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는 것을 받아들였다
어스름했던 아침. 그 날 따라 나는 눈이 일찍 떠졌었다. 여느 때와 같이 세수를 하고, 출근 준비를 위해 거울 앞에 앉았다가 무심코 달력을 보았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화장실로 향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 생긴 것 같다. 희미하게 보이는 두 줄... 그럴 줄 몰랐는데... 아직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는데... 아가가 찾아왔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소중한 첫 아이의 감동보다는 원망이 섞인 말을 하게 된다. "어떻게 된거야!!!" 남편은 자다가 일어나 "......."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계획이 있었었다. 우리는 8월에 여행을 하기로 했고 그 여행의 결제일이 오늘이었던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했는데 아가가 왔다. 해야할 일이 참 많아졌다. 여행은 취소를 해야만 했고, 아가에게 좋을만한 산부인과를 선택해야했다. 뱃 속의 아가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아봐야 했고,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고민해야 했다. '아직 나는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엄마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나는 없어지고 엄마가 되었다. 하루 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직은 나 자신도 어른이 되지 못하였기에 아가라는 것이 부담이 되어버린 것이다.
출근을 해서 여느 때처럼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나를 향해 돌진해오자 나도 모르게 배를 감싸게 되었다. '엇! 모성애?' 하핫! 나에게도 모성애가 있었나 보다. 그렇게 뱃 속에 있는지 없는지 느껴지지도 않는 아가를 위해 스스로 아가를 보호하였다. 그러면서 '아~ 나 정말 엄마가 되나봐.' 하였다. 받아들이는데 하루가 걸렸다. 나는 원래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하기 싫은 일도 금세 수긍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열심히 하지는 못한다. 아가를 받아들이는 것도 금세였지만 열심히 받아들이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아가는 다른 일들과는 너무 다른데 말이다. 정말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뱃 속의 아가를 받아들이며 하루를 보냈다.
퇴근길에 다시 남편에게 전화를 한다. "우리 아가가 오긴 했나봐. 그런데 언니들이 아직 병원에 가지 말래. 가도 안 보인다고. 며칠 전에 눈다래끼가 났을 때 약을 안 먹길 잘했지 뭐야. 하마터면 아가한테 안 좋을 뻔 했어. 갑자기 사과를 먹고 싶었던 것도 이상해. 나 며칠 전에는 갑자기 삼겹살을 가지고 집에 갔어." 주저리주저리 내가 아기를 받아들인 후 생각해 보았던 아기가 오는 징조를 이야기 하였다. "난 겁이 났어. 너가 아가를 너무 안 좋아하는 것 같아서... 게다가 나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거든. 우리 예상하지 못했던 아가여서 당황스러웠는데 새벽부터 너가 소리를 질러서 더 깜짝 놀랐지. 그런데 잘 온 것 같애." 남편도 많이 당황했었단다. 이렇게 우리는 준비도 되지 않은 채 부모가 되었고 부모가 되기를 받아들이는데 겨우 하루가 걸렸다.
우리는 주말부부였다. 그래서 나는 친정 부모님 댁에 살고 있었다. 남편은 다행이라고 했다. "장모님, 장인어른이 옆에 있으니까 그래도 안심이 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옆에 있고 아빠가 옆에 있어서 너무 든든하였다. 엄마는 나에게 엄마 선배이기도 하니까... 다음 날은 임신하면 먹으면 안되는 것과 먹으면 좋은 것을 찾아보았다. "율무차는 먹으면 안되는구나. 파인애플 심은 유산을 하는데 사용하기도 했다네. 비타민C도 많이 먹으면 아가에게 안 좋대." 아가에게 안 좋은 것들을 적어 본다. 이럴 때 메모를 잘하는 내 습관이 도움이 된다. 탄산음료는 아가가 아토피가 생기게 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에 탄산음료도 안 먹게 되었다. 아가를 만나는 처음은 서툴고 서툰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