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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구네 Jun 20. 2022

PD들은 왜 곤조가 있을까

아니 과연 그럴까?

먼저 내 자랑으로 시작해 보겠다. 나는 동료들에게 협업이 원활하다는 평가를 자주 받는다.

... 추측이지만 아마 "PD치고는요!"가 생략되어 있는 것 같긴 하다.


이전 글에도 말했지만 이쪽 업계에는 '영상인들은 자기만의 곤조가 있고, 이것을 잘 굽히려 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져있다. 이번 글에서는 영상인의 입장에서 이러한 선입견에 대해 변호해 보려 한다.

만약 당신이 PD와 협업해야 하는 마케터, 기획자, 더 나아가 대표라면 앞으로 PD 들과 의사소통할 때 참고하길 바란다.

근데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1. 너.. 뭐 돼?

가정을 하나 해보자.


당신은 마케터이고 곧 다가올 추석 연휴를 맞아 매출을 '빵' 터뜨릴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을 기획했다.

당신은 '나는 역시 천재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부푼 마음으로 회의 시간에 기획안을 설명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이 탐탁지 않다.


"뭐.. 좋은 아이디어인데요. 현실성이 조금 부족한 것 같아요. 다음에 참고해서 진행해 보죠."

이런 상황에서 "네~ 그렇군요~! 다른 기획을 해보겠습니다!"라며 웃고 넘어갈 수 있는가?


'당연한 거 아니에요?.. 회사 생활이 다 그렇죠..'라고 생각했다면,

저런 피드백을 준 사람이 마케팅의 '마'자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PD들이 다른 직군에 있는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게 될 경우, 정말 납득이 될 만큼 정확한 부분이 아니라면

'역시 뭘 잘 모르네..' 라고 생각하게 될 확률이 높다.

이런 경우에는 해당 PD의 상급자나 동료들을 통해서 우회적으로 의견을 전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PD들은 대체로 자기보다 영상적인 경험이 많거나, 역량이 뛰어난 사람의 피드백은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편이다.


2. 피드백은 제대로 했나?

1번과 이어지는 부분이다. 사실 영상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피드백을 할 경우,

PD와 의사소통이 어려워질 수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마케터가 영상을 보고 "흠.. 이 부분은 좀 심심한 것 같아요." 라는 피드백을 줬다.

이때부터 PD는 혼란에 휩싸인다.

'뭐.. 어떻게 하라는 거지?.. 효과 같은 걸 좀 넣어볼까?..'

몇 시간 뒤 애니메이션, 그래픽 소스 등을 넣어서 보다 화려해진 영상을 가져온 PD는 자신만만하게 마케터에게 보여준다.

"헉ㅜ 너무 효과들이 많아서 제품이 잘 안 보이는 것 같은데요? 그냥 여기 넘어갈 때 촤라락? 이런 효과 같은 것만 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이 말을 들은 PD는 몇 시간 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에 대한 좌절감을 느낌과 동시에 분노에 차오른다. '그럼 그냥 트랜지션 효과만 몇 개 넣어달라고 하던가...'

한두 번이야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당신의 피드백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PD의 모습을 보게 될 수도 있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보다는 명확한 레퍼런스를 통해서 피드백을 주거나, 위의 사례처럼 영상인들이 작업 시 사용하는 몇 가지 용어들만 알아도 그들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해질 수 있다.


3. 칭찬은 했나?

여러분과 일하고 있는 PD들이 영화처럼 대단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다만 영상 쪽으로 커리어를 밟고 있다는 것은, 마음 한구석에는 창작자로서의 면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알아두자.

기본적으로 창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결과물에 대해 칭찬받는 것을, 정말 상상 이상으로 좋아한다.

피드백이라는 게 꼭 안 좋은 부분만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지적할 것은 지적하되, 잘했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꼭 칭찬해 주자. 입이 찢어지게 좋아하며 요청하지 않은 부분까지 수정해서 오는 PD를 보게 될 수도 있다.


칭찬은 꼭 PD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서만 하는 것은 아니다.

PD가 A라는 포인트에 심혈을 기울여 제작했을 때, 'A부분은 정말 좋았어요'라는 피드백을 받으면

머릿속에 '오, 그래도 좀 볼 줄 아는 놈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PD는 자신의 결과물을 인정받고, 피드백을 준 사람은 좋은 것을 알아보는 감각 있는 사람이 된다.


사실 일부 PD들은 분명히 쓸데없이 권위적이고 의사소통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

촬영이라고 당당하게 도로를 통제하고 시민들에게 윽박지르는 방송 관계자들에 대한 썰은 이미 유명하다.

초등학생들도 유튜브 채널을 하나씩 갖고 있는 세상이다.

이제 영상을 한다는 건 더 이상 대단한 능력이 아니며 영상 PD들도 본인들의 곤조를 내려놓을 때가 됐다.

혹시 본인이 협력하는 마케터, MD 등 동료들에게 고집을 부리며 원활한 협업에 지장을 줬다면,

반성하는 시간을 갖고 사과를 해보는 건 어떨까. 자, 따라 해보자.

"니가 영상에 대해서 뭘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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