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한 진지함과 무거움을 걷어내고 나니 그제야 보이는 것들
최근, 특히 이번 주 아주 가깝게 느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아파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안네 카레니나>의 서막과 같이, 각기 다른 이유들로 말이다.
현재 대부분의 가까운 친구들과는 먼 거리에 떨어져 있기에, 이전과는 달리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려웠다. 각각의 이야기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지,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괜찮은 것이 맞는지,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과 미국 서부의 16시간 시차 때문에 전화 상으로나마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 않다.
공감이라는 게, 좀 과격하게 말하자면 나는 거의 불가하다고 생각한다. 공감은 차치하고, 소통조차 쉽지 않은 현실이다. 나는 100 만큼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데, 언어와 표현력의 한계, 그리고 그 순간 매몰된 나의 시야 때문에 75밖에 표현해내지 못하고, 그리고 적확하지 않았던 표현, 또는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적 맥락 속에서 10 정도가 공기 중으로 흩어져 버린다. 그 마저도 듣는 사람의 사고방식과 경험을 총칭하는 배경의 차이, 인내심의 한계, 궁금증 부족 등의 이유로 남은 65중에 25가 다시 깎여나간다. 100을 말하고자 했으나, 많이 쳐 줘 봐야 40 정도가 의도대로 전달이 된다는 시니컬한 이론이다.
그런데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을 어떻게 공감을 하겠는가. 그래서, 감히 공감한다고 말할 수 없는, 내가 겪어본 적 없고 상상이 안 가는 힘든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보통 입을 다무는 쪽이었다. 진지하게 들었지만, 그런 고민에 대해 어떤 이야기나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주로 듣고자 했고, 만약 나에게 비슷하면서도 다른 경험이 있다면 내 경험을 아주 멀리서 희미하게 공유했다. 힘내, 다 잘 될 거야 같은 말이 너무 얄팍한 위로 같아서 그런 말조차 잘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응원해서, 그리고 마음을 많이 쓰고 있어서, 역설적으로 내 위로는 더욱 사람들에게 잘 나아가지 못했다. 표현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닿을 수도 없었다. 현재의 나는 그 힘듦과 아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면, 또는 내가 뾰족한 해결책을 줄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감히 거들먹거리며 그것을 아는 척해서는 안 된다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생각이 좀 바뀌었다.
나에게 힘든 상황을 터놓는 이들도 내가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반대로도 똑같다. 내가 힘든 점이 있어서 위로를 받고자 이야기를 꺼내더라도 내 상황을 완전히 이해할 것이라 생각해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닐 테니까. 그럼에도 내게 온기를 느끼고 싶어 먼저 다가온 것이라면, 필요한 것은 완벽한 해답 내지는 해결책이 아니라 따뜻함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의 변화가 최근 있었다. 너무 당연해 보이는 말이지만, 부끄럽게도 내 마음속 깊숙하게 이 깨달음이 울림으로 다가온 적 없었고, 그동안 행동으로 옮기지도 못했다.
위로는 아주 무거운 방식이 아니라, 기분 전환할래? 하면서 가볍게 떠나는 드라이브, 축 쳐져 보여 단 것을 사 왔다고 초콜릿을 내미는 손길, 밥은 먹었냐는 다정한 말 한마디에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너무 무겁고 진지하게 위로를 생각하느라 그 어떤 위로도 주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아직, 많이 서투른 갓 어른이다.
그래서, 최근 이렇게 저렇게 여러 시도를 해보며 조금씩 reach out 해 나가고 있다. 조금의 온기라도 보태고 싶은 이 마음이 서툴게나마 닿았기를.
그리고 힘에 부치는 매일을, 한 주를 또 잘 버텨줬음에 고맙고,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든다. 조금만 더 버티라고, 좋은 날이 올 거라 말하고 싶지는 않다. 짐이 너무 무겁다고, 두 손 가득한 짐을 좀 같이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해준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기꺼이 그렇게 하고 싶다. 곧 한국에 잠시 들어가는데, 빨리 그대들에게 물리적으로도 닿을 수 있기를!
사진은 개인적으로 너무 큰 위로를 받은, Crissy Field에서의 일몰이다. Cotton Canty Sky(솜사탕 하늘)이라는 표현을 쓰던데, 정말 딱 어울린다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