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적 잦은 이사의 트라우마?로 인해 자기 방어기제로 선을 일찍부터 그을 줄 알았고 사람들 간의 선도 잘 볼 수 있었다. 마치 초등학생 때 짝꿍과 책상에 선을 긋고 지우개를 뺏었던 것처럼 사람들이 나의 선을 침범하는 것을 불편해했다. 내 기분이 다른 사람에 의해 동요되지 않을 때 나는 안정감을 느꼈고, 그 안정감이 깨질 때는 그 상황이 너무 불안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사회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 각각의 보이지 않는 선의 싸움을 하며 아무 일이 없을 때 편안히 하룻밤을 마무리했던 것 같다. 이 선은 내가 무례함을 느끼지 않을 선, 즉 일반적인 상식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반적인 상식선이 비슷하게 공유되는 사람 간에는 관계가 쉽게 형성되는 반면 그 선의 범위가 다를 경우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저 사람은 나와는 안 맞아' 그러고는 선을 더 강하게 들이민다. 어떤 사람은 선의 범위가 넓고, 어떤 사람은 선이 무디고, 어떤 사람은 선이 이기적으로 이동하고, 어떤 사람은 선이 직선이고, 어떤 사람은 곡선이고, 어떤 사람은 점선이고, 또 어떤 사람은 실선이고 사람들 간에는 정말 많은 선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수많은 선 속에서 서로가 편한 선을 공유하는 사람을 찾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른들은 고등학교 친구가 가장 오래간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혹시 저마다 선을 가장 자유롭게 또는 야만적으로 드러내는 시기가 고등학생 때여 서가 아닐까?
나 역시 대학생 이후부터는 친한 친구를 만드는 게 어려울 거라 생각하고 적당한 선으로 사람을 상대했다. 하지만 한 동생을 면접 스터디 때 알게 되면서 '정말 중요한 건 사람이지, 보이지 않는 선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처음엔 스쳐 지나갈 사람으로 생각하고 대했더니, 훗날에 내가 자기를 싫어하는 줄 알았다고 속마음을 얘기했었다. 지금은 직장 내 누구보다도 친한 친구가 되었고, 짧은 기간 동안 깊은 얘기들을 공유하고 서로의 가치관을 인정해주는 관계는, 오래된 친구 못지않은 삶의 활력소이자 기대 밖의 즐거움을 준다.
선은 사람 사이에 존재하지만 사람 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 그 선이 내 눈을 가리지 않게끔 가끔씩 나의 선이 너무 어둡지는 않은지, 너무 높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