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곳에 있었을 때엔, 해 질 무렵부터 하늘에 이불을 덮듯 먹구름이 몰려왔고, 깊은 밤엔 어둠 속으로, 수시로 마른하늘에 번개가 번쩍이며 마을을 반짝이게 했었다,
숙소 침대 옆 탁자엔 손전등이 있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여섯 번 정도 수시로 전기가 나가는 걸 보고서야 대수롭지 않게 보던 그것의 필수 용도를 이해하게 된다.
정전 자체는 두렵지 않았지만, 정전으로 에어컨 멈춤과 함께 시작되는 그 푹푹 찌는 습한 더위와 그 여파로 환기시킬 때 들이닥칠 모기가 두려운 밤이었지만, 그래도 어둠의 운치와 고요함을 벗 삼고 흐르는 땀을 받아들이고 누우면 어느 순간 에어컨이 켜져 얼마간 자기 할 일 하다가 지치면 또 나갔다가를 반복했던 곳.
무엇보다 수시로 번쩍이는 번개가 그려 놓는 어둠 속의 풍경을 감상하기 좋았던 인상적인 밤을 가진 마을이었기에, 쿠바 여행에서 잊지 못할 기억을 준 곳이기도 하다.
밤이 지나고, 몇 시간 후 닭 우는 소리와 함께 여명과 새벽이 찾아온다. 사거리 모퉁이에 있던 아담하고 깔끔했던 숙소의 오픈된 정원엔 선인장 주위로 둥그렇게 배열된 벤치가 있었는데, 여명 전부터 일출을 보기 위해 조용히 앉아 있던 네댓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부지런하게도 낭만적이어라.
나는 숙소에서 내다봐도 되고 문만 열고 나와도 그만이었지만 그들은 벌써 운치 있는 자리를 잡고 옹기종기 조용히 앉아 고요 속에 떠오르는 태양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당에서 하늘을 보면 달도 떠 있고 별도 보이고, 떠오르는 해도 함께 볼 수 있었는데, 일출 직후 그 너댓 명은 온데간데 없었고 텅 빈 벤치만 남아 있었다.
느낌이 멋진 액기스 같은 순간을 담고, 조용히 사라지는 그 신속함.
역시 실한 여행자들이다.
어스름한 새벽부터 닭이 울고 나면, 조금 후에 또각또각 거리며 거리를 지나는 말발굽 소리가 동네를 울리며 아침을 연다..
고요하면서도 몇 가지 시청각 효과로 느낌을 증폭시키던 카브리해 부근의 아담한 시골 동네가 묘하게 느낌이 좋아 그곳을 기억하게 한다.
그리고 그 집주인이 기르던 개 두 마리도.
해가 뜨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세상이 뽀송뽀송 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바로 무더위와 습함이 엄습하므로 빨래는 미리미리..
나의 숙소는 사거리 길모퉁이.
사거리를 바라보고 길 건너편에서 왼편으로 달리면 깔레따 부에나를 갈 수 있고, 오른쪽으로 달리면 꾸에바 로스 페세스를 갈 수 있는 곳이다.
길 중간에서 선택의 고민을 해야 했지만, 가진건 호기심뿐이라, 버스에 몸을 싣고 자연이 만들어준 방파제 수영장 같은 깔레따 부에나에서 시간을 보내고, 올드카를 타고 꾸에바 로스 페세스의 바다도 만나러 가고.
Caleta Buena
깔레타 부에나에는 15 CUC, 우리나라 돈으로는 이만원 정도의 입장료가 있는데, 점심밥도 주고 칵테일이나 음료가 무제한이다. 커다란 돌들이 천연 방파제가 되어 거친 파도를 막아 주는 구조라 수영장 같은 잔잔함을 만들어 주기에 수영을 못하는 사람도 부담되지 않고, 스노클링을 하기에도 좋은 곳이기도 했으며, 썬배드들이 있어 나무 아래 옮겨 놓고 책을 읽거나 낮잠 자기에도 좋은 곳이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취기 오른 더위로 더 늘어지는 기분이 좋지 않을 듯하여, 대부분의 음료는 논알코올 모히또로 마셔주고, 적당히 물놀이하고 놀아주다 그늘에 누워 사람들을 구경한다.
이곳을 오는 사람들은 주로 가족들이나 둘 이상의 친구들이 오는 분위기였고, 그 와중에 개들도 쉬어 가는 그런 곳.
쿠바의 뜨거운 햇살을 피해 개낮잠.
햇살이 들지 않는 그늘로 옮겨 진하게 개 낮잠.
반면, 사거리에서 반대방향으로 위치했던 꾸에바 로스 페세스는 입장료가 없는 곳으로 그냥 바다다.
물론 숲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담하고 운치 있는 천연 수영장도 있고 노천카페도 있기도 하지만, 모래 해변이 아닌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것 같은 돌 해안선으로, 예쁜 빛깔의 물빛을 가진 바다의 파도가 얌전하지 않게 출렁이는 곳이다.
흙바닥이므로 비치 타월이나 깔개가 필요하고,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 수영을 해야 하는 곳이므로 스노클링 대신 오리발을 끼고 산소통을 맨 스쿠버 다이버들이 보이기도 했다.
그러니 수영이 서툰 나는 쉬면서 사람들 구경이나 했던 곳이지만 , 바다, 바다와 함께 출렁이는 사람들 그리고 쉬고 있는 사람들만 구경해도 좋은 곳이었다.
컬러풀 한 카리브해와 하늘의 다채로운 구름들이 소박함마저 그림 같은 풍경으로 만들어 주던 곳.
Cueva los Peses
Cueva los Peses
바닷가 노점상에 걸린 하얀 옷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걸 보며 잘어울리게 예쁘다라는 생각은 했지만, 왜 사올 생각을 못했을까? 다 지나온 마당에 뒤늦게 사진 보며 후회를 한다.
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온 플라야 히론에서 다음 목적지인 트리니다드행 비아술 버스를 예약하기 위해 마을을 걸었다.
걷다 보면 생뚱맞은 듯해 보이는 비행기 탱크가 소박하게(?) 진열된 박물관도 만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를 침공하기 위해 펼친 피그만 침공 작전의 상륙지점이 이 플라야 히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그런 무기들 보다는 길가의 이동 중이던 염소 떼를 만났던 것이 내 눈엔 더 반가운 풍경,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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