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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늬바람 Sep 17. 2023

서평 <보이지 않는 질병의 왕국>

내 피로는 나한테 문제가 있어서, 내 존재 자체가 문제라서 생긴 것 같았다(46쪽).    

  

2019년 겨울, 정기 건강검진의 일환으로 유방암 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몇 차례 검사를 마친 뒤 유육종증*을 확진받았다. 여러 차례 검사를 마친 의사는 나에게 몸이 이 상태가 되면 엄청 피곤했을 텐데 알지 못했냐고 물었다. ‘아니요, 그냥 일이 많아서 피곤한지 알았는데요.’ 유육종증으로 인해 발현되는 증상은 특별하게 구분되기 어려울 정도로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무기력이나 피로, 체중 감소 등과 이어져 있었다. ‘이래서 한국 사람들은 안 돼, 일을 너무 많이 하잖아.’ 의사는 동의를 구하듯 옆에 서 있는 간호사를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자가면역질환의 하나로도 볼 수 있으나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 앞에, 나는 일을 많이 해서 내 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사람으로 전락해 버렸다.      


메건 오로크의 질병 서사를 읽는 동안 몇 년 전 내가 경험해야만 했던, 지금도 역시 겪고 있는 수많은 순간들이 교차했다. 〈보이지 않는 질병의 왕국〉은 그가 원인과 이름을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질병으로 인해 생긴 발진, 무기력, 피로, 브레인포그, 우을 등의 극심한 증상을 오랜 시간 견디면서 자신이 무엇을, 왜, 어떻게 겪고 있는지 찾아가고 파악하려고 하는 이야기이다. 결국 메건 오로크는 라임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와 더불어 면역 체계를 비롯한 다른 질병 때문에 복합적인 증세로 정확한 병명을 더 빠르게 알기 어려웠음을 깨닫게 된다. 두꺼운 책에 촘촘하게 적혀 있는 모든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때로는 답답하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고 저자의 집요함에 압도되기도 한다. 하지만 마침내 ‘라임병’을 진단받아 적절한 약을 복용하고 체력과 기운을 되찾아 삶을 즐기는 순간에 안도하며, 그토록 희망했던 임신과 출산의 경험을 함께 응원할 수 있어서 기뻤다. 물론 병은 “언제고 무엇이든 올라올 수 있는 열린 창문으로 남았(393쪽)”지만 말이다.    


 

메건 오로크 (지은이), 진영인 (옮긴이) / 부키  

   

세속적이고 개인화된 문화 속에서 정체불명의 병은 필연적으로 진정한 자기 모습을 찾아서 개선할 기회로 여겨진다는 것이다(208쪽).       


처음 유육종증을 진단받고 나서 가장 먼저 했던 행동은 검열이었다. 내가 저질렀을 잘못을 자문하고 병의 원인으로 이어질  있는 가능성을 상상했다. 의사 말처럼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스트레스가 쌓여서 생긴 걸까. 몸이 어떤 신호를 어떤 방법으로 주었던 걸까. 나는 어디서 무엇을 놓친 걸까. 수면 시간, 먹는 음식, 운동 여부, 업무의 과중,  나아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할  있는 스트레스까지 병의 원인과 연결되는지 여부를 생각했다. 정확한 원인이 없다는 불확실성은 병의 출발을  자신으로 환원하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병의 원인이   있으므로. 메건 오로크 역시 자신의 질병과 증상이 무엇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 끈질기게 찾고자 애썼다. 관련 분야 전문가를 찾아가고 의사들을 만나고 대체의학을 시도하면서 식습관을 바꾸고 영양제를 처방받아 복용하고 몸에 좋을 것만 같은 루틴으로 하루를 구성해 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바꾸어도 일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물론 일정 시간 어느 정도 효과를 내기도 했으나 아주 자그마한 계기로 혹은 갑자기 어떤 날부터 상황은 뒤바뀌어 버리기 일쑤다.  긍정적인 효과는 미미하게 드러나면서 상태가 나빠지는  한순간일까.      


메건 오로크는 환자들이 자가면역질환을 ‘궁극의 자기 관리 프로젝트’로 받아들인다고 지적하면서, 그렇지만 사실 ‘자가면역은 사회집단에 결함이 있음을 보여주는 질병’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유육종증 확진을 말했던 의사는 내가 과중한 업무 때문에 나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것처럼 말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한국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나를 비롯해 그들은 왜 일에 파묻혀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걸까. 급변하는 한국사회, 현대기술의 발전, 일을 해내지 못하면 저평가받는 문화, 회사에 대한 열정이 야근으로 증명되었던 역사, 점점 더 높아지고 당연해지는 비정규직 직원 비율, 하청에 하청으로 이어지는 산업구조에 얼기설기 꿰여버린 개인의 일상에는 질 좋은 음식과 수면, 스트레스 없는 업무와 타인과의 관계는 상상하기 불가능하다. 더욱이 저자가 미국 현대의학에서 빗대어 말했듯, 자가면역 질환과 같이 겉으로는 아무런 증상이 없이 매일매일 아픈 개인을 위로하고 적절한 의학적 보조를 줄 수 있는 현대의학 구조를 한국 사회에서도 찾기 어렵다. “우리 의료 시스템은 수술이 필요할 때는 참 훌륭해. 그렇지만 매일같이 아픈 사람은, 병원에 가도 들을 수 있는 말이 거의 없으니 끔찍해(105쪽).”     


내 탐색에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불확실성과 부족함을 안고 사는 길을 배우는 것이었다(22쪽).      


유육종증이라는 기저질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초반에는 이 병을 프로젝트처럼 여겼다. 질병 발병 – 치료 – 회복 등의 사이클로 이어져서 처음과 끝의 맺음이 확실한 프로젝트 말이다. 그것이 내가 배운 병이라는 존재의 전부였다. 아프면 다시 건강해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 다른 질병들이 발병하면서 마치 끝나지 않은 레이스를 완주해야만 하는 압박감처럼 느껴졌다. 알 수 없는 종점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막막함이 자주 머릿속에 맺혔다. 아프다는 것이, 나이가 든다는 것이 이렇다는 것을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고, 알려주지 않았다. 혹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걸까. 메건 오로크는 질병에 대해 전문가들과 인터뷰하고 전국 각지를 돌며 저명한 의사들을 찾아 치료받고 그 과정을 글로 녹여내는 방식으로 자신의 서사를 구성하고자 했다. 그의 직업적 특성 때문에 가능한 것일 수도 있고 그것이 그가 살아낼 수 있는 방식이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지만, 저자처럼 집요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비교되기도 했다. 내 몸을 방치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함께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질병을 겪고 있는 우리 모두는, 매일을 살아가야 하므로 찾아야 한다. 처음과 끝이 명확하지 않은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말이다. 내가 일구는 그 모든 것이 병의 원인이 아님을,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실질적인 도움과 공감이 사회 전반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명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종종 잊어버리고 자주 흐릿해지니까.         


* 신체의 여러 기관에 육아종이라고 불리는 염증 세포의 덩어리들이 생기는데 한 기관에 머물러있지 않고 여러 곳으로 퍼진다. 나의 경우, 폐에 가장 큰 염증이 있으며 겨드랑이 등을 비롯해 다른 기관으로 조금씩 이전된 상태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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