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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지현 Mar 15. 2019

파사타 담그는 날

오래 두고 먹는 토마토 소스 

“친콴타, 친콴타, 친콴타 알 킬로 (cinquanta, cinquanta, cinquanta al kilo, 1킬로에 50센트, 즉, 6백 원)”


한여름의 무더위가 한풀 꺾이는 8월 말부터 이탈리아의 시장 곳곳에는 토마토를 궤짝으로 파는 상인들이 모여든다. 예전만 못하지만, 아직도 이탈리아에서는 1년 내내 먹을 파사타를 직접 만들기 위해 저렴하고 맛좋은 토마토를 찾아 시장으로 나서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름내 강한 햇빛으로 달달하고 빨갛게 익은 토마토야말로 파사타, 즉 토마토 소스용으로 안성맞춤이다. 


“어렸을 때 발코니가 있는 집에 살았거든. 그 때 8월이면 할머니가 오셔서 엄마랑 같이 파사타를 발코니에서 만들었어. 꽤 어렸을 때였는데도 토마토 물이 벽 이곳저곳에 다 튀어서 발코니가 빨갰던 것만은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어”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 (Puglia)출신의 안젤라와 북부 베네토 (Veneto) 출신의 알레산드로가 선봉장이 되어 다섯 친구들이 파사타를 담기로 했다. 장맛이 일년 내내 한국 식탁의 맛을 좌우해 왔듯이 파스타를 비롯해 토마토를 이용하는 요리가 많은 이탈리아 부엌에서는 파사타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다만 한국에서도 도시에서 장 담그는 가정이 줄어드는 것처럼 이곳에서도 파사타를 직접 만드는 집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알레산드로의 기억 속 빨간 발코니처럼 이제 파사타 만들기는 옛 기억에나 남아 있는 특별한 행사가 되어 가고 있다. 

차로 12시간은 걸리는 풀리아에서 큰 트럭을 타고 토리노로 토마토를 팔러 왔다는 안젤라네 고향 상인에게 토마토 네 상자를 샀다. 토마토를 삶은 후 껍질과 과육을 걸러 내는 주방기구는 알레산드로 엄마네 창고에서 찾아냈다. 반나절이면 끝나겠지 했던 파사타 만들기는 토마토를 사고 주방 기구를 구하고 바구니와 파사타를 담을 병, 깔대기, 주걱, 주방 천 등등 필요한 도구와 재료를 준비하는 데만 반나절이 걸렸다. 


네 짝이나 되는 토마토를 하나하나 다듬고 씻는 것을 시작으로 다발로 사온 바질 잎도 하나하나 씻어 말린다. 바질잎에 물기가 남아있으면 파사타가 더 쉽게 상할 수 있단다. 토마토와 바질. 익숙한 이탈리아 식재료의 조합으로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바질은 향균작용이 있는 허브다. 파사타에 바질을 넣는 것은 그 향긋함을 담는 것은 물론이고 보관에도 도움이 된다.

깨끗이 씻어 꼭지와 흠집을 제거한 토마토를 깍두기 크기로 잘라 냄비에 넣고 중간 불로 끓인다. 바닥이 타서 눌지 않도록 계속해서 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끓이다 보면 토마토에서 물이 많이 나오는 데다가 결국은 이 물마저도 버려야 하니 따로 물을 넣을 필요는 없다. 


“어? 바질을 토마토 끓이는 데 넣으려고?”

“응, 우리 엄마랑 할머니는 항상 이렇게 하시던데?”

“그래? 우리 집에서는 토마토만 끓이고 파사타를 넣을 병에 바질 한 잎씩 넣거든.”


같은 재료로 만드는 파사타이지만 부엌의 수만큼 파사타의 맛은 다르다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잠깐, 잠깐, 토마토 건더기를 걸러 내고 남은 물은 버리면 안 돼. 이걸로 병 속을 한 번씩 헹궈낼거야. 우리 집에서는 항상 이 과정을 거쳐.”

안젤라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깜짝 노하우를 친구들에게 계속해서 풀어낸다. 풀리아 고향 집에서는 아직도 매년 1년 치 파사타를 만든다더니 그 전통이 안젤라에게 오롯이 전해져 오고 있다. 고향을 떠난 지 벌써 15년이 훌쩍 넘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온 가족이 모여서 만들던 파사타를 안젤라는 손으로 기억한다. 파사타의 달콤하고 시큼한 향이 가득한 안젤라네 부엌. 그녀의 할머니, 아니 할머니의 할머니가 함께 경험으로 찾아낸 방식이다. 실제로도 토마토는 바질처럼 항균작용을 해 그 끓인 물로 병을 헹궈 내면 행여 남아 있을 물기나 박테리아가 씻겨져 나가 보관에 더 안전하다. 


냄비 속 토마토가 물러지면 파사타 전용 도구를 이용해 씨와 껍질을 걸러낸다. 과육만 남은 토마토를 면포로 다시 한번 걸러 수분을 적당히 빼준다. 퓌레정도로 걸쭉해진 파사타를 병에 담고 나니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 훌쩍 지났다.

파사타 만드는 날은 무조건 파사타로 파스타를 해먹어야한다며 안젤라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그녀 가족의 또다른 전통이란다. 파사타가 맛있게 됐는지 맛도 보고 고단한 하루를 보낸 후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올리브 오일에 마늘 한쪽과 마른 고추 작은 것을 하나 넣고 향이 우러났다 싶으면 오늘 만든 파사타를 넣는다. 그릇에 묻어있는 파사타까지 물을 조금 넣어 헹궈 냄비에 붓는다. 폭폭 소리가 날 때까지 뚜껑을 덮고 약한 불에서 끓이면 파스타 소스 완성이다. 옆에서 끓이고 있던 스파게티가 준비되면 그 위에 부어서 먹기만 하면 된다. 


빵으로 그릇에 남은 소스까지 깨끗히 닦아 먹고 나니 피곤이 몰려온다. 이대로 잠이나 잤으면 좋겠는데 그건 바람일뿐. 파사타를 담은 병들을 진공 포장하기 위해 끓여야 한다. 커다란 가마솥 같은 냄비에 병들을 담는다. 물이 끓으면서 병이 움직이게 되면 서로 부딪혀서 깨질 수도 있으니 부엌천을 이리저리 돌려 감싸 넣는다. 장작이라도 땠으면 더 빨랐을까. 가스렌지 위에 올린 이 냄비는 도무지 끓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끓기 시작한 후 20분 정도 끓인 후 불을 끄고 그대로 식혀야 한다. 끓일 병들은 60개쯤 되는데 큰 냄비가 여러 개 있는 것도 아니고 기다렸다 다음 병을 끓이고 기다리고를 반복하다보니 새벽 2시가 되도록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다음 날까지 이어진 파사타 만들기. 

파사타를 만들어 볼 생각에 신이 났던 아침만 해도 매년 파사타를 함께 만들면 재밌겠다며 서로들 의욕에 가득 찼었는데, 이제 다들 말없이 웃기만 한다. 아마도 내년에는 친구들표 파사타는 없을 것 같다. 슈퍼에 가면 4인 식구가 파스타를 한 번 해먹을 양의 파사타 한 병에 1유로 남짓한다. 집에서 만들듯이 특별히 만들어낸 파사타도 많이 비싸봤자 한 병에 3-4유로 선이다. 전통이 그 편리함을 이겨 내기에는 지금의 사회는 가진 건 너무 많고 시간은 너무 없다. 


그래도 과정 자체는 어렵지 않아서 원한다면 가정에서 쉽게 만들어 볼 수 있다. 텃밭에 토마토가 많이 열렸다면 하루 날을 잡고 만들어야겠지만 부엌 선반 위 빨갛게 익어가는 토마토가 남아돈다면 간단하게 파사타를 만들어볼 수 있다. 소량으로 한다면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특히 토마토 껍질을 걸러내지 않으면 특별한 도구가 없어도 집에서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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