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관계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무엇일까
그 누구보다 아이스크림/젤라또에 진심인 사람으로서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샌프란시스코 젤라또 맛집이 있다. 차이나타운에 있는 Lush Gelato. 1개 먹을 때마다 별을 적립해 주는데, 10개를 모으면 작은 컵 하나를, 30개를 모으면 파인트 하나를 준다. 얼마나 많이 가는지 스스로 보는 게 재밌어서 나는 일부러 별을 소진해서 free cup을 받는 걸 미루고 있는데, 오늘로써 40번째 별을 모았더라. 세상에. 어쩐지 직원들과 얼굴 친구가 되었다 했어.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치듯 자주 방문하면, 직원들이 '어머 너 또 왔니?' 하는 미소를 보내준다. 그러면 이제 머쓱한 미소로 화답한다. 그렇게 단골로서 자리매김한 것 같다.
매일 선보이는 맛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가장 맛있었던 맛 5개만 뽑자면, 다음과 같다. 방문할 분들은 참고하셔도 좋겠다. 참고로, 본인은 가볍고 상큼한 Sorbet류 보다는 꾸덕하고 크리미한 젤라또 취향임을 미리 밝힌다.
자타공인 찐 단골의 픽 Top 5 in Lush Gelato
California Pistachio: 피스타치오가 생으로 와장창 들어가 있는데, 태어나서 먹어본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 중 가장 맛있었다. 달지 않고 고소하고 견과류 덕에 식감도 최고. 정말 파인트도 거뜬히 비울 수 있어.
Brown Butter & Chocolate Honeycomb: Caramel-y 한 베이스에 달고나 같은 토핑이 들어가 있는데, 현지에서 가장 사랑받는 맛인 듯하다. 카라멜 맛으로는 Dulce de leche가 또 따로 있는데, 두 가지 맛이 다른데 각각 맛있다. Brown Butter 맛이 오히려 덜 느끼한 느낌.
Handmade Cookies and Cream: 인생 쿠키 앤 크림 젤라또다! 너무 달지 않고 담백한 바닐라 베이스에 쿠키 청크가 들어가 있는데, 쿠키 앤 크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도 자주 먹을 정도로 아주 맛있다.
Mascarpone & Granola and Peach: 메뉴가 종종 바뀌는데, 이 맛은 못 본 지 꽤나 오래됐다. 마스카포네 치즈+ 복숭아 조합은 말해 뭐해 무조건 맛있다. 봄-여름 한정 메뉴인가 싶기도 하다.
Dark Chocolate: 클래식은 영원하다. 아주 고급스러운 초콜릿 맛이다. 부연설명은 생략.
오늘도 어김없이 참새는 방앗간을 찾아 small 사이즈 컵을 하나 시켰다. 아, 사이즈는 small, med, large 3개이고, 각각 1~2, 1~4, 1~6개의 맛을 선택할 수 있다. sample로 맛보고 싶다고 하면 작은 우드 스푼에 한 입 분량을 떠서 줘서 주문 전에 미리 맛을 볼 수도 있다. 오늘 나의 픽은 피스타치오! 그런데 갑자기 직원이 주섬주섬 냉장고에서 다른 small 사이즈 컵을 하나 꺼내더니 신메뉴를 서비스로 주고 싶은데, 원하면 주겠다 했다. 이런 것이 단골의 특권인가 음하하. 한 가게만 죽어라 팬(?) 보람이 아주 넘치는 순간이다. 새로 먹어본 맛은 브리치즈+사과잼 맛이 났는데 정말 그 맛이 맞았는지는 모르겠다. 최근 당근케이크 맛이 출시됐던데 그 맛도 궁금하다.
올해 한국과 미국을 오갈 일이 아주 많았다. 한 해동안 한국-미국 왕복을 6번 한 것 같은데, 아마 12월에 말레이시아 출장을 한국을 경유해 갈 듯싶다. 미국-말레이시아 구간은 직항이 없다. 한 해동안 한국-미국 왕복을 7번을 하게 되다니. 앞으로 이런 일은 잘 없지 않을까.
한국을 다녀와서 미국에서는 정말 그 누구보다 먹을 것에 진심이었다. 그렇게 배가 고팠고, 먹고 싶은 게 많았고, 단 것이 당겼다. 좀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pho(쌀국수)나 국밥, 수프 같은 뜨끈한 음식이 그렇게 먹고 싶었다. 이게 왜 이상하냐면 이런 국물 류의 뜨거운 음식들은 주로 내 취향이 아니거든. 평소에 한식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을 정도다. 국물, 찌개, 탕, 국 다 몇 달은 안 먹어도 거뜬하다. 근데 한국 다녀오면 항상 이런 든든한 음식을 찾는 나를 의아해하면서도, 그저 한국에서 너무 잘 먹고 와서 양이 늘었구나라고 생각했다.
한국에 간 기간은 항상 체력적으로 너무 고되어서 막상 가 있었을 때는 즐거웠던 적이 잘 없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순간은 행복했지만, 보통 시차적응이 되지 않아서 새벽 한 시에 깨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야 했거나, 미국 시차로 일을 해야 했다. 결국 물리적인 잠을 아예 줄여서 하루에 보통 1시간, 많으면 3시간씩 자고 살았다. 그런데 한정된 체력과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회사 일, 개인적인 약속, 이민 준비 및 한국에서의 신변 정리를 병행하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항상 한국에서 보낼 시간을 기대하고 그리며 희망에 부풀었지만, 막상 가면 한국에서의 시간은 주로 벅차고 지쳤다. 에너지가 고갈되어 그 무엇도 누리고 즐기기 어려웠다.
그런데 내가 안 하고 싶다고 해서 포기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휴가를 내기 어려운 사정이 있었고, 이민을 위한 준비를 짧은 시간 내에 해내야 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던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 또는 잠이었다.
무언가를 해서 후회하는 것, 무언가를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것. 둘 중에 무엇이 더 두려운가에 대해 나는 단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무조건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것이 더 큰 후회로 남는 사람이다. 조금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잠과 쉼을 포기했고, 모든 시간을 꽉꽉 채워서 해야 하고 하고 싶던 것들을 얼추 하고 왔다. 그 결과 내 사람들과도 짧지만 애틋한 Quality Time을 보내고 올 수 있었다. 좋은 공간에서 다정하고 유쾌한 대화를 나누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그 간 밀린 대화를 나누고, 예술을 향유하고 함께 사유했다. 당시에는 너무 벅찼지만, 쉼을 포기한 내 선택이 옳았다 느낀다.
아주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내가 왜 한국에서 돌아온 이후에 뜨끈한 국물을 사냥하러 다니는지. 왜 아이스크림을 한 통씩 퍼 먹는지. 왜 집에 안 있고 영화관으로, 남의 학교로, 카페로 나도는지. 한국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완벽이라 일컫고 싶은 순간과 대화를 경험하고 오면, 그제야 미국에서의 삶이 공허해지는 거다. 내가 미국에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뭘 포기하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느끼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허한 느낌이 들어 원인도 모르고 무의식적으로 무언가 채우고 싶었던 거다. 따뜻한 것으로. 단 것으로.
이제 원인을 알게 되었으니 의식적으로 그런 단편적인 처방을 내리는 것을 경계하려 한다. 배가 고파서, 먹고 싶어서 많이 먹는 건 아무래도 좋다. 잘 먹고 운동하면 건강하고 좋지. 다만, 무언가 헛헛한 느낌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단기적인 해결책으로 먹는 것을 용인하는 건 산에서 불씨를 발견하고 방치하는 것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물론, 미국에서도 새로 만나게 된 정말 좋은 인연들이 많다. 언젠가 한국에 돌아간다면 이 얼굴들을 또 그리워하고 애달파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내가 물리적으로 한 곳에만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관계 유지의 핵심은 노력과 의지 쪽에 있다고 믿고 싶다. 한국에 있는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과 17시간의 시차와 비행기로 12시간의 거리를 초월하여 지속 가능한 관계를 만들어 가고 싶다. 그러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 누군가의 존재에 조금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멀리 있어도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내게 의미있고 소중한 관계들에 계속 물을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