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옥 Jul 27. 2023

내 아이들은 아직 아빠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별이 되자, 우리 

우리는 원래 별이었다. 우리는 모두 별이다


2019. 5. 1. 1:53


이제 때가 된 것 같다. 

애기 아빠가 죽고 나서, 늘 나는 언제쯤 이 사실을 아이들에게 얘기해야 할까 고민이었는데, 오늘 문득 그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 내 아이들은 아직 아빠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애기 아빠가 죽었을 때, 아이들은 너무 어렸고, 그래서 장례식에 갈 수 조차 없었다. 애기 아빠가 죽었을 때, 나는 장례식장에서 상주가 되어 장례를 치렀고, 내 아이들은 그날도 여전히 집에 있었다. 평소에 애기들을 돌봐 주었던 시터께서 장례를 마칠 때까지 집에서 아이들을 돌봐주었고, 내 여동생 둘이 시터 퇴근하기 전에 집에 들어가서 아이들과 같이 잠을 자 주었다. 내 아이들은 아빠가 죽던 날도, 아빠 장례를 치르는 날도, 아빠를 바다에 보내던 날도 집에서 뛰어 놀았다. 그리고 그 뒤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 아빠를 찾는 아이에게 차마 아빠가 죽었다는 말을 할 수 없어서 나는 그냥 “빈아, 아빠는 멀리 갔어, 이제 못 오셔. 빈이 나중에 크면 엄마랑 같이 아빠 보러 갈 거야, 알았지?” 라고만 말해주었다. 




둘째는 아직도 너무 어려서 아빠에 대한 별다른 얘기가 없지만, 첫째는 가끔씩 “아빠랑 마트에 갔었어. 아빠랑 코끼리 봤었어. 아빠랑 놀이터에서 놀았어.” 등등의 이야기를 한다. 가만 듣고 있으면 실제로 있었던 일을 어렴풋이 기억해서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상상해서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교회에서 주일학교 모임을 해도 다들 옆에 아빠가 있고, 어디 밖에만 나가도 애기들이 엄마랑 아빠랑 같이 있고, 동화책에도, 텔레비전 만화에도, 아빠가 나오는데, 처음에는 그런 것들이 신경이 쓰였다가, 나는 차츰 많이 신경을 쓰지는 않게 되었다. 아마 아이도 그렇겠지 했다. 아이는 아빠 이야기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했다. 




그런데 지지난주엔가, 아이는 내게 “빈이 아빠는 경찰관이야.“ 라고 했다. 나는 아닌 것을 바로 잡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이제는 아이에게 조금 아빠에 대해서 얘기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어서, “빈아, 빈이 아빠는 의사 선생님이야. 아주 훌륭하신 의사선생님이야.” 라고 얘기해 줬다. 그랬더니 아이가 바로 “그럼 아빠는 어디 병원에 있어요?” 하고 묻는 것이다. 나는 순간 뭐라고 말해야 할지를 몰라서 당황했다. 내가 “음.. 음.. 아빠는. ,,“ 하고 있으니, 아이는 바로 “아, 엄마, 아빠는 치과병원에 있어요.“ 라고 했다. 




아, 아이는 아빠가 있는 장소를 물은 것이 아니라, 아빠가 어떤 의사선생님인지를 물은 것이었다. 어쩌면 아이는 아빠가 보고 싶기도 하겠지만,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가 더 궁금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답을 해주려는 데, 아이에게 재활요양병원을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응, 빈아, 아빠는 치과 병원 아닌데, 아빠는,, 음. 음.. 아, 석빈이 감기병원 가지? 아빠는 그런 감기병원 비슷한 데에 있었어.“ 라고 했더니, 아이가 “아니에요. 아빠 치과병원에 있어요.“ 라고 했다. 아이가 그렇게 우겨서, 그냥 뒀다. 사실 얘기를 과거형으로 해야 하는지, 현재형으로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서 더 이상 얘기를 끌고 가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와 그런 대화를 나누고 난 뒤 그 다음 주에 친정에 가니, 친정아빠가 내게 “경옥아, 빈이 아빠 살아있을 때, 빈이 아빠한테 가서 진찰도 받고 했었냐? 자꾸 애기가 그런 얘기 한다잉,, 오메, 내가, 빈이가 아빠 얘기 할 때마다 뭐라고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서야,,“ 라고 하셨다. 실제로 애기아빠 살아 있을 때, 애기 아빠 병원에 애기 데리고 자주 가기도 했고, 애기 아빠가 집에서도 내게 주사 놓아주고, 애기한테도 직접 주사 놓아주고 할 때도 있었고, 하니, 애기가 하는 말이 다 틀린 것은 아닌데, 애기가 아마 다 기억해서 하는 말은 아닐 터였다. 아마 내가 그 전 주에 애기한테 처음으로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말해주고 나니, 애기는 처음으로 들은 아빠 얘기가, 그게 신이 나서 상상해서 말하는 것도 있을 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아이랑 매일처럼 저녁에 영상 통화를 했고, 애기는 또 아빠에 대해서 물었다. “엄마, 빈이 아빠는 어디에 있어요?” “빈이 아빠는 언제 와요?” 라고. 나는 당황하기는 했지만, 차분히 최대한 차분히 얘기해 줬다. “아. 응. 빈아. 아빠는 지금은 멀리 갔어. 엄마가 아빠는 훌륭한 의사 선생님이라고 말해줬지? 근데 아빠가 지금은 멀리 가서 못 와. 엄마가 나중에 빈이 더 크면 더 자세하게 얘기해 줄 거야. 알았지?” 했더니, 아이는 “네.” 했다. 내 아이는 이렇게 착하다. 그런데 이렇게만 대화를 끝내는 게 좀 걱정이 되어서, 나는 아이에게 한번 더 물었다. “근데 빈아, 우리 빈이 엄마랑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동생이랑, 삼촌이랑, 이모랑 이렇게 지내니깐 너무 좋지?” 했고, 아이는 또 너무 착하게도 “네, 엄마” 라고 했다. 




그렇게 회사 건물 1층에 앉아서 아이와 통화를 마치고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는 내내 아이랑 나눴던 대화를 생각했다. 하려고 한 것은 아니고, 그냥 생각이 났다. 





2. 그리고 버스에서 내려서 집까지 걸어오는 길에서는 문득 오늘 낮에 우연히 봤다가, 너무 가슴에 사무쳤던 문구를 입으로 한 번 말해보았다. 



“별은 어둠을 탓하지 않습니다.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것이 별의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몇 번을 중얼대는 동안 눈물이 났다. 발견하고, 아,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노트에 몇 번을 적었었다. 그리고 걷는 중에 생각이 나서, 캄캄해서 아무도 없는 김에, 나 혼자 입으로 중얼중얼 해보고 싶었다. “별은 어둠을 탓하지 않습니다.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것이 별의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몇 번을 얘기해서 외워버리고 싶었는데, 그렇게 몇 번을 얘기하는 동안 계속 눈물이 났다. 소리 내어 울지는 않고, 그냥 눈물이 조용히 내려오는 동안에 옆으로 사람 몇이 지나가기는 했는데, 아마 어두워서 내가 울고 있는 것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몇 번 입으로 말하다 보니, 처음 보고 느꼈던 것과, 손으로 적어보았을 때 깨달았던 것과는 또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 문장을 만나고, 그 문장을 노트에 적으면서는, 이런 생각을 했다. “아, 그렇지 어둠을 탓해서는 안 되는 거구나. 그렇지. 그냥 그 어둠 속에서 빛을 내면 돼. 그게 나한테 주어진 내 소명인 거야. 이건 내가 스스로 빛나라는 뜻인 거야. 애기 아빠가 죽은 이 상황은 아무 것도 아니야. 이걸 탓해서는 안돼. 이건 오히려 내가 더 찬란히 빛나야 한다는 그런 뜻인 거야. 늘 햇빛이나 달빛 아래서 지내는 사람은 평생 밝힐 수 없는 그런 빛을 내라는 뜻인 거야”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입으로 몇 번 문장을 말하다 보니, 나는 그제서야 비로소, 거기에서 더 나아가, 내가 “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 그렇구나. 내가 별인 거구나. 내가 별인 거구나. 그래, 내 아이들에게도 얘기해줘야겠다, 너희들도 다 별이라고. 빈이랑 윤이랑, 엄마랑,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이모, 다 별이라고.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이 별이고, 별은 다 같이 있지만, 또 홀로, 스스로 빛나는 것이라고.”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눈물이 났다. 내가 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너무 기쁘고 황홀해서.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아이에게 아빠는 별이 되었다고 말해줘야겠다, 고 생각했다. 





3. 사실 얼마 전에 봤던 영화(맨인블랙 3, 마지막 부분 대사)에서 “네 아빠는 영웅이란다.” 라는 말을 듣고, “아, 이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어제 저녁에 본 워렌 버핏의 인터뷰 중에 워렌 버핏도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내 아버지는 살아있을 때도 그렇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언제나 저의 영웅이세요.”라고 말했고, 나는 바로 이것이 워렌 버핏을 워렌 버핏이게 만든 이유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의 아이들에게도 “너희 아빠는 영웅이란다” 라고 말해 주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물론 나는 그러기에 아주 유리한 위치에 놓여 있음에 틀림없다. 아빠가 죽고 없으니, 살아서 매일 일상의 생활로 부딪치며, 인간의 약하고 부족한 모습을 보여줄래야 보여줄 수가 없으니 말이다. 사람은 원래 가까이 할수록 더 못난 모습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니, 죽어서 별이 된 아빠는 영웅이 되기에 아주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 그리고 아빠가 영웅이면, 아이는 자라서 적어도 요원(맨인블랙)이 되거나 아님 세계 최고 부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도 저도 아니라고 해도 최소한 ‘훌륭한 사람’은 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 저녁, 아이들도 별이고, 나도 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아이에게 이제 아빠는 별이 되었다고 말해주려고 생각하니, “너희 아빠는 영웅이란다.”를 비롯한, 내가 최근에 보고 느꼈던 많은 것들이, 오직 아이에게 아빠에 대해서 이야기를 잘 해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스파이더 맨을 다시 보았고, 나는 이번에 영화를 보다가 비로소 스파이더 맨도 부모가 없이 숙모랑 같이 자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아주 어릴 때부터 아빠가 없이 엄마랑도 떨어져 살았었다고 말해주려고 했었는데, 이 이야기를 할 때 스파이더맨도 같이 얘기해 줘야겠다. 요즘 아이가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등을 좋아하니, 어쩜 효과가 좋을 것 같다. 



이제 나는 어느 정도 준비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아이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는 애기들 학교에 다니게 되면 얘기해 주려고 했었는데, 아이에게 아빠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해주지 않고 멀리 갔다고만 하는 것도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4. 이번 주말 친정에 갈 때는 애기 아빠가 마지막에 입었던 가운과, 사용했던 청진기와, 그리고 애기아빠와 나의 결혼 앨범과, 아이들의 돌 앨범을 가지고 가야겠다. 



(둘째 돌이 되기 전에 애기 아빠가 죽어서, 둘째 돌 앨범에는 아빠가 없는 게, 둘째가 좀 서운해할까봐 그게 좀 걱정이기는 하지만). 아이가 아직 글을 잘 모르지만, 가운을 보여주면서 이게 아빠 이름이라고 말해주고 (가운 하나는 애기 아빠 관에 넣어줬었고, 가운 하나는 아이들에게 주려고 남겨 뒀었다), 이게 아빠가 썼던 청진기라고 얘기해줘야겠다. 그리고 결혼 사진을 보여주면서 아빠랑 엄마랑 결혼해서 빈이랑 윤이가 태어난 것이라고 얘기해줘야겠다. 아빠는 비니랑 유니를 너무 사랑했는데, 많이 아파서 이제는 하늘에 있고, 별이 되었다고 말해줘야겠다. 그렇지만 우리도 원래 다 별이니, 다 괜찮은 것이라고 말해줘야겠다. 별들은 모두 홀로 빛나는 것이고, 언젠가는 다 다시 원래의 별로 돌아가게 된다고 말해줘야겠다. 그러니 아빠는 조금 일찍 별이 된 것뿐이라고 얘기해 줘야겠다. 



 그리고 아빠는 몸이 아픈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진료해주시는 의사선생님이었고, 침대가 굉장히 많이 있던 병원을 운영했던 의사선생님이었고, 할머니들이 걷는 것이 불편하면 직접 진료실 밖으로 나가서 모시고 들어와서 진료를 했던 훌륭하신 의사선생님이었다고 얘기해줘야겠다. 너희 아빠는 영웅이었고, 그래서 이제는 별이 되었다고. 그리고 사실 우리도 별이라고. 그러니 다 좋은 것이라고. 그저 스스로 빛나면 된다고. 얘기해줘야겠다. 





2023.07.27



벌써 몇년 전의 글. 

그래, 우리는 모두 별. 별이 될거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 


더 반짝이고, 더 빛날 거다 




사별을 4별로. 


빛나는 4개의 별. 사별 


사별 후 더 잘사는 인생. 꼭 만들수 있습니다. 



https://open.kakao.com/o/gCODPqtf



 


매거진의 이전글 내리사랑이 치사랑보다 크다는 것이 맞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