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눈 뜨면 출근이요, 눈 감으면 퇴근이다

by 무명

아침에 출근 중인데 부장에게 메시지가 왔다.


"어디니?

출입처에 있는 전화기로 나한테 전화 좀 해라."

출입처 전화기로 전화하라는 명령은 부장들이 기자들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수단 중 하나다. 휴대전화는 어디서든 걸고 받을 수 있지만, 출입처 전화기는 그 자리에 있어야만 걸고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큰일이다. 출입처까지 10분은 더 가야 하는데. 뛰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재촉하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바닥에 머리를 부딪혔다. 눈앞에 불이 번쩍했다. 일어나서 다시 뛰려고 하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익숙한 곳이다. 내 방이다. 악몽인가. 시계는 오전 8시 20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또 지각이다.


늦어도 오전 8시 30분까지는 출입처 기자실에 도착해야 한다. 출근하면 조간신문을 빠르게 스캔하고 출입처와 관련된 단독 기사가 나왔는지 확인해야 한다. 온라인 기사도 검색해 본다. 타사 지면에 파급력 있는 단독 기사가 있으면 그날은 ‘물 먹은’ 날이다. 부장에게 한 소리 들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전화기 너머로 뜨거운 욕설이 날아온다. 귀에서 전화기를 최대한 멀리 떨어뜨리고 연신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는 것이 노하우라면 노하우다.


그리고 오늘 어떤 기사를 쓸 것인지 보고하는 ‘발제’를 해야 한다. 과거엔 오늘 점심은 누구와 먹는지, 저녁 약속은 있는지도 보고해야 했다. 하루 종일 기자실에 혼자 틀어박혀 있는 일부 선배들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야 좋은 기사가 나온다. 약속이 없다고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부장은 눈치를 줬다. 눈치를 많이 보는 소심한 난 매일 점심·저녁 약속을 잡았고 그렇게 돼지가 됐다. 지금도 일부 언론사는 출입처와 오찬·만찬 약속을 보고하도록 시킨다고 들었다.


오전 9시 30분까지 회사 내부 망에 발제를 올려야 했으니까 타사 기사 검색과 발제 등 앞서 말한 모든 과정은 1시간 내에 이뤄져야 했다. 시간이 매우 부족하다. 그래서 보통은 전날, 다음날 발제할 아이템을 준비해 둔다. 쓸 만한 아이템을 찾지 못하고 전날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면 아침부터 지옥이 펼쳐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시간만 되면 초인적인 힘이 생긴다. 어제의 나에겐 보이지 않았던 자료가 눈에 들어오고, 시상이 떠오르듯 아이템이 선연해진다. 물론 딱 면피할 수준의 아이템이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강해진다. 어떻게든 기사 아이템을 찾아 열리고 있던 지옥문을 닫아걸게 된다.


이왕 늦었으니 발제를 하고 집을 나서기로 했다. 후다닥 취재 계획을 올리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전 9시 30분쯤 됐을까. 두 정거장만 더 가면 기자실인데 부장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받았다간 각종 소음과 하차 벨 소리에 버스 타고 출근 중이라는 사실을 들키게 된다. 전화를 넘겼다. ‘전화’라고 메시지가 온다. 기자들은 다 아는 공포의 단어다. 부장과 선배 전화는 신호음 3번 울리기 전에 받으라는 교육을 받았던 터다. '전화'라는 최후통첩을 받고 바로 콜백을 하지 않으면 그때는 또 다른 지옥이 펼쳐진다.


결국 한 정거장을 앞두고 급히 버스에서 내렸다. 눈에 보이는 가까운 건물로 무작정 뛰어갔다. 계단으로 3층까지 헐레벌떡 올라갔다. ‘여기라면 조용한 기자실 느낌이 나겠군.’ 혼날 각오하고 부장에게 콜백 했다. 다행히 내가 발제한 기사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만 했다. 전화하면서 누군가 계단으로 올라와 나에게 뭐 하는 거냐고 물을까 봐, 그러면 부장에게 지각을 걸리까 봐 노심초사했다. 심장이 심하게 뛰었다.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사선을 넘기고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직 완벽하게 살아난 건 아니다. 그 길로 출입처까지 뛰었다.


지각은 내가 1진으로 출입하는 출입처가 있을 때나 가능하다. 예컨대 국회 출입하는 정치부 기자의 경우, 출입처에 선배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지각은 상상할 수 없다. 타사 선배들이 내 동향을 파악해서 우리 회사 선배들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경찰들이나 출입처 홍보팀이 선배와 친할 경우에도 내 위치는 노출된다. 초년생 때는 사방이 적인셈이다. 당시엔 빡빡한 근태 관리가 힘들었지만 지금은 이해한다. 긴장을 늦추면 오보를 내게 되고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선배들과 농담으로 하던 말이 있다. 기자는 눈 뜨면 출근이고 눈 감으면 퇴근이라고. 일부는 자유로운 생활을 부러워하겠지만, 직접 경험해 보면 그렇지도 않다. 잠들기 전까지 발제 압박에 시달려봤는가. 꿈에서도 취재하고 기사를 쓰게 된다. 내가 타고 있던 비행기가 추락했는데 나만 살아남아 기사를 쓰는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 사회부에 있을 땐 ‘누군가 내 앞에서 큰 사고를 냈으면, 그게 아니라면 내가 큰 사고를 당했으면 좋겠다. 그럼 기사 아이템 걱정 안 해도 되는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요즘도 기획기사 출고 전날에는 밤을 새우기가 일쑤다. 휴가로 간 해외에서 기사를 마감한 적도 있다. 물론 연차가 쌓인 만큼 과거보다 발제 압박에서는 많이 자유로워졌다. 덕분에 퇴근하고 이런 글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