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이 비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보건학자 김승섭은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를 통해 천안함 사건을 되짚으면서 묻는다, 한국 사회는 이 비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이냐고 말이다. 누구도 경청하려 하지 않았던 천안함 생존장병들의 이야기들이 하나씩 풀어헤쳐지는 동시에 세월호 참사 생존자, 피우진 전 보훈처장, 고 변희수 하사의 이야기가 한데 모이면서 이들의 모습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서서히 알아차리게 된다. 비극의 당사자들을 마주하면서 내내 머릿속을 관통하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과연 한국 사회는 ‘능력 있는 몸’이 되지 못한 존재들을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지에 대한 태도였다.
능력 있는 몸을 가진 존재들은 누굴까. 천안함 사건만 살펴보자면,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에 정신적·신체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인정받는 군인일 것이다.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만연한 군대에서 정신적으로 또는 신체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군인들은 충분히 제 몫을 다하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 천안함 생존장병들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불명예와 온전하지 못하다는 수치심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직업군인으로서의 자신의 꿈도 실현하지 못한다. 특히 한눈에 알아차릴 수 없고 쉽게 인지하기 어려운 정신적인 피해를 입은 장병들의 아픔은 그저 나약함으로 치부되었다. 이들을 위한 적절한 보상과 지속적인 사회적 보살핌은 제공되지 않았다.
배가 침몰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매뉴얼이 존재하는 것처럼 침몰로 트라우마를 경험한 군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매뉴얼이 있었다면 군인의 길을 포기한 생존장병의 숫자는 확연히 줄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만큼 생존장병이 회복될 때까지 기한 없이 기다려주기는 어렵겠지요. 이런 경우 일정한 기한을 정하고 그때까지는 여러 사회심리적 지원과 재활 프로그램을 순차적으로 진행하며 생존장병이 직업군인으로서의 미래를 스스로 포기하지 않게 함께 노력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108쪽-109쪽)
저자는 여전히 미국이 일으킨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 군인들이 겪은 트라우마에 대해 제대로 된 연구가 없다고 밝힌다. 전쟁이나 전투에서는 이기기 위해 사력을 다한 영웅만이 있을 뿐,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몸들이 어떤 상처를 입었고 어떻게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노력은 삭제되었다. 능력이 없다고 치부되는 몸에 대한 국가의 태도는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
‘능력 있는 몸’이 아닌 기준은 젠더 이데올로기에 빠지기도 한다. 피우진 전 국가보훈처장은 군인으로서 최선을 다하지만 자신의 몸으로 인해 능력 있음을 규명하지 못한다. 그가 군인이었을 당시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면서 양쪽 유방을 절제하게 된다. 여성의 가슴은 남성들이 대다수인 군대에서 차별의 대상이자 불필요한 것이었다. 그는 직업상 큰 문제가 없다는 판단에 절제하게 되었으나 결국에는 그 절제가 ‘양쪽 유방 절제’라는 심신장애 2급에 해당된다는 이유로 강제 퇴역 처분을 받는다. 변희수 하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트랜스젠더였던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오랜 고민과 대화 끝에 동료 군인들의 지지를 받고 성전환 수술을 하게 되지만, 고환과 음경을 제거한 그에게 군대는 심신 장애 3급을 판정하고 강제 전역시킨다. 어릴 때부터 군인의 삶 이외에 그 어떠한 삶도 상상해 본 적 없는 그는 충만한 애국심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된 존재로 치부되었다.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는 천안함 생존장병, 세월호 참사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 피우진과 변희수의 이야기를 심도 있는 인터뷰와 촘촘한 조사를 기반으로 ‘능력 있는 몸’에 둘러싸인 이데올로기를 해체하고자 시도한다. 더 나아가 ‘다양한 몸’들이 이 사회를 보다 안전하고 존엄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지에 함께 고민하기를 제안한다. 이 책은 천안함 생존장병의 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이 천안함 사건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연대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천안함은 산업재해 사건입니다.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군인들이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다 목숨을 잃고 다친 일이니까요. (194쪽)
김승섭은 천안함 사건을 산업재해로 규정하며, 그동안 정치적, 사회적 편견 때문에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본질을 직시하게 도와준다. 사건에서 사람을 중심으로 놓고, 그 사람이 어떻게 이 사건을 견뎌냈는지 알려준다. 물론, 천안함 사건은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복잡한 이해관계가 결부된 사건이지만 한국 사회가 그동안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말한다. 바로 한국 사회가 어떻게 이 비극을, 사회적 재난을 기억하고 마주하고 있는지에 대한 태도 말이다.
그래서, 미래를 살아가는 셀 수 없이 다양한 존재들이 이겼으면 한다. 그 길에 함께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