 '위밋 플레이스'라는 앱을 보고 단톡방에 공유하며 "이거 완전 우리가 했던 얘기 아냐?" 하며 신기해 했었다. 최근 다녀온 국내 여행에서 여행 계획 및 동선을 짤 때 '트리플'이라는 앱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여행지 주변의 놀거리와 볼거리를 추천해 주고, 사람들의 후기도 볼 수 있어 유용했다. 연인들을 위한 데이트코스를 추천해 주는 '데이트팝'이라는 앱도 있다.


위밋 플레이스와 트리플 앱 화면


세상이 변하고 기술이 발전해도 맛있는 음식과 멋진 장소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는 절대 변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아닐까?


비전공 대학생들에게 코딩 교육을 제공하는 '멋쟁이 사자처럼' 활동도 한 학기동안 하기도 했다. 더 지니어스 출연으로 유명한 이두희 씨가 운영하는 건데,  나는 코딩에 완전 비전공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C언어나 파이썬은 알아도 Java 나 실제 개발자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잘 몰랐기에 배우고 싶어서 가입했고, html 이나 CSS 등 아주 기초적인 웹 개발 지식을 배울 수 있었다.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는 것 같더라!)


그 곳에서도 팀을 꾸려 프로젝트를 기획했는데, '쿠마'라는 이름의 모바일 기프티콘을 사고 팔 수 있는 웹 벼룩시장이 우리 프로젝트 주제였다.


선물 받았거나, 유효기간 안에 쓸 수 없는 기프티콘을 거래하여 파는 사람은 기프티콘 현금화를, 사는 사람은 저렴한 가격으로 원하는 기프티콘을 사용하는 윈윈 관계 형성이 아주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약 4년이 지난 지금, 모바일 기프티콘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는 추세이니 시장 규모 측면에서도 좋은 접근이었다고 생각되지만, 아쉽게도 기획 단계에서 팀원들의 이탈로 펑!


(여담이지만, 직장인 멋쟁이 사자처럼을 시작해볼까 생각했었다.. 대학생 버전과는 다르게 꽤 많은 돈을 내야 해서 고민이 됐다. 역시 뭔갈 배우기엔 대학생인 게 짱인 것 같다.)




이러한 경험들을 창업에 대한 꾸준한 관심으로 승화시켜 마지막 학년 때 교내 창업 동아리에 가입했다. 내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해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언제까지 아이디어 노트에 기록만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패기 넘치게 들어갔지만, 창업 동아리에서도 실제 창업을 해 보진 못했다. 그래도, 막연히 아이디어 구상만 해 보았던 나에게 실제적인 방법을 알게 해 준 좋은 시간이었다.


'QR 코드를 이용한 식당의 간단 결제 서비스' 팀에서 포스트잇으로 마인드맵을 그리고, 유저 시나리오를 파악하고, 경쟁 업체 조사 등을 했다.

포스트잇 마인드맵

 팀의 리더였던 J는 원래부터 저 아이디어로 창업을 어느 정도 준비하고 있었고, MVP 를 만들어 실험해본 적도 있었다. 특히, 교내 학생 식당에서 주문을 위해 긴 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보고 테이블에 앉아서 간단하게 주문을 하고 받아 오는 시스템을 적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MVP 라고 하면, 뭔가 되게 있어 보이지만 Minimum Viable Product 를 의미하기 때문에, 원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형태의 제품이기만 하면 된다. 교내 식당 중 인기가 제일 많은 뚝배기 음식점에서 구글 폼 (설문지 서비스)로 주문을 받아보면서, 이론적으로 생각만 해서는 미처 알 수 없었던 사용자의 pain point 를 발견했다고 했다. J와 같이 창업을 진심으로 준비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많은 걸 배웠다.



10시간 책상 위에서 고민하는 것보다 1시간 직접 발로 뛰는 것이
더 많은 걸 알려줄 때도 있다는 것.



그 당시에도 이미 경쟁사가 있긴 했지만, QR 결제 시스템은 특히 코로나가 장기화된 지금, 몇몇 카페나 음식점에서 사용자로서 이용해 볼 기회가 있었다. 네이버와 연동되어 주문 후에는 네이버 리뷰도 남길 수 있는 형태로 발전해 있더라.


네이버 QR 페이 서비스 화면



창업 아이디어 노트에 적어놓았던 아이디어들이 실제로 구현된 걸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와 이게 진짜 생겼구나! 사용해 봐야지" + "이걸 내가 해 볼걸 그랬어~"


기발한 아이디어를 이 세상에서 오직 나만 생각해냈을 리 없다. 이미 만들어졌거나, 누가 만들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확률이 높다. 특히 지금처럼 스타트업 열풍이 불고 있는 시대엔 더더욱.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뛰어난 아이디어를 내가 제일 먼저 떠올려서 빠르게 구현한 후 시장에 선보여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두 주자가 된다는 것은 커다란 어드밴티지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커다란 핸디캡일 수도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오히려 뒤늦게 뛰어 든 후발 주자가 시장 점유율 1위가 되어 승승장구 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친구 I 는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 자신이 생각한 아이디어가 이미 시장에 있으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단다. 이를 통해 자신이 알맞은 방향으로 가고 있구나, 하고 확인받는다고.


신기하게도 아이디어는 찾을려고 노력할 때는 잘 안 떠오르고, 의도하지 않은 일상 속 어떤 경험에서 불현듯 찾아오곤 한다. 언제 또 좋은 아이디어가 나에게 찾아올지 모르니 두 눈은 반짝, 두 귀는 쫑긋 세우고 세상을 살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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