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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블레이더 Jul 24. 2024

A.I.돌을 이겨라

'완벽한' 노래를 찾아서

제이미의 손가락이 기타 줄 위에서 떨렸다. 녹음실의 붉은 불빛이 그의 긴장된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괜찮아요, 제이미. 편하게 노래해보세요." 


유리창 너머로 프로듀서 린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이미는 깊은 숨을 내쉬고 노래를 시작했다. 처음엔 떨리던 목소리가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그의 감정이 한 음 한 음에 실려 공기를 진동시켰다.


노래가 끝나자 린은 환하게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훌륭해요! 이제 우리의 특별한 파트너 차례네요."


제이미의 미소가 사그라들었다. 그는 천천히 부스를 나와 린의 옆에 섰다. 모니터에는 'A.I.돌'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이 실행되고 있었다.


"자, 이제 A.I.돌이 당신의 노래를 분석하고 '완벽한' 버전을 만들어낼 거예요." 린이 설명했다.


제이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가슴 한 켠에서 불안과 호기심이 뒤엉켰다.


몇 분 후,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분명 제이미의 목소리였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무언가였다. 완벽하게 조율된 음정, 정확한 감정 전달,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섬세한 표현... 그것은 말 그대로 '완벽한' 노래였다.


"와우..." 린이 감탄했다. "이건 정말 대단해요. 제이미, 당신의 재능과 A.I.의 기술이 만나 이런 걸작이 탄생했어요!"


제이미는 억지로 미소 지었다. 그의 눈에서는 복잡한 감정이 읽혔다.


6개월 후, 제이미의, 아니, A.I.돌의 노래는 모든 차트를 석권했다. 음악 평론가들은 이 노래를 '세기의 걸작'이라 칭했고, 팬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제이미의 마음속에는 공허함만이 가득했다. 그는 꿈을 이루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잃은 것만 같았다. 


어느 날 밤, 한적한 바에서 술을 마시던 제이미에게 옆자리의 낯선 이가 말을 걸었다.


"혹시 당신이 그 유명한 가수 제이미 아닌가요?"


제이미는 쓴웃음을 지었다. "전 그저 AI의 '원본 소스'일 뿐이죠."


"흠..." 낯선 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노래는 정말 아름답던데요. 제 마음을 울렸어요."


제이미는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정말요...? 그게... 제 진심이 전해진 걸까요?"


"당연하죠. AI가 아무리 뛰어나도, 인간의 감정을 완벽히 복제할 순 없잖아요. 당신의 진심이 있었기에 그 노래가 특별한 거예요."


그 말에 제이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랜만에 그의 가슴속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다음 날, 제이미는 결연한 표정으로 린의 사무실을 찾았다.


"린, 새 앨범을 만들고 싶어요. AI의 도움 없이, 온전히 제 손으로요."


린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제이미, A.I.돌 없이는 성공하기 어려워요. 지금 음악 시장은..."


제이미가 린의 말을 끊었다. "알아요. 하지만 전 제 진심을 노래하고 싶어요. 설사 그게 '완벽'하지 않더라도요."


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한번 해보죠."


몇 달 후, 제이미의 새 앨범이 발매되었다. 음원 차트에서의 순위는 높지 않았지만, 입소문을 타고 서서히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제이미의 날것의 감정과 진정성에 매료되었다.


한 팬은 이렇게 댓글을 남겼다. "AI의 노래는 완벽했지만, 제이미의 이 앨범은 '인간적'이에요. 제 마음에 와닿아요."


제이미는 그 댓글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진정한 예술은 완벽함이 아닌, 불완전함 속의 진심에서 탄생한다는 것을.


그의 도전은 음악계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다른 뮤지션들도 AI의 도움 없이 순수한 자신들의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고, 대중들은 그 '인간적인' 음악에 열광했다.


제이미의 두 번째 앨범이 발매되던 날,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차트를 확인했다. 놀랍게도 그의 앨범 속 타이틀 곡, '너무도 인간적인 노래'는 기존 유명세에 힘 입어 단숨에 1위를 차지했다. 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제이미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린이었다.


"제이미, 큰일 났어요. A.I.돌이... 당신의 새 앨범을 분석해서 더 '인간적인' 버전을 만들어냈어요. 지금 차트를 독식하고 있죠."


제이미는 얼어붙었다. 그가 다시 차트를 확인하자, 그의 타이틀곡은 이미 2위로 밀려나 있었다. 1위는 '너무도 인간적인 노래 - A.I.돌 ver.' 이었다. 앨범 차트에서도 똑같은 제목에 'A.I.돌 ver.'이란 글씨가 쓰인 앨범이 1위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제이미는 중얼거렸다. "A.I.돌이 어떻게 제 앨범을 그렇게 빨리 분석할 수 있었던 거죠?"


린은 잠시 침묵했다. 그녀의 목소리에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글쎄요... A.I.돌이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했나 봐요. 이제 그건 단순히 완벽한 음악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불완전함까지 이해하고 재현할 수 있게 된 거죠."


제이미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린, 혹시... 당신이 A.I.돌에게 곡을 입력한 건 아니죠?"


전화 너머로 린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제이미, 미안해요. 사실... 맞아요. 제가 당신의 앨범을 A.I.돌에게 공유했어요. 회사에서 압박이 심했거든요. A.I.돌을 두고 왜 모험을 거냐고..."


제이미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린의 목소리가 떨렸다. 

"정말 미안해요, 제이미. 하지만 이건 비즈니스에요.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제이미는 전화를 끊었다. 그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그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인간다움'이 AI에 의해 모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가장 신뢰했던 동료에게 인간적으로 배신당한 것이다.


며칠 후, 제이미는 린을 마주하기로 결심했다.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린은 미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


"제이미, 다시 한 번 사과드려요. 하지만 당신도 알잖아요. 이 업계가 얼마나 냉혹한지..."


제이미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알아요, 린.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계속 가면... 결국 AI에게 모든 걸 빼앗기고 말 거예요. 우리의 창의성, 우리의 감정, 심지어 우리의 존재 이유까지도요."


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어쩌면... 우리의 역할은 AI에게 더 나은 '인간다움'을 가르치는 것일지도 몰라요. 그게 지금은 뭔지 모르겠지만요."

인공지능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그에 따른 인간의 역할 변화에 대한 생각을 담았습니다. 음악 산업을 배경으로, AI가 단순히 인간의 능력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고유한 특성까지 이해하고 재현할 수 있게 되는 미래를 그립니다. 
주인공 제이미를 통해, 기술 발전에 따른 인간의 정체성 위기와 새로운 도전을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AI의 완벽함에 위협을 느끼다가, '인간다움'의 가치를 재발견하지만, 결국 그마저도 AI에 의해 따라잡히는 상황은 우리에게 AI 시대의 인간의 역할에 다시 고민하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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