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니까
82년생인 김지영은 딸아이를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남편은 평범한 중견기업의 직장인이고, 김지영은 규모가 크지 않은 홍보회사에 다녔으나, 아이를 출산하기 전 남편과 여러가지를 상의해 본 끝에 지영이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딸을 키워내면서 아이의 돌이 지난 어느 날 지영은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간혹 지영은 자신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로 분하는 것이었다. 남편은 일시적인 것이려니 했지만 아무래도 이상했다. 문제는 명절때 지영의 시댁에서 터졌다. 지영은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와 시누이 등 시댁식구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몸소 친정엄마로 변신하여 자신의 얘기를 대신했다. “그집 딸이 그 집에 오면 저희 딸도 저희집에 보내주셔야지요. 저희도 명절때 아니면 다같이 모이기 힘들어요. 요새 애들 사는게 다 그렇지요.”라고. 그냥 흉내낸 것이 아니라, 정말 지영은 엄마가 되었다.
남편은 서둘러 짐을 챙겨 집을 나왔다. 그리고 남편은 지영이 뭔가 이상하다는 확신을 갖고 지영을 치료해야 겠다 생각했다. 지영은 비로소 이 과정에서 자신도 몰랐던 이제는 어쩌면 익숙해져 버린 자신의 과거들을 생각해 낸다.
지영은 특별히 폭행을 당하지도 않았고, 자격이 없는 부모밑에서 자라지도 않았으며, 특별히 공부를 못하지도 잘하지도 않았던 평범했던 82년생 여자. 그리고 여자라는 이름으로 지워진 많은 굴레들. 아들을 원했던 할머니로 부터 받았던 치사했던 차별, 자신을 괴롭히는 남자애가 실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라는 담임선생님. 자신을 쫓아오던 남자애를 보고 오히려 자신을 나무라는 아빠.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자로서의 지영의 평범한 삶은 계속 된다. 대학 시절 친구들로부터의 경험, 그 이후 취직한 직장에서 경험까지, 지영이 결혼을 하고 나니, 임신 과 출산 가정에서의 역할까지, 그녀는 특별히 나쁜일을 당한 적도 없는 그러니까 그저 평범한 한 여자일 뿐이었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산후 우울증과 육아 우울증에 걸린 것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이 책을 읽고 한동안 멍한 기분을 유지했다. 다른 책을 바로 보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분명 나와 동갑인 내 시대인 얘기 인데, 나는 어쩌자고 이렇게 모르고 살고 있었을까?
그리고 나는 왜 김지영씨가 겪었던 비슷한 문제들을 다 겪고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미치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어쩌면 내가, 김지영씨와 내가 비슷하게 겪었을 모든 일들을 그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고, 왜 그런일들이 일어나야만 했는지에 관해서 아무런 문제 의식이 없이, 오히려 그것이 오로지 내 탓이라고, 그러니 내가 변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 까닭을 내 안으로 돌리고 있었는지 몰랐다. 김지영씨의 아버지가 고등학생인 지영을 따라오는 치한같은 남자를 보고서는, 오히려 김지영씨에게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고 혼냈던 것처럼, 나는 그동안 내 스스로 내게 그렇게 말했는지도 몰랐다. (이런 태도마저 학습의 산물일테지만.)
“세상은 당연히 그렇게 흘러가니깐. 나는 그 세상에 적응해서 살아야 한다. 그러니 그 속에서 내가 겪는 어려움은 당연히 내가 겪어내야할 과제, 그 이상은 아닌 것.”
아마 이런 태도가 내가 지금까지 지영씨처럼 미치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였을 것이다. 물론 나도 가끔씩은 화가 나고, 세상의 불합리를 보고 좌절했던 때도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그것을 해결할 만한 힘이 내게 없었고, 그저 작게 지저귀다가 다시 원상복귀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초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내가 잘하면 된다고.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바로 내가 미치지 않은 비결이었다.

생활력 넘치는 여자가 없다면, 많은 가정이 발전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진실. 그리고 한 여자가 자라는 동안, 그 여자가 어릴 때부터 마주하게 되는 여자라는 이름으로 자유를 억압하는 굴레들이 얼마나 많은 가에 대한 인지. 대학에서도,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도, 나는 아무런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다. 그나마 성인이 되어 시작한 직장생활에서 성희롱 등에 대한 눈을 떠가고 그 속에서 나를 지키고자 노력했던 나의 작은 행동들이 내가 조금이나마 사회 구조에 대해 인지하게 된 계기이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크게 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게도 결혼이라는 게 왔고, 자연스레 아이를 낳았고 아이를 키웠고, 시댁 남편 등 여러가지 문제가 겹쳐 나도 김지영씨처럼 원한 적은 없었지만, 어느날 눈을 떠보니 전업주부가 되어 아이를 키우면서 살고 있었다. 나는 누구를 만나도 건네줄 수 있는 명함한장 없었다. 살아오면서 한번도 전업주부를 꿈꿔본 적 없었던 나는 전업주부가 된 이후로 육아와 살림을 하며, 늘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정신적 혼란 속에 살았지만 나는 이것을 내가 극복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언젠가 다시 사회에 나가게 될 때, 아니 나가야만 하는 때가 온다면, 어쩌면 내가 이전에 사회에서 가졌던 위치를 회복하기가 힘들지도 몰랐고, 당연히 최저임금 일자리부터 골라야 될지도 몰랐지만, 나는 그저 그것이 다 당연한 일, 내 일, 내가 당연히 스스로 이겨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가끔씩 억울하고 서럽고 힘들었지만, 간혹 만나는 어른들은 내게 “아이고, 나는 더 힘들게 살았어. 요새 것들은 고생을 모르고 커서 이것도 힘들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아이를 낳는 것은 여자가 할 수 밖에 없는 일이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여자가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니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 와중에 생겨나는 많은 문제들은, 그저 내가 여자로 태어난 업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지냈다.

하지만 오늘 나는 생각한다. 자연스러운 것이 당연한 것일까 하는 의문.
아이를 키우다 보면 사람은 어쩌면 ‘성악설’이 맞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아이는 다분히 자기 중심적이고 또 폭력성을 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에게 인사를 가르치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가르치고, 사람을 때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폭력적이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는 것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후의 부단한 학습으로 가능한 것이다. 한번의 가르침으로 알아듣는 아이는 없다. 같은 말을 부던히 반복하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그때서야 아이는 습득한다.
아이가 자신의 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나 갖가지 사회규범들을 배워나가듯이, 세상 모든 진보는 그런 자연스러운 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었다. 우리는 어쩌면 원시시대 그렇게 서로 물고 뜯으며 살았던 생활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폭력을 없애고,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학습하면서 진보해 왔을 것이다. 그것은 모두 자연스러운 것, 본능적인 것으로부터의 탈피를 위한 노력이었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폭력적이고,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는 강하게 구는 이중적인 모습이 어쩌면 자기 본능이었으나, 점차 그 본능을 제어하면서 발전해 온 것이었다.

여자여서 내가 자연스럽게 맞닥뜨려야 하는 많은 일들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수도 있었다. 정상적이지 않은 사회에서는 오히려 정상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미치게 되고, 사회에 발맞춰 같이 정상적이지 않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미치지 않고 살수 있다. 비정상적인 사회에서는 비정상적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적응 비결인 것이다. 나는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바람직한 것인지 올바르게 알지 못했다. 지금 내 몸과 마음은 힘들지만 이것은 내가 조금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고, 그러니 아무렇지 않다고. 그렇게 초 긍정적인 마인드로 지금까지 살았다. 하지만 나는 내 후배들, 내 아이들은 굳이 초긍정적인 마인드를 갖지 않아도, 사회에서 내 권리와 의무를 올바르게 행하면서 살아도 미치지 않고 살수 있는 그런 삶을 살기를 바란다.
“나는 너희들보다 더 힘들게 살았다”
고 말하는 그 어른들이 본인들의 부모님보다 그래도 더 나은 삶을 살았던 것은, 그래도 더 인권이 보장되고 더 힘들고 가혹한 노동에서 해방되어 살았던 것은, 본인에게 닥친 상황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그 어른들의 부모님세대의 진보적인 사람들, 여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어른들이 내게 “나는 너보다 더 힘들게 살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내 아이들, 내 후배들이 나보다는 힘들게 살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이 세상을 그래도 제대로 살아냈다는 증거일 것이므로. 너가 힘들게 살지 않는 것은 내가 잘 살았다는 증거일 것이므로.
그러므로 나는 너가 만약 나보다 힘들지 않게 산다면, 나는 너를 질투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조금은 나의 공으로 여기며,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그리고 너의 후배들은 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너가 또한 노력하기를 응원할 것이다.
(지난 해, 남편이 아직 살아 있을때 썼던 글이라서.. 지금과는 약간 다른 상황이긴 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