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젬마 Mar 31. 2024

나는 강해진 거야!

나의 강함이 나에겐 별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나 오래도록 나를 지켜보고 걱정해 온 이에게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가 보다.


너는...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강해진 거야?

응, 나는 강해진 거야!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세일러문이 되고 싶었거든. 그래서 책가방도 세일러문 책가방을 매고 크레파스도 세일러문 크레파스를 썼는데 어느새 비로소 세일러문이 되었어. 나는 사랑과 정의가 뭔지 고민해.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우리를 그들을 용서해. 내가 약해질 때면 외는 마법의 주문이 있고 그럼 속에서 뽀용뽀용 파워가 차올라.)


이토록 강해진 것은 내가 차원이동을 하며 살아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몇 년 전에 학생식당에서 닥터 피가, 해외에 산다는 것은 본국의 친구들과는 전혀 다른 타임라인을 사는 것 같다는, 가끔은 평행우주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사실은 묻고 싶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본국으로 돌아오셨어요? 그립고 그리운 미국으로? 당신의 스윗 홈 앨라배마로? 평행우주를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살다 보면 내 세계를 하나로 합치고 싶을 때가 오나요? 나의 많은 평행우주를 전부 다 사랑하면 어떻게 되나요?


아침마다 한 시간 반 정도 차원을 넘어 달린다. 이 우주에서 저 우주로, 나는 나는 달려간다 이상한 나라로. 니나가 잡혀있는 마왕의 소굴로. 친구들은 모르는 사차원 세계, 날쌔고 용감한 지수가 여깄다. 뛰 빵빵 뛰 빵빵 삐삐 야잇! 이 이상한 나라에서 나는 정말로 외롭다. 직장에서 나의 존재를 이해받으려 하지 말라고 남편도 말했고 카운슬러도 말했고 과거의 나도 말했는데 아니 근데 시발 진짜 어느 정도여야지. 나는 에일리언이다. 나는 에일리언이다. 나는 에일리언이다. 나는 그들의 동료 에일리언이다. 나는 그들의 친구 에일리언이다. 나는 그들의 이웃 에일리언이다. 나는 일을 꽤 잘해서 갑자기 리더십 팀에 들어가게 된 에일리언이다. 나는 패컬티 그룹챗이 속해있는 에일리언이다. 나는 에일리언이다. 나는 그들이 아니다. 오해받고 설명하기를 반복하다가 어느새 그냥 입을 다문다. 그리고 다시 또 차원의 문을 열면 이들은 에일리언이다. 이들은 나와 다른 에일리언이다. 이들도 그들이 아니되 이들은 우리도 아니다. 여기는 나와 이들만의 생태계가 있어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궁금해한다. 그들은 모르게 주고받는 눈빛과 에일리언 조-크 속에 우정도 사랑도 싹텄다. 하지만 나는 혼자고 이들은 아닐 때, 이들을 이해하는 것이 내 직업의 일부이고 나를 이해하는 것은 오직 이들의 호의일 때 나는 또다시 혼자. 그러면 전화를 건다. 내가 떠나온 차원의 사람들에게. 우리가 주고받는 것은 서로가 너무 잘 아는 과거일 때도 있고 한 치 앞도 모르는 미래일 때도 있다. 뭘 주고 뭘 받든 우리 사이엔 대충 열다섯 시간 정도가 있다. 전화를 끊고 나면 까마귀 다리처럼 푸드덕 퍽퍽 날아가버릴 열다섯 시간이. 그러나 단절되어서 외롭다기엔 나는 너무나 연결되어 있다. 나는 여기에도 있고 거기에도 있다. 나는 그들의 나이기도 하고 이들의 나이기도한데 동시에 나만의 나이며, 사랑받고 미움받은 과거의 나이자 애쓰지 않는 현재의 나이자 도무지 알 길이 없는 미래의 나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외롭고 그래서 외롭지 않다. 최근에 친구 한둘과 통화를 했다. 다정한 목소리에서 걱정과 애정을 읽었다. 항상 “나도 사랑해” 하고 끊는 통화도 있고 혹여 그것이 잘못 읽힐까 차마 말로는 못하되 분명 사랑임을 알고서 끊는 통화도 있다.


나는 이제 질척하고 끈끈한 사이보다 담백하고 간결한 사이가 더 좋다. 그런 이유로 받은 사랑을 정중히 사양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었다. 괜히 자기부정 같아서 이런 것은 일기에도 쓰지 않았다. 연습하면 점점 쉬워지는 것들이 있다는 게 참 좋다. 나는 전에 없이 좋다. 나의 최우선순위는 내 마음의 평화가 된 지 오래고 이제 이것이 전혀 이기적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한 십 년 전쯤 열심히 했던 블로그와 옛날의 일기장을 뒤져보면 나의 한결같은 바람은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게 해 주세요” 였는데, 거기에 너무 많은 품이 든다면 오래도록 좋아하던 것을 그만 좋아해도 괜찮다는 게 지금의 마음이다. 이제 몇 편이고 이어서 보는 영화라든가 영화관에서 보내는 시간들, 친구들과 질펀하게 밤새 논하는 삶의 희로애락은 별로 안 좋고,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하는 뜨개질이나 상추에 물을 주는 일이나 매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과 저녁을 맞이하는 일 등이 좋다.


사실을 새롭게 바란 것도 있는데 너무 구려서 적을 수조차 없다. 이렇게 구린 것은 혼자서 비밀스럽게 바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2023 썸머캠프 기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