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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외계인 Jun 23. 2024

베를린 직장 생활: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feat. 직장 내 갈등) #해외직장생활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어느 조직이든 항상 일정 수의 또라이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이 또라이는 직업상의 업무 무능력으로 조직에 해를 끼치는 사람이 될 수도, 성격 자체가 또라이로 팀원 간의 불화를 조장하는 사람이 될 수도, 무례한 행동으로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세상은 넓고 다양한 또라이가 존재하지만, 이런 또라이가 내가 가장 가까이서 일하는 내 팀원 혹은 나와 가까이 일하는 동료라면 아-주 머리가 아플 것이다.




소위 유럽에서 일하면 직장 내에 동료들 간에 서로 사생활 따위는 터치하지 않을 것 같으며, 뭔가 조금 더 개방적이면서도 사생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을 것 같지만-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어느 조직이던 진상은 있고, 직장 내 동료들 간에 사적으로 만나 친분들 다지는 이들도 있으며, 은근히 사내 정치질을 하는 이들도 있다.




지금까지 베를린에서 풀타임으로 총 세 곳의 회사에서 일하며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사람들과 일을 해왔다. 그중에는 지금까지도 친구처럼 지내며 같이 여행도 하고, 정기적으로 만나는- 이제는 동료라고 소개하기보다는 친구라고 소개하는 것이 더 적합한 내 사람들도 있지만. 아, 정말 다른 곳에서 사적이든 공적이든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이를 갈게 만드는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최근 일련의 사건으로 다시금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을 떠올리게 되었다.




오늘은 내가 직장 생활을 하며 만난 다양한 진상(!)들과의 에피소드에 대해 적어볼까 한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된 에피소드들이라 꽤 내용이 길다. 정보를 전달하는 내용이라기보다는 나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다른 디자이너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c) Freepik







'우리'가 아닌 '나'의 공으로... #얌체형


내가 직장 생활을 한 곳들 중에는 스타트업들도 있었는데, 이 경우 대표나 상사들이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 유럽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데에 상사 나이가 나보다 어린 것은 사실 크게 상관없으나, 경험이 부족한 것- 특히 리더십 경험이나 역량이 부족한 것은 아주 큰 문제다. 특히 그 리더가 내 매니저일 경우.


S양은 나의 직접적인 매니저는 아니었지만, 크게 보면 우리 보서를 총괄하고 있는 중간관리자쯤 해당되는 포지션에 있는 사람이었다. 회사가 그리 크기 않다 보니 그녀는 나와 직접적으로 많은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였다. 


그녀와 일하며 모든 부분이 나빴던 것만은 아니다. 유독 그녀가 내 디자인을 좋아한 덕에 입사할 수 있기도 했고, 디자이너들 가운데 나와 일하는 스타일이나 디자인을 보는 눈이나 관점이 가장 잘 맞아 나를 소위 팍팍 밀어주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다양한 프로젝트 기회에서 유리하게 선점하거나, 디자인이나 디렉션에 대해 내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가장 큰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다. 회사에 거의 입사하자마자 3개월 정도 지나서 그동안 내가 우리 브랜드에 느낀 브랜딩이나 디자인적인 관점의 문제점과 개선점들을 정리해 회의를 주관하고 나의 의견을 프레젠테이션 하였는데, 당시 부서 매니저 포지션에 있던 (그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 가장 높은 포지션이었다) S양이 나의 의견에 크게 공감했고, 나의 의견을 매니지먼트에 전달했다. 


매니지먼트의 승인이 나고, 그 후 S양은 디자인뿐 아니라 전반적인 브랜딩에 대해 서로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전체회의를 주관했다. 그녀는 회의를 주도하며 다양한 부서의 팀원들에게 현재 우리 브랜드의 문제점과 개선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한 가지 당황스러웠던 부분은- 직접적으로 그녀가 '이 리브랜딩 아이디어는 내가 제안한 것이다'이라고 발언한 것은 아니나, 그녀가 회의를 주관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첫 회의 때 참여하지 않았던 다른 팀원들 눈에는 누가 봐도 이 '리브랜딩' 아이디어가 그녀가 고안한 것처럼 비춰지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 아이디어를 처음 고안한 사람으로서 나는 당혹감이 감추지 못했고 (한마디로 표정이 점점 굳어져갔고), 내 표정을 보고 흠칫(이 것은 그저 표현이 아니라 정말 흠칫하는 게 그녀의 표정에서 느껴졌다) 한 그녀는 급하게 '사실 우리가 이 회의를 하는 것은 XX 씨의 아이디어서 비롯된 것이다'라고 나에 대해 짧게 짚고 넘어갔다.


그 후 최종적으로 이 프로젝트는 나 (비주얼 디자인/브랜딩)과 그녀(마케팅)의 공동 프로젝트가 되었고, 성공적으로 프로젝트 자체는 마무리되었는데- 문제는 성공적인 프로젝트의 결과에 대해 나 혹은 함께한 디자인 팀원들에게 그 어떤 보상 혹은 공식적인 멘트가 없었다는 점이다. (보통 이곳에서는 큰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되면, 프로젝트 관련자나 프로젝트 리드에게 공식적인 회의에서 언급하곤 한다. Shoutout이나 Kudo.)


뿐만 아니라, 물론 이 프로젝트 하나의 공으로 그리된 것은 아니겠으나, 이 프로젝트와 그동안의 공을 인정받아 이후 S양은 더 높은 직급의 매니저로 승진하게 되었다. 물론 나나 함께 고생한 디자인 팀원들에게는 그 어떤 리워드나 승진도 없었다.


모두의 분노를 가장 크게 일으킨 부분은 최종 리브랜드의 결과물이 나왔을 때, 그것을 전 직원에게 프리젠테이션하는 회의를 그녀가 주관했는데. 보통 이런 경우 그녀가 가장 높은 직급인 만큼, 회의 주최나 진행 혹은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 프레젠테이션 할 수는 있지만, 디자인이나 마케팅 등 세부적인 부분의 프레젠테이션은 보통 각 팀의 리드나 가장 공헌한 바가 큰 사람에게 프레젠테이션을 분담한다. 이는 단순히 프레젠테이션을 누가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 프로젝트에 어떠한 사람이 어떤 부분에 기여를 했는지 가장 보여주기 쉬운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프레젠테이션을 다- 독식했고, 심지어 디자인 부분은 프레젠테이션이 잘못되어 나를 비롯한 다른 디자이너들과 제품 매니저들이 당황하기도 했다. 이날 프레젠테이션으로 소위 빡(!)친 사람은 나뿐이 아니라 함께 고생한 디자인팀 전체였다.


단순히 리워드나 승진 등의 베네핏을 못 받아서도 아니고, 프레젠테이션을 못해서도 아니다. 제목에는 '얌체'라 표현하기는 했지만, 그녀가 의도적으로 그리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포지션을 생각하면, 이것이 미숙한 경험과 무지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면 그게 더 큰 문제일 수도 있다. 그녀는 프로젝트를 리드한 사람 중에 가장 높은 매니저급의 사람이었고, 그렇다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성과를 냈을 때, 매니지먼트에게는 물론 함께 고생한 팀원들의 노고를 널리 알리고 독려하는 것도 매니저로서의 그녀의 역할인데, 그 이후 어떠한 후속 조치도 없었다.


미숙한 리더십에서 빚어지는 '잘되면 내 덕, 안되면 니 탓'의 전형이었다. 






너무나 경쟁적인 그대 #시기질투형


디자인 쪽은 소위 이 구역의 미친년(BitXX)이 있다. 창의력과 아이디어로 승부 보는 분야이기도 하고, 이러한 아이디어로 경쟁이 붙거나 순위가 가려지는 것이 일반화되다 보니, 과도하게 경쟁적이고 별거 아닌 것에 시기 질투가 폭발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대학시절, 입학할 때는 별거 아니었던 내가 첫 학기에 전체 수석으로 하고 본의 아니게 이름을 살짝 날리게 되었는데, 2학기 수업 시간에 내 아이디어 노트를 보겠다고 내 가방을 허락도 없고 몰래 열어보다가 나에게 딱 걸린 과 친구가 있기도 했다. 


무튼, 앞서 말한 직장에서 내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리브랜딩 아이디어를 고안하고, 그게 착착 진행되면서- 디자인팀 모두가 프로젝트를 위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나- 이 상황을 매우 불편하고 껄끄럽게 보는 이가 한 명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디자이너 S군. 

S군은 다년간 디자인 쪽에서 경험을 쌓은 실력파 디자이너이다. 회사에는 내가 입사하기 일 년 전쯤 먼저 입사했고, 흔치 않은 나와 동갑인 팀 내 동료였다. 내가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해도 동갑이라는 공통점과 이 친구의 특유의 세심함으로 누구보다 나의 입사를 반겨주는 동료였던 S군이 삐뚤어진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그놈의 리브랜딩 프로젝트 때문. S군이 불만을 갖게 된 것은 사실 '나'때문은 아니다. S군이 처음 입사했을 때 (그러니까 내가 입사하기 일 년 정도 전), 우리 브랜드에 대해 나와 비슷한 인상을 받은 S군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어필했다고 한다. 디자인을 하며 그때그때 브랜드 디자인 부분의 개선점을 디자이너들과 S양에게 어필했다고 한다. 


나중에 S군에게 들은 바를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비슷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던 나와 S군 사이의 가장 큰 다른 점은 '아이디어 전달 방식의 차이'였다. 나의 경우 비디자이너들도 이해할 수 있게끔 예시나 적절한 자료를 곁들여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었고, 회의를 주최하여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초대하여 나의 아이디어를 공식적인 방법으로 전달하였는데, S군의 경우는 각 디자인 테스크 별로 그때그때 생각나는 부분들을 그때 옆에 있던 디자이너들이나 제품 이해관계자들에게 공유를 했던 것이다. 물론 제품 이해관계자들 중에는 S양도 포함되어 있었고, S양은 나름 부서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S군의 입장에는 본인의 의사나 아이디어가 어느 정도 어필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무튼 S군의 입장에서는 한 마디로 '내가 얘기할 때는 듣지도 않다가, XX가 얘기하니까 진행이 막 되네?'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것이 물론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은 S군도 잘 알고 있었지만, 리브랜딩 프로젝트가 순항을 타기 시작하면서 그의 자격지심과 질투심은 극에 달했다. 


나름 소심한 성격의 S군이 나에게 폭언이나 소위 지랄을 한 것은 아니었으나 (물론 그랬으면 나는 참지 않지...),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데에 내내 좀 뚱한 표정을 보인다든지, 나름의 방식으로 그의 불편함 심경을 드러내는 일이 종종 있었다. 프로페셔널한 관점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으나, 심적으로는 그의 입장이 이해가 되는 부분이 조금은 있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다.


그나마 S군은 귀여운 수준이었고, 더 웃긴 건 그렇다고 S군이 심하게 표현하거나 나를 괴롭힌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별생각 안 하고 있었는데- 그 후로 1년 뒤 S군이 퇴사할 때쯤 나에게 그때 미안했다며, 내가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 의견이 무시당한 것 같아서 그랬다고 나한테 정식으로 사과를 해주었다. 


내가 S군을 귀여운 수준이라고 말한 것은 이보다 더 시기 질투가 폭발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N 양. N 양은 팀장 다음으로 입사한 사람으로 디자인 경력으로는 제일 주니어였지만, 회사에 자기가 나름 오래된 멤버 중 하나라는 데에 이상한 자부심이 있는 여자였다. 우리 디자인팀은 제품 디자인, 마케팅 디자인, 웹 디자인 등 여러 가지 테스크들을 디자이너에 상관없이 모두 골고루 분담하여 일하는 방식이었는데, 그래도 각자 주력하는 분야는 있었다. N양과 나는 주로 새 제품 출시를 위한 제품 디자인과 제품에 들어갈 일러스트를 담당하였는데, 내가 입사하기 전에는 N 양 혼자 하던 업무였다. N양은 나름의 강점과 약점이 있는 디자이너인데, 그녀의 강점은 한번 디자인 디렉션이 정해지면 꽤 빠른 속도로 작업을 마무리하는 능력이 있었고 (흔히 손이 빠르다고 한다), 그녀의 약점은 주어진 일은 빠르게 잘 진행하지만 거기에 본인의 아이디어를 내거나 보태는 일에는 꽤 소극적이었다. 나는 그녀와는 정반대 성향의 디자이너로, 신제품의 전체적인 컨셉이나 디렉션 그리고 심지어 제품 이름 짓는 네이밍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스타일이다.


이렇게 정반대의 스타일인 내가 입사한 후 돌아온 첫 번째 업무 평가 시즌, 나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해당사항이 없었지만- N양과 쭉 함께 일했던 제품 매니저는 그동안 그녀에게 쌓여있던 부분 (일에 대해 불평이 많은 등)을 비롯해 나와 비교를 하며 N양의 퍼포먼스에 대해 엄청 안 좋은 피드백을 주었다. 이를 전달받은 N양은 그때부터 나에게 엄청난 자격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디자인팀에서 보통 디자인하다가 아이디어가 막히면 다른 디자이너들에 공유하여 함께 브레인스토밍을 하곤 하는데, 그날따라 디자인이 풀리지 않았던 N양은 본인의 디자인을 보여주며 다른 디자이너들 (나와 S군 그리고 당시 디자인 팀장)에게 의견을 물었다. 우리 셋은 그녀에게 개인적인 관점에서가 아닌 최대한 객관적인 피드백을 주려고 했고, 그렇게 브레인스토밍은 이어졌는데- 내 피드백(평소 N양이 내 피드백에 민감한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피드백을 물으면 항상 굉장히 제너럴 하게, 한마디로 꽤 두루뭉술하게 피드백을 주곤 한다)을 듣을 N양이 갑자기


N양: 왜 너는 항상 니가 우리보다 나은 디자이너인 것처럼 이야기해?

나: ... 내가? (WTF?????)


나는 뭐 어쩌라는 건지 황당한 상황이었고, 그녀는 본인의 의견을 객관화하기 위해 다른 디자이너들의 동조를 구하기 시작했다.


N양: (디자인 팀장을 보며) 그렇지 않아?

디자인 팀장: 나는 XX가 선을 넘지 않은, 팀원 간에 충분히 주고받을 수 있는 수준의 피드백을 준거 같은데?


순간 그녀의 얼굴은 빨개지고, 그녀는 꽤 민망한 상황에 빠졌고. "그래? 그렇다면 뭐..."라는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대답도 아닌 대답을 하고, 한참 멍을 때리더니 화장실 간다며 잠시 자리를 피했다.


아니... 디자인 팀장이 바보도 아니고...

디자인팀장이 본의 아니게 내 편을 들어준 덕에 상황이 그냥저냥 무난하게 지나갔으나.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생각해도 그녀의 행동은 프로페셔널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

여담을 하나 더 말하자면, 내가 퇴사를 결심하고 다른 회사로 이직이 결정되고- 나를 제외하면 팀에 유일하게 오래 남은 디자이너였던 N양이 '본인까지 퇴사하면 디자인팀에 모든 업무를 아는 오래된 디자이너가 없다'를 빌미로- 한 마디로 나의 퇴사를 이용해 시니어 포지션으로 승진하였는데.


퇴사하고 오랜만에 N양과 K양의 집에서 함께 만난 적이 있는데-


당시 나는 이직한 회사에서 디자인 리드를 맡고 있었고, 내 밑에는 주니어 디자이너가 한 명 있는 작은 팀을 이끌고 있었다. 그런데 N양이 '너는 주니어 디자이너 한 명 밖에 없지만, 나는 내 밑에 디자이너가 두 명이나 있는 시니어 디자이너'라며 제 자랑(!)을 하기 시작했던 것. 나는 이미 그녀의 열등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당히 동조하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렀는데, 보다 못한 K양 (그녀도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어 누구보다 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그때 회사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아 능력 있는 직원들이 모두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는 상화이었다.)이 '그래봤자 너는 아직도 그 회사 다니고 있잖아'라며 일침을 날렸다.


N양은 모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꽤 좋은 연봉과 조건으로 새 회사로 이직했고, K양은 내 새로운 직장 상황도, 그리고 이전 직장 상황 (이전 직장 대략의 연봉 평균 등등)을 둘 다 알고 있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다시 한번 N양을 보고 느낀 것은, '나는 열등감으로 후진 사람 되지 말아야지'였다.

시기와 질투에서 빚어진 열등감은 사람을 참 못나게 만든다.







동료들이 감정의 쓰레기통이냐?! #감정폭발형


내가 제일 혐오하는 스타일의 사람이 있다. 바로 감정 폭발형이다. 사람은 누구나 감정이 있고, 그 감정을 표현할 권리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표현의 방식'이다.


UX는 데이터를 근거로 방향성을 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사실 디자인에 대해 피드백을 받아도 그걸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적은 편인데, 디자인은 일반적으로 본인이 아이디어를 내고 창작한 창작물의 결과인 경우가 많고, 주관적인 스타일이나 성향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아 다른 이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았을 때 그것을 일이 아닌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디자이너들에게 업무평가 시 주는 흔한 피드백 중 하나이다. 


하지만 시니어 정도 레벨 (즉 업계에서 몇 년 정도의 경력이 쌓인 사람)이라면, 비록 심적으로는 이러한 피드백이 달갑지 않더리도 최대한 이성적으로 오롯이 일의 선상에서 프로페셔널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어느 정도 배우게 된다.


지금까지 한국부터 독일까지 회사 생활을 하며 이런저런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선'을 넘는 사람은 없었는데 드디어 최강 빌런을 만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디자이너 W군은 나보다 6개월 먼저 입사한 시니어 프로덕트 디자이너이다. 그는 이전에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했었고, 부트 캠프를 통해 UX를 배워 이전에 에이전시에서 2년 정도 일하고 지금 회사에 처음으로 시니어 포지션으로 왔다고 한다. 


우리는 그룹 테크팀 내에 딱 두 명뿐인 디자이너이나 서로 다른 제품팀에서 각각 일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사실 그와 일로써는 그리 접점이 없었다. 그래도 그룹 내에 단둘뿐인 디자이너이다 보니 내가 먼저 우리끼리 Catchup이라도 하자고 2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서로 업데이트를 주고받는 그런 사이였다. 그러던 우리 사이에 그가 점점 불만을 품기 시작한 것은 바로 '디자인 시스템'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내가 들어오기 바로 직전 그는 우리 회사에 '디자인 시스템'일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꼈고, 내가 입사한 그 주에 디자인 시스템에 대한 아이디어를 그의 매니저였던 Head of Product인 K양과 함께 이제 막 매니지먼트에 프레젠테이션을 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나는 디자인 시스템에 대한 그들의 제안서를 읽어보았고, 많은 문제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 번째, W군과 K양이 담당하는 제품은 그룹 내에 가장 규모가 '작은' 제품이다. 그들이 제안한 대로 이 제품을 기준으로 디자인 시스템을 만든다면, 나와 나의 당시 매니저 (Director of Product) S양이 맡고 있는 제품 - 그룹 내 가장 큰 제품-의 90% 이상을 커버할 수 없는 반쪽짜리도 못한 디자인 시스템을 만드는 상황이 돼버리는 것이었다.


두 번째 문제는 현실적인 디자인 시스템 구축에 드는 인력과 비용의 문제이다. 당시 우리 제품은 디자인 시스템은 없지만 프런트엔드 팀에 구축한 UI 라이브러리가 있었다. 컴포넌트와 간단한 스타일 가이드 정도만 있는 정말 기본적인 라이브러리와 가이드라인이었지만, 이것을 밑바탕으로 디자인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우리 제품뿐 아니라 그룹 내 다른 제품도 커버가 가능했고, 무엇보다 이미 프런트엔드 쪽에 구축된 리소스들이 있었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러한 문제점을 S양에게 보고했고, S양은 네 명의 관계자들이 각자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회의를 주최했다. 그 회의 후 S양은 나와 S양의 제안 (제안 A) 그리고 W군과 K양의 제안 (제안 B)의 각각 장단점을 정리하여 CTO에게 보고했고, CTO는 제안 A, 즉 우리 팀의 제안을 선택하였다. 


원칙상으로는 채택된 제안의 제안자가 프로젝트를 리드하는 것이 맞지만, 그때 마침 K양이 출산휴가를 가면서 W군이 S양에게 보고를 하게 되었고, 이러저러한 고심 끝에 S양은 나에게 우선 W군에게 디자인 시스템을 리드할 수 있는 기회를 줘보자고 나를 설득하였다. 물론 나는 이러한 결정에 100%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팀 리드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 있으니 따르기로 결정했고, 디자인 시스템을 위해 내가 어느 부분에서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제안을 했다. 당시 W군은 프런트엔드 팀과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었다. 개발자들의 피드백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인 W군이 꽤 독단적인 행보를 보였고, 이를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고 판단한 프런트엔드 엔지니어링 매니저가 그를 CTO에게 리포트까지 한 꽤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프런트엔드 팀과의 협업은 절대적이었고, 우리 제품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W군을 위해 나는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자처했다. 개발자와 W군 사이의 의견을 조율하고, W군에게 우리 제품이 가지고 있는 컴포넌트에 대해 온 보딩을 시작했다.


그렇게 프로젝트는 잘- 가는 듯했으나, 문제는 W군은 복잡한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기에는 피그마에 대한 스킬과 경험이 너무 부족했다. 버튼 컴포넌트 하나 만드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프로젝트 킥오프를 한 뒤 6개월이 넘도록 디자인 시스템은 아무런 성과도 성취도 없는 프로젝트가 되었다. 우리 제품의 경우 디자인 시스템이 정말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었고, 혼자 전체 제품 디자인을 하고 있던 나에게 또 다른 디자인 인력 역시 절실했다. 나는 S양 (우리 팀 제품 리드)에게 내 밑에 주니어 디자이너를 하나 뽑아서 그 디자이너에게 디자인 시스템에 필요한 컴포넌트 제작 실무를 시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디자인 시스템에 필요한 컴포넌트를 얻는 동시에 주니어 디자이너도 자연스럽게 우리 제품 디자인에 온 보딩이 가능한 일석이조의 플랜을 제시했다. 나의 제안을 통과되었고, 주니어 디자이너가 내 밑으로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지지부진했던 디자인 시스템을 리딩 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 부분에 있어서 W군은 내가 본인의 프로젝트를 뺏어갔다고 생각(!) 했고, 본인이 이 회사에 6개월 먼저 들어왔는데, 더 늦게 들어온 내가 본인보다 리드 역할을 하는 것 자체에 대해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불만을 정식으로 나에게 제시한 것이 아니라 내 주니어 디자이너에게 나와 디자인 시스템 프로젝트에 대한 험담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W군의 의도는 그 주니어 디자이너가 W군의 불만을 나에게 전달해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이렇게 모두가 스트레스받는 상황으로 어찌어찌 일 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디자인 시스템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런칭되었다. 문제는 우리가 디자인 시스템을 런칭할때 쯤 출산휴가를 갔던 K양이 돌아왔고, 마침 퇴사를 한 S양의 공석까지 매운 제품팀 전체를 총괄하는 헤드가 된 것이다. K양과 원래 한 팀에 일했고, 사이가 친밀했던 W군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본인이 나보다 K양과 더 친밀하고 우위를 선점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지... K양에게 본격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는데, 다행인 부분은 K양이 꽤 중립적으로 이성적으로 어느 부분은 그의 의견을 듣기도, 어느 부분은 정확하게 잘못되었다고 짚어주었다. 


그러는 와중 디자이너끼리 미팅을 하게 되었는데, 별거 아닌 부분에서 급발동 걸린 W군이 갑자기 엄청나게 무례한 언행으로 나에게 폭주하기 시작한 것. 그는 혼자 폭주하더니 미팅을 나가버렸고, 나와 주니어 디자이너는 그야말로 어이없었던 상황. 그가 나를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서, 그 미팅에서 W군의 언행은 선을 넘었고, 무엇보다 회사 내 업무적인 미팅을 하는데 절-대해서는 안 되는 행동과 언행이었다.


지금 W군과 이러한 부분을 직접적으로 대화를 통해 풀기는 어렵다고 (대화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 판단한 나는 K양에게 모든 상황을 설명하였고, 나 역시 인간이기에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을 전달하려 했으나 주관적인 견해일 수 있으니 W군과 주니어 디자이너,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보라고 권유했다. 그 후 K양 여러 사람과 개별적으로 면담을 가졌고, 결국 W군은 K양에게 강력한 경고를 받는 것으로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그 후 공식적인 W군의 사과는 없었지만, 그는 최대한 감정적인 부분을 자제하고 업무적인 부분에서 프로페셔널하려고 하는 노력을 보여주었고, 나 역시 100% 그에 대한 감정이 풀린 것은 아니지만- 업무는 업무이기에 최대한 감정을 자제한 대화를 하려고 노력 중이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친구도 아니고, 동료이기에- 그가 나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나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이러한 그의 개인적인 감정들이 일에 지장을 주면 안 되기에 그 부분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


다시 말하지만, 회사에서 본인의 감정을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방향으로 폭주하는 것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 중 하나이다. 이는 회사 내 본인의 평판에도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동료들에게 본인의 평판을 최악으로 만드는 방법 중 하나이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르는데, 게다가 업계는 생각보다 그리 넓지 않다.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저렇게 감정적인 사람과 누가 일하고 싶어 하겠는가?






그대는 어떤 또라이입니까?


역지사지. 내가 마음에 새기려고 노력하는 한자성어 중 하나이다. 내가 주관적으로 보기엔 다른 누군가가 진상이나 또라이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내가 그 또라이 일 수도 있고, 또 누구나 자기만의 법칙 (조금은 지나칠 수도 있는)과 규칙이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너무 쉽게 수긍이 가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기에, 항상 역지사지라는 말을 마음에 새기려 노력한다.


해외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나와는 다른 나라, 다른 문화, 다른 사고방식을 지닌 많은 동료들과 일을 할 경험을 가질 수 있었다. 어느 회사는 유럽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로 대부분의 동료들이 유럽 여기저기서 온 경우도 있었고, 어느 회사는 유럽을 넘은 다양한 국가에서 일하고, 혹은 나처럼 독일로 이주해서 살며 일하고 있는 동료들도 있었다.


10년이 넘는 해외 생활을 하며, 내가 배운 것은 모든 타인의 관점을 "공감"은 못해도 "이해" 하려는 자세를 가지려는 것, 그리고 나에 대한 "객관화"이다. 내가 일하면서 결정하는 것들, 나의 일하는 방식 등이 충분히 객관적으로도 설득력이 있는지, 객관적으로 나에게 부족한 부분은 무엇이며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최소한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누구나 진상이라고 생각하는 보편적인 "또라이"는 되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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