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치대생과의 대화
나의 아버지는 목표 달성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는 가장이다.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체력을 아끼지 않는 분이셨다. 지치지 않는 아버지의 열정을 보고 있으면 20대에 의지박약인 나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무언가에 쫓기듯 위태로워 보였을까? 아니면 단지 나의 성향이었을까? 여하튼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가장 싫어하는 야망이 없는 삶을 지금껏 살아오고 있다. (이 글을 아버지가 보게 된다면 얼마나 노발대발하실지....) 무언가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지 않는 삶은 행복하지 않은 걸까? 소모적인 인생관인가? 성장이 없는 인생일까? 나는 최근에 나의 이런 삶의 방향이 목표가 없는 삶이 아닌 목표가 다른 삶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야망이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던 나도 취업이란 문턱 앞에선 어쩔 수 없었다.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 공직자의 길을 나의 천직으로 삼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 길만 집중해서 2년이라는 시간을 열심히 공부했다. 다행히 자비로운 국가는 이런 나조차도 고용해 주었다. 하지만 그 2년이라는 시간이 나에게 준 의미는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 가 아니라 목표지향적인 삶의 폐해였다. 수험생의 입장에선 시험의 합격만 목표이다 보니, 그 기간 동안 만났던 사람들, 먹었던 음식, 영화 등 다른 요소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소중한 하루하루는 뭘 했는지 조차 느끼지 못하고 살게 되었다. 공부하느라 고생한다고 친구들이 자리를 만들면, 고마운 마음에 당장 달려갔지만 찜찜한 마음에 제대로 대화에 끼지도 못하고 집에 들어온다거나,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무슨 메뉴인 지도 모르고 학식을 욱여넣기도 했다. 미래의 목표를 위해서 현재의 삶을 희생해야 하는 삶은 나에게 맞지 않다. 나에게는 지금 살고 있는 현재 매 순간을 제대로 느끼는 것이 행복이다. 내가 지금 대화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길을 가다 들리는 노래가 내 취향인지, 식당에서 주는 음식을 어떻게 더 맛있게 먹을지 알아가는 것도 목표가 있는 삶이다.
아버지의 행복은 목표 뒤에 있지만 나의 행복은 오늘 하루 곳곳에 있었다.
거대한 무언가를 이룰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개인의 성장을 위해, 가정을 일으키기 위해, 사회의 발전을 위해 커다란 목표를 꿈꾸어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무심하게 지나칠 사소한 일상들 속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면 목표를 향해 조금 더 즐겁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너는 치대를 졸업하면 뭐할 생각이야?"
"저는 음....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아마 개원하겠죠?"
"졸업이 코앞인데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 있을지 생각해본 적도 없어?"
"네 없는데요. 근데 이 커피 녹여서 먹여야 하는 게 신기하긴 한데 맛은 그다지? 마셔봐요"
"조금 더 녹여야겠다. 그럼 나중에 나 나이 들면 임플란트나 싸게 해줘"
"당연하죠! 아 그전에 졸업에 필요한 금니 시술 지원자 좀 구해줘요"
나는 이 동생이 어째서인지 무척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