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없는 영 Apr 30. 2023

반드시 그리하도록 정해진 것은 없으니..

제주의 지방도를 달리며 문득 든 생각들

백미러 프레임 안에서 뒷 차는 이미 내 차 뒤꽁무니에 바싹 붙어 계속 위협 중이다. 타요버스처럼 차에 눈이 붙어 표정을 지을 수 있다면 뒷 차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있지도 않은 눈을 험악하게 부라린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위협을 감지하고 바로 계기판 속도를 확인했다. 제주의 좁은 이차선 시골길에서 시속 60~70킬로는 결코 느린 속도가 아니었다. 몇 분째 뒤에 따라붙어 불편함을 조성하는 뒷 차 운전자에겐 무슨 사정이 있는 걸까..


1년 만에 다시 제주를 찾았다. 관광객이 점점 많아져서일까, 이전에도 그랬을까 싶게 속도위반단속 지점이 많아졌다. 카레이싱을 방불케 속도를 즐기던 차들도 속도감지 카메라 앞에선 설설 기는 순한 양이 되었다. 총길이가 무려 10킬로미터가 넘는 구간단속 지점에선 간혹 재밌는 풍경이 펼쳐지곤 했다. 어쨌거나 전구간 평균 지정속도만 넘지 않으면 되는 시스템 안에서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주변 차량의 속도가 맘에 들지 않아 추월의 추월을 반복하는 풍경.. 그래봤자 시속 60킬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말이다.


80킬로 이상 밟아제끼던 차량이 구간의 끝부분에 다다르자 평균속도를 맞추려 40~50킬로로 설설 긴다. 그러자 꾸준히 60킬로를 유지하며 달려오던 차가 답답한 듯 앞서고 만다. 마치 지독히도 타이밍이 맞지 않는 인간관계를 보는 듯하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인간 삶의 규율처럼 구간단속 구간에서 정속을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80킬로로 잘 나가던 누군가가 40킬로로 빌빌거릴 때 60킬로를 지속하던 누군가는 뒤쳐지는 누군가를 바라보며 이만하면 다행이다 안도하는 것처럼..


가슴속이 다 시원하도록 70킬로 이상 속력을 내 달리던 제주의 한가한 지방도에서 회전교차로에 들어서거나 신호를 받아 50킬로 이하로 감속할 때 그 상대적인 속력차가 주는 답답함은 최근 서울에선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줄줄이 늘어선 차량 숲에선 50킬로 이상은 생각할 수도 없는 욕심 같달까.. 그 속도가 주는 답답함에 대해 생각할 기회는 일상에 없었던 듯하다. 서울에선 일상이던 것이 제주에선 그저 일상의 한 부분이 된다. 한국에서  목숨 걸고 고집하던 어떤 가치가 또 다른 어떤 나라에선 가치를 잃고 무색해지는 것처럼..


무엇을 위해 당신은 자신의 고지식한 가치를 고집하며 날을 세우고 있는가.. 자신의 주행속도가 불변의 정속이라 생각하는가.. 속력을 줄여야 하는 때가 찾아오지 않으리라 자신하는가.. 여행의 끝자락에서 얻는 결론은 대부분 같은 느낌의 것들이었다. 유연해지자. 반드시 그리하도록 정해진 것은 없으니..


  

작가의 이전글 다시 앤이 되어 살아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