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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이별이 Aug 30. 2019

회사는 회사고, 나는 나다

적당한 예의와 적당한 거리

행복했던 신입사원 연수는 순식간에 지나갔고, 어느 사업소에 발령을 받아 근무를 시작했다. 5개월의 인턴,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4개월. 이 시간 동안 나는 'B'파트에서 근무했다. '근무'했다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B파트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으니 B파트에서 근무하긴 했었다. 나는 약 9개월의 시간 동안 어떤 업무도 맡지 못한 채 앉아만 있었다. 누구도 나에게 무언갈 가르쳐주지 않아 출근해서 나의 일과는 아무 의미 없는 회사 홈페이지만 뒤적거리는 것이었다. 덕분에 나는 사규를 외웠으며, 내가 속한 부서에서 만든 PPT자료를 전부 정리했다. 부서 캐비닛 어딘가 아무렇게나 철해놓은 서류들을 모두 정리하고, 본관 지하의 서류 창고에서 내 파트의 파일 위치를 모두 외우기도 했다. 쓸데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가끔가다 누군가 어떤 파일을 찾아달라고 하면 찾아다 줬다. 가끔은 복사를 해줬다. 점심시간이 되면 불을 껐고, 끝나면 켰다. 총무가 간식거리를 사 오면 그걸 캐비닛에 정리했다.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의 전부였다. 


가끔 누군가 우리 파트 업무와 관련된 질문을 했을 때 아무런 대답을 못 하는 나를 보고 의아해하던 목소리, 9개월째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나를 보며 수군거리던 목소리. 나는 회사가 너무나도 싫어졌다. 9개월 동안 멈춰있는 나와 달리 다른 동기들은 본인의 업무를 맡아 해내는 모습이 나의 모습과 비교됐다.


내가 부서이동을 하고 공식적으로 '일'이란 것을 하게 된 이후로, 가끔 그때 같이 일했던 선배를 만난다. 파일 위치를 나처럼 잘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 선배를 보며 나름 위안이 됐다가도, 약간 씁쓸한 감정이 들었다. 물론 선배는 오랜만에 만나 어색한 분위기를 해소할 목적이었겠지만, 나의 9개월이 그저 파일 위치를 잘 찾는 사람으로 기억되는 게 씁쓸했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그때의 난 열정 가득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어떤 일이든 배울 준비가 돼있었으니 말이다.


뭐, 그렇다고 지금 열심히 일을 잘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부서이동을 하자마자 부장한테 찍히기도 했고, 다른 파트 차장이 나를 혼내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와 지금의 차이가 있다면, 열아홉의 나는 의기소침해서 홀로 분을 삭였다면, 스물의 나는 '뭐 어쩌라고' 마인드로 능구렁이처럼 웃으며 넘길 수 있다는 것. 그게 차이다. 내가 느끼기에 회사생활이란 적당한 예의를 갖춤과 동시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쿨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내가 부족하고 직급이 낮으니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예의는 갖추되, 선배 직원들의 말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그들의 말을 업무에 참고는 하되, 그것이 내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쿨하게 넘긴다. 그리고 은근슬쩍 무리한 요구를 하려는 사람에겐 단호하게 거리를 둔다. 물론 이런 마인드를 생각은 하지만 막상 적용하기가 쉽진 않았다. 능구렁이처럼 웃으며 넘겼지만, 자려고 침대에 누웠을 때 한참을 뒤적였고 혼자 꿍해있었다. 


하지만 혼나는 것도 학습이 되더라. 나름 부서이동을 하고 연차가 쌓이자 -물론 귀여운 연차지만- 나름의 '능구렁이'가 되는 노하우가 생겼다. 



내가 2년의 회사생활 중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회사의 일을, 기분을, 감정을, 나의 일상까지 가져오지 않는 것.



 회사는 회사고 나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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