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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구네 Apr 04. 2022

영상 PD 긴 한데요, 그냥 짜치는 거 만들어요 - 完

나는 어떻게 디지털 영상 PD가 되었나

<영상 PD 긴 한데요, 그냥 짜치는 거 만들어요 - 3> 보러 가기


위 시리즈를 쓰면서 몇몇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나처럼 디지털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의 자조 섞인 공감이었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듬과 동시에 모두의 미래를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오늘은 5년 동안 디지털 영상 PD로 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했던 흔적들을 공유하려 한다. 당연하게도 이 선택지들은 정답이 아니다. 부디 참고해서 좋은 선택을 내리길 바란다.



 

1. 네가 선택한 커리어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현재 당신의 커리어가 만족스럽지 않고 불안한가?

미래가 불투명하고 발전할 부분이 보이지 않는 이 업계를 떠나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 더욱 가치 있고 현명한 일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조세호는 2001년, 장도연은 2007년, 양세찬은 2005년 데뷔했다.

작년 이슈가 됐던 <놀면 뭐하니>의 한 장면을 되짚어보자. 한참 어린 후배들과 모인 자리에서 대뜸 유재석은 후배들의 데뷔 년도를 묻는다. 이들이 현재 위치에 오르기까지 인내한 시간은 적게 잡아도 10년 이상이었다. 유재석 본인도 MC로 발탁되기까지 9년의 무명기간을 거쳤다.

수많은 선배, 동기, 후배들이 고민 속에서 연예계를 떠날 때, 이들은 자신의 자리를 말 그대로 굳건히 버텨냈다. 그리고 자신에게 온 기회를 잡았다.

"진짜 버티느라 고생들 했다!"라는 응원이 이들에게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걸, 유지하는 게 가장 힘들어요.

75만 구독자를 갖고 있는 '알간지'라는 유튜버의 고민 상담 콘텐츠 중 일부이다.

이 유튜버는 학교생활에 의미를 찾지 못해 자퇴를 고민하는 학생에게 말한다.

"의외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보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유지하는 게 더 힘들어요."

이직을 많이 해본 사람들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말이었다.

새로운 근무처, 새로운 업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들은 사실 재밌고 설렌다.

이러한 새로움에 익숙해지고 일이 루틴화 될 때쯤 나도 모르게 취업 플랫폼을 들락거리게 되는 것이다.


2년 동안 어플리케이션 회사에서 일하면서 나는 꽤 많은 성공을 이뤘었다. 100만 조회수도 달성해 보고, 인기 급상승 동영상 2위에도 랭크됐었다. 그러나 더 이상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고 계속해서 이전같이 성공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에도 버거움을 느꼈다.

결국 고민 끝에 퇴사를 선택했다. 쌓아놓은 것이 있으니 이직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아직도 내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서 꿈을 찾아 떠난 것인지, 그 당시 현실을 유지할 자신이 없어 도피한 것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고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말도 있지 않나. 방황하는 마음을 잡고 현재 업무에 보다 충실해 보자.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2. 영상 전문성 있는 회사로 이직해라.

현재 만드는 콘텐츠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는 이 커리어와 내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할 때다. 너무 많이 늦지 않았다면, 보다 영상 전문성 있는 회사로 이직할 것을 권한다.

물론 연봉이 많이 낮아질 수 있다. 그렇지만 고작 연봉 몇백 더 받는 것이 당신의 인생에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경험하지 않았나.


나 역시 첫 이직 때 낮은 연봉을 제시했던 프로덕션의 제안을 거절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는 열정페이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젊은이들을 자극하던 시기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당시 나의 결정을 매우 후회한다. 꼰대 같은 말일 수 있지만, 갓 대학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 뭐 얼마나 대단한 성취를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사실상 일을 배우며 하는 단계인데.. 만약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회사라면 이런 기회를 놓치지 마라. 내가 당시 거절했던 그 프로덕션은 현재 광고인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큰 회사가 됐다.


추가적으로 요즘은 꼭 영화, 광고뿐만 아니라 유튜브 콘텐츠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프로덕션들도 많이 생겼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광고나 콘텐츠의 제작사를 찾아보고 이직을 준비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개인적으로는 1인 영상 제작 스킬을 요구하는 소규모의 스타트업은 추천하지 않는다. 이력서를 만들고 채용사이트에 올려보면 알겠지만, 영상 인력에 대한 수요는 꽤나 많은 편이다. 특히나 큰돈을 쓰지 않고 적당히 영상을 만들어보려고 하는 기업들에게 디지털 콘텐츠를 1인으로 제작할 수 있는 PD는 꽤나 메리트 있는 인재이다. 영상인들에게도 내가 모든 영상을 기획하고 제작할 수 있는 회사는 꽤나 매력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당신 혼자서 발전할 수 있는 단계에는 한계가 있다. 현재 당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보다 큰 물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배우기를 바란다.




3. 창업해라

지난 3주 동안, 내가 회사에서 만든 광고 영상 1개에서 대략 천만 원의 구매 전환 값이 발생했다.

'아니.. 그냥 내가 팔아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것 아닐까?

해당 영상은 딱히 내 포트폴리오에도 넣기 싫은 흔하디흔한 SNS 광고 영상이었다.


물론 창업이 쉬운 것은 아니다. 소싱, 발송, 재고관리, 브랜딩, 홍보... 신경 쓸 일이 많다. 다만 당신이 광고 영상을 제작할 수 있고, 페이스북/인스타그램 광고를 집행할 줄 안다면, 해야 할 일은 괜찮은 물건을 소싱하는 것뿐이다. 물론 큰 사업을 할 생각으로 회사와 제품에 대한 브랜딩까지 고려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이커머스 업계의 특징 중 하나가 브랜딩이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혹시 최근에 SNS에서 광고를 보고 물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는가? 있다면 지금 그 제품의 브랜드명이 기억나는가? 변기세정제, 먼지 제거기, 헤어 빗등 온라인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제품들은 브랜드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다. 애초에 소비자들도 큰 기대를 하진 않기 때문이다. 가격대도 보통 1~3만 원대로 낮은 편이라 해당 영상 광고가 솔깃했으면 한 번 사본다. 만약 당신이 괜찮은 제품을 소싱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회사에서 하던 대로 광고 영상을 만들고 페이스북 광고를 집행해 물건을 팔아보자.


커머스에 관심이 없다면 콘텐츠를 직접 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요즘 국내 유튜브 채널의 대세는 숏 무비다. 최근 미친듯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너덜트, 숏박스를 참고해 보자. 다만 한발 늦은 점은 인정해라. 어지간한 차별점과 지속 가능성이 없다면 어쩌다 콘텐츠가 잘 되더라도 원 히트 원더로 끝나고 말 것이다.

굳이 무언가를 직접 촬영해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은 버리자. 최근에는 타입 캐스트와 같은 더빙 서비스도 많고, 셔터 스톡으로 받을 수 있는 영상 소스들도 많이 있다. 또 자기만의 인사이트와 스타일이 있다면 '공정 이용' 허용 범위 안에서 유튜브 상의 영상을 이용하여 콘텐츠를 제작할 수도 있다.


혹은 여태까지 만든 포트폴리오를 정리해서 크몽에 외주영상PD로 등록해볼 수도 있다. 나같은 걸 뭘 믿고 맡길까?..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나름 지금까지 회사에서 월급받으며 잘 살아왔지 않는가. 아까도 말했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다. 크몽에는 별에별 수요와 공급이 많다. 심지어 고민을 들어만 주는 상담가도 있다. 당신의 영상을 매력적으로 평가해주는 기업을 만나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될 수도 있다.




에필로그

마지막으로 글을 정리하다 보니 이 세 가지 방법.. 어딘가 익숙하단 생각이 들었다.

결국 지금의 회사에서 버티거나, 더 나은 곳으로 떠나거나, 나만의 사업을 이끌거나 셋 중 하나 아닌가.

바로 배민이 말하는 일 잘하는 법칙 11가지 중 마지막 법칙이다.

사실 CNN 창업자 테드 터너의 명언이다.

우리 모두 사실은 이 세 가지 안에서 답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뭐 대단한 해결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기대하진 않지 않았는가. 부디 당신의 앞길에 행운이 따르길 빈다.

다만 계획했던 대로 일이 잘되지 않더라도 좌절하지 말자. 나도 지난달에 돌고래 유괴단 공개채용 떨어졌다. 사실 그거 준비하느라 글 쓰는 것도 늦어졌다. 떨어지고는 이제 진짜 인생 망했다며 몇 주를 술로 보냈다.

그렇지만 어떡하겠나, 계속해서 영상인으로서 더 나은 삶을 위한 방법을 찾고 노력해야 한다.

그게 바로 현재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여러분과 나의 삶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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