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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머핀 Jun 22. 2024

캘리포니아 연금 인터뷰 후기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다들 하게 되는 걱정이 '과연 내가 이 자리에서, 이 업계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한 것인 것 같다. 특히나 미국은 고용과 해고가 한국에 비해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회사 사정에 따라 쉽게 사람을 내보내거나, 나쁜 경우는 부서 전체를 통째로 없애버리기도 한다. 그러니 아직 한창인 나이라고 해도, '내 직업의 지속성'을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 당연해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국 안에서도 공기관/정부에서 일하는 직장에 대해 흥미가 생긴 것 같다. 우리나라는 요즘은 공무원이 인기가 없는 듯 보이지만 (연금개혁, 미래에 대한 전망 등의 이유로), 미국은 전망이 괜찮은 편이라 여전히 정부를 위해 일하는 자리의 인기가 많다. 특히나 수많은 직장 중 거의 유일하게 은퇴이후 연금을 두둑히ㅎㅎ 받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공기관 일자리를 기웃거리던 중에, 참 감사하게도 캘리포니아 사학연금(California State Teachers' Retirement)의 부동산 포트폴리오 매니저 자리의 면접기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미국 내의 연기금 중에서 캘리포니아 사학연금은 세번째로 운용규모가 큰 곳이다.


미국의 Top 5 연기금


내 분야에서 흔히 이런 연기금 같은 정부기관에서 일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이다: 연기금은 국민에게서 연금을 걷는다. 그럼 돈이 아주 많이 모일텐데, 이것을 지식과 경험이 갖추어진 누군가가 열심히 굴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연금을 낸 국민이 몇 십년 후에 은퇴할 때, 충분한 연금을 타서 생활 할 수 있다. 그래서 연기금은 이렇게 모은 돈으로 열심히 투자를 한다 - 일부는 주식에 넣고, 채권도 사고, 부동산에도 투자하고 말이다.  


내가 인터뷰를 본 자리는 그 중에서 부동산 펀드를 운용하는 자리다. 즉 캘리포니아 공립학교에서 일하는 선생님들이 월급에서 일정부분 떼어 납입한 돈을, 부동산에 투자하여 목표 수익률에 도달하게끔 운용하는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들의 노후가 걸린 문제이므로 일단 임무가 굉장히 막중하고, 같은 돈을 굴리는 일이라 해도 사기업과는 다르게 사명감을 갖고 일해야 하는 자리이다.  


1시간짜리 인터뷰에 들어가니 면접관은 등장하지 않고, 코디네이터가 화면에 질문을 7가지를 띠워준다. 10분을 줄테니 7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하라며. 나머지 50분은 내가 준비한 답을 면접관에게 발표하는 자리인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질문을 주기 위해 이렇게 같은 질문을 준비해서 한다고 한다. (미국에서 참 보기 힘든 '공정함'을 유지하다니 역시 정부기관 답다)  


그렇게 10분이 지나가고 나니 나이가 지긋하신 면접관이 5명이나 들어왔다. 역시나 퇴사율이 매우 저조한 직장이다보니 직원의 평균 연령이 50세는 되어 보이는 듯 했다. 앞에 나온 7가지 질문은 주로 부동산 관련 지식, 최근 동향에 관한 것이었다. 예상가능한 질문이었지만 동시에 매우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어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긴장 상태에서 준비한 것들을 말했다. 나의 지식을 궁금해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중요한 자리일 수록 '내 생각과 관점'에 대한 것들을 더 궁금해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나니 쓰고 있던 안경이 뿌얘질 정도로 얼굴에도 땀이 많이 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겨울 바깥은 영하 10도 였는데도. (작년 겨울의 이야기이다)  


2주후에는 안타깝게도 1라운드에서 떨어졌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렇지만 떨어졌어도 면접을 볼 때마다 새로운 것들을 빛의 속도로 배우게 되니 또 많은 걸 얻은 것이다.


면접 기회를 주신 분께 감사했다고 땡큐이메일을 보냈더니 다음과 같은 답이 왔다.


"43명의 지원자 중 7명을 뽑아서 면접을 진행한 자리였다. 그 적은 7명중의 한 명이었으니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어떤 인터뷰는 떨어져도 이렇게 뿌듯하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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