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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na Han Apr 01. 2019

Cuba,행운은 때론 불운으로...

2017.08 쿠바, 뜨리니다드 가는 길

플라야 히론으로 돌아오자마자 향한 곳은 비아술 버스 정류장 사무실. 다음 행선지였던 트리니다드행 버스 좌석을 예약하기 위해서였다.

비아술 버스는 쿠바에서 외국인 여행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에어컨 잘 나오는 버스인데, 플라야 히론에서 트리니다드 구간의 예약시스템은 상당히 고전적이었으며, 나중에 탑승을 해보니 중국에서 수입한 그대로 버스 안에 이전에 사용하던 중국어를 그대로 붙이고 있었다.


내가 타고 갈 버스는 아바나에서 출발해서 3시간쯤 거리의 중간 정류장인 플라야 히론에서 나를 태우고 3시간 정도 달려 트리니다드에 도착 예정인 버스였는데, 버스를 타려면 하루 전날 사무실 가서 예약 대기자 명단에 먼저 이름을 올려야 했다.


그리고 다음날 출발 시간 적어도 50분 전에 사무실에 와서 버스에 자리가 남는지 아닌 지 확인을 받아야 했는데, 운 좋게 중간에 내리는 사람들로 인해 자리가 남으면 인원수대로 탑승 여부를 가려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그때 영수증을 주는데, "트리니다드로 출발하는 10시 버스비 20 쿡을 지불했음"이라고 휘갈 긴 글씨를 쓴 종이를 북북 찢어 아래의 사진처럼 영수증으로 준다.  

영수증도 참 고전적 ^^~~

쿠바의 플라야 히론에서 받았던 비아술 버스 영수증

그럼 자리가 안 되는 사람들은??


운이 좋아 몇 명 적당한 인원이 모이면 콜렉티보라는 다인승 승합차를 이용하도록 안내해 준다. 인원수가 안되면 기다렸다 콜렉티보에 남는 자리에 껴서 가던지, 비싸고 올드한 택시를 이용하던지, 이와 같은 기다림 프로세스의 루프를 이용해 하루 두 번 있는 오후 다음 버스 자리 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던지, 아니면 씨엔 푸엔고스 행 차를 타고 내려서 또 알아서 버스표 사서 갈아타고 가던지,  그것도 안되면 하루 더 기다려 반복 기다림 프로세스....

아무튼 각자 알아서 선택해 어떻게든 가긴 간다.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한 시간 이상의 멍~때리는 시간 동안 사무실에 잠입한 게 한 마리를 발견.

미간에 새똥을 맞았는지 눈에 잘 띄던 게 한 마리였다.

관찰 좀 하다가 다가가니 사무실에서부터 풀밭을 지나 정원의 나무까지 열심히 줄행랑.


다행히도 복잡스러운 상황이 안되고 에어컨 잘 나오는 버스에 내 자리 낫다고 운이 좋네?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타고 보니 버스는 사람들 체구를 어떻게 감당하나 할 정도로 좁아터졌고 중요한 건 가다가 고장 나서 걷는 속도로 한 시간 이상 굴러가다 목적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결국엔 이용에 낭패를 봤다는 점이다.


비아술 버스

이 버스를 탔던 각국의 여행자들 중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하거나 알아듣는 사람들이 극히 소수였다.

출발 후 얼마 지나 버스가 걸어가는 속도 정도로 굴어가기 시작하니, 사람들은 일시적인 문제려니 하고 그냥 기다렸으나 그 일시적인 시간은 너무나 길어졌고 결국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아르헨티나에서 온 여인이 무슨 문제냐고 물어보니, 버스가 고장 나서 다음 정류장인 씨엔 푸에고스에서 엔지니어가 차를 타고 이쪽 방향으로 오고 있어 중간에 만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전달해줬다. 그렇게 손수레 속도로 굴러가다 정말 한참만에 반대편에서 오고 있던 엔지니어를 만나긴 했지만,  사진처럼 버스 바닥에 엎어져 열심히 고치셨음에도 불구하고 , 결국 버스는 고쳐지지 않아 다음 정류소인 씨엔 푸에고스에서 모두 하차해야 했다.

승객들도 초조히 풀밭에서 기다림.
에어콘을 틀고도 연신 흐르는 땀 닦으시느라 더 힘들어 보였던 운전사 아저씨의 저 거대한 배를 보면, 내 더위는 비할바가 안될거 같다는 생각도 해봤다.
그와중에 보조 운전사 아저씨는 내 앞좌석에서 벼개 위에 개다리 포즈로 다리 한짝 올리시고..


그렇게 모두 내린 승객들이 몰려간 곳은 씨엔 푸에고스 버스 터미널 사무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스페인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들이 없어 항의도 제대로 못하고 성질 나쁜 사람만 거의 험한 표정으로 대적하고 있었으나 별 뾰족한 수도 없이 전체적인 분위기만 험악스러워졌다.

짧은 스페인어로 문답을 해본 결과로는, 새로운 대체 버스는 제공 안됨. 다음 버스도 퍼져 있으나 환불도 불가였다.  그러니 언제 좌석이 몇 자리 날지도 모를 버스가 올 때까지 하염없이 그 많은 인원이 기다리라는 건데, 그게 가당 키나 한 소린가? 알아서 가란 이야기지.


남미 여행 때마다 당했던 교통편 대란으로 깨달은 것이 있기에 나는 시간을 잃느니 돈을 잃기로 선택하고 기다림을 포기한 채 대체 교통편을 알아보기로 했다.

그 와중에 나보다 스페인어를 못하는 독일인 커플이 오히려 내게 상황을 물어보고 있었으니, 그 답답한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운과 나 자신뿐이 아니던가.


오늘 안에 트리니다드에 도착하려면 버스를 포기하고 빠른 교통을 선택해야 하는데, 혼자 택시 타고 가기엔 쿠바의 택시비는 결코 만만치 않으니 네 명 정도의 사람을 더 모아 택시비를 1/N 빵 해서 가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다행히 독일인 커플은 상황 판단이 빨라 바로 택시 섭외와 합승에 동의, 추가로 두 명을 모아 올드한 택시를 흥정하여 트리니다드로 출발했다.

이날 하루의 운을 보니, 운 좋게 에어컨 잘 나오는 버스 잘 탔다고 좋아했던 나는 시간 버리고, 돈 버리고, 반면 자리가 나지 않아 버스를 못 타고 콜렉티보 타고 일찌감치 떠난 사람들이 훨씬 운이 좋았던 셈이었다.

그들의 전화위복.

결국 운이란 때론 그렇게 뒤바뀔 수도 있다는 거~!


#Cuba #Playa Giron #Trinidad #쿠바 #쁠라야 히론 #뜨리니다드 #트리니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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