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첫 술에 배부르랴
팀을 만들고, 아이디어를 빌딩하던 중 우리가 나갈 만한 공모전을 발견하면 지원했다.
솔직히 이런 공모전은 찾기만 하면 엄청나게 많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부터, 중소 VC들, 정부 지원 사업, 그리고 대학교 창업지원센터까지.
지원 조건이나 프로그램 내용은 저마다 다 다른데, 보통 대학교에서 주관하는 창업지원 프로그램들은 팀원 중에 한 명이라도 대학원, 혹은 대학원생이 포함되어 있다면 가능하다. 정부 지원 사업은 신분에 대한 제한은 없지만 사업자 등록이 안되어 있는 예비 창업자, 사업자 등록을 했더라도 1~3년 이내의 초기 창업자한테 혜택이 더 많은 편이다. 또, 요즘엔 검증 전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시작해서 초기 단계를 전반적으로 도와준다는 컨셉의 VC 주관 공모전도 생기는 추세다.
우리 팀이 처음 지원한 공모전은 "대학(원)생 기술창업팀을 위한 네이버 D2SF 공모전"이었다.
우리 팀은 나 빼고 대학원, 대학원생 신분이었고, 사업적인 부분보다는 기술을 이용한 아이템 개발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우리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공모전을 위한 기획서를 작성할 때 우리 팀은 결성된 지 한 달도 채 안 되었을 시기였기 때문에 이걸 통해 투자 유치까지 가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여태껏 해 온 아이디에이션을 정리하는 겸, 운이 좋다면 미팅을 통해 피드백을 받을 수 있겠다 싶었다.
분명히 처음엔 기대 안 했는데 사람 마음이란 게, 이런 연락을 받으면 기대를 하게 된다.
아래와 같은 구성으로 5분 분량의 PPT 발표를 준비했다.
네이버 D2SF 와의 미팅은 비대면으로 이루어 졌다. 각자 줌으로 접속했고, 우리 팀원 총 4명과 D2SF 에서 두 분이 함께 미팅에 참가했다.
PPT 발표 후 질의 응답이 오가며, 1시간 가량의 미팅이
"이번 기회에 투자 유치 및 후속 프로그램을 함께 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라는 말로 끝나게 되었을 때, 조금이라도 기대를 한 내 자신을 창피해 할 틈도 없이 미팅 내용 복기를 위해 다시 줌으로 접속했다. 두 분이 해 주신 피드백을 빼 먹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 외에도, personalized 된 피드백을 주려고 하면 UI/UX 쪽으로 강한 burden 이 생긴다는 점, 페르소나를 설정할 때 성별이나 나이 등의 bio 정보를 잡는 것은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는 피드백을 주셨다.
다 들어보니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의 아이템은 pivoting 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첫 아이템이었고, 검증도 제대로 안 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빠른 가설 검증과 지속적인 pivoting 은 스타트업의 숙명과도 같다.
다만 여기서 발생한 나의 의문점은 검증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는 거다. 설문조사? 알다시피 설문조사는 질문에 따라 질문자의 의도대로 어느 정도 유도가 가능하다. 그리고 설문조사의 답변은 대부분은 정량적이지 않고, 정성적이다.
가장 좋은 건 직접 시장에 아이템을 선보인 뒤 사람들의 평가를 받는 것일 테다. 이 평가는 설문조사의 답변 같은 평가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는지, 얼마 동안 머물렀는지, 돈을 쓰고자 하는 의향이 얼마나 있는지, 다른 사람에게 추천했는지 등등 직관적이고 정량적인 평가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를 받기 위해선 아이템을 개발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고, 이것으로 인해 들어오는 수입이 0인 상태에서, 즉, 본업과 개발을 동시해 해 나가려면 빠른 검증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될 것이고, 이는 고스란히 기회 비용이 된다.
검증을 위해 비용(시간+돈)이 필요하고, 이 비용을 투자받기 위해선 검증이 되어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이 상황을 처음으로 직시하게 된 건 첫 VC 와의 미팅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