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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트 Mar 10. 2018

부정의 힘

 한때 「긍정의 힘」이라는 책이 유행을 했었다. 대학 도서관에 공부를 하러 가면 그 책을 읽는 학생들이 많았고, 여러 시사 교양 방송에서도 그 책에 대한 내용들을 다루었다. 하지만 긍정의 힘이라는 단어가 어째선지 나는 너무 공감이 안되었다. 나는 자라오면서 어떤 난관에 부딪혔을 때 혹은 목표를 이뤄야 할 때 즐거움과 기대에 의한 동기보다 불안감이 나를 결국 행동하게 했다. 즐거움과 관련된 감정엔 다소 무디고, 불안한 감정을 유발하는 일에는 예민하다 보니 내 감정선이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기만을 늘 바라 왔다. 그냥 요동치지 않고 평안한 게 가장 행복했다. 지나치게 기쁜 일이 있으면 조금만 안 좋은 자극에도 흥이 깨져버리니 말이다.

 하지만 살면서 때때로 어쩔수없이 커다란 목표에 부딪쳐야 하는 시기가 온다. 수능, 재수, 취업 등 이런 굵직한 사건을 누군가는 호기롭게 진입하지만 나는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며 그저 조금 일찍, 조금 더 부산하게 행동할 뿐이다. 불안감 속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거보단 뭐라도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니까.

 재수할 때 한 친구와 짧게 나눈 대화를 통해 나는 내가 부정의 힘을 따르는 사람인 걸 크게 깨달았다. 9월 모의고사를 치른 후쯤 나는 매일매일 불안하고 초조해했다. '내가 매일 열심히 해도 수능 때 망하면 어떡하지?',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한들 결과가 공정하게 나와줄까?', '수능을 망하면 부모님 얼굴은 어떻게 볼까?', '수능 전날에 전쟁이 나서 그냥 다 수능 안 치면 좋겠다.',  '원하는 대학을 못 가면 어떤 일을 하고 살아야 할까?', '그냥 내일 눈뜨면 1년이 지나가 있으면 좋겠다.'
  수능이 인생의 끝인 것처럼 매일 부정적인 생각들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루하루를 괴롭혔다. 잠이 안 와서 늦게 자고, 잠이 안 와서 일찍 일어났다. 밥이 귀찮아서 안 먹었고, 쉬고 싶은 생각도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매일 필요 없는 조급함 속에 지내던 중에 한 친구가 너무 이상하게 보였다. 그 친구는 늦잠으로 학원에 자주 지각을 했다. 성적은 잘 나오는 친구인데, 너무 자유로워 보여서 집에 가는 길에 잠깐 물어보았다.
 "이번 수능이 망하면 어떨까 걱정되지 않아?"
그 친구도 나와 같은 나이 같은 상황인데 그 20살 아이가 이렇게 대답하며 웃었다.
 "망하면 삼수하지 뭐, 뭘 그렇게 걱정해"
'내 걱정이 남에게는 걱정이 아닐 수 있구나', 이 친구가 너무 커 보였고 세상을 향한 배짱이 너무 멋있었다.
 나는 재수를 끝으로 다행히 원하는 대학을 갔고, 이 친구도 삼수를 끝으로 내켜하지는 않았지만 명문대에 진학을 했다. 사수를 안 한 거 보니 삼수하면서는 좀 힘들긴 했나 보다. 이후에 커다란 시험이 있을 때마다 이 친구처럼 생각해보고 싶었지만 나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대학생활을 하며, 사회생활을 하며 '나는 부정적인 사람이다'라고 말하면, 주위에선 놀란다. 전혀 안 그래 보인다고, 하지만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내 마음속이 천국에서 지옥으로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는지 다들 모르는 눈치다. 그저 겉으로는 웃고 있기 때문에.
 그렇지만 뭐 이런 특성으로 오랫동안 살아보니 그렇게 나쁜 점만 있는 것 같진 않다. 수많은 나쁜 결과의 시뮬레이션 속에서 각각의 마지막 보루 혹은 플랜 B를 만들어 놓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또한 나쁜 결과 이후의 상실감을 총 100이라고 한다면, 나 같은 경우 미리 1 정도씩 꾸준히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정작 그 일이 닥쳐도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 이렇게 힘들걸 예상했었잖아? 하면서 말이다.

 인간은 전지전능하지 않기에 어떤 미래가 닥칠지 전혀 알 수 없다. 마치 캄캄한 방 속에 있듯 늘 불안감속에 떨고 있다. 그 불안감을 어떻게 해소하느냐는 개개인의 성향이지 어떤 게 정답이다 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자기만의 방식으로 열심히 해쳐나가면 된다. 부정적인 사람에게도 긍정적인 사람과 동일한 아침의 해가 뜨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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