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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린 May 09. 2022

그대의 배려가 당연하지 않은 이유.

군인, 군악대장 가족입니다만

친분이 있는 가정과 이야기하다 서로 아이들의 등굣길을 함께 하자고 이야기가 오갔다. 같은 학교에 다니니 번갈아 가면서 데려다주는 거다. 이제 1학년 초등학생이 된 그 집 아이도 좋다고 했고 우리 아이도 함께 등교하는 길이 즐겁다고 했다. 내가 먼저 하겠다 자처했고 이번엔 상대방 차례다. 나와보니 약속 시간보다도 빨리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다.

“어? 언제부터 있었어요? 많이 기다렸어요?

“아니요 이제 막 나왔어요.”


음, 그런데 곧장 출발하기 좋게 차 안의 모든 세팅이 되어 있는 이런 장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하다. 사모님을 모시기 위해 오 분 전 대기하고 기다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려졌던 그 장면.


예를 들면 이렇다. 사모님을 태운 비서 와이프는 80의 표준 속도를 유지한다. 코너 돌 때도 흔들리지 않고 부드럽게 운전하며 스무드(smooth--)하고 전화라도 할라 치면 라디오 볼륨을 줄였고 말은 아낀다. 사모님이 말씀하시면 자연스럽게 맞장구쳤고 말씀하시기 무섭게 행동한다. 높은 계급에 걸맞은 대우를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던 비서 와이프.


이런 장면도 있다. 대장 사모님의 부하 직원 아내는 사모님이 호출하는 대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쇼핑을 하기 위해 백화점에 가면 가방을 들어 드리고 골프를 좋아하시면 골프를 배워서 사모님이 이기게 해 드리고 술을 좋아하시면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콜 하면 거뜬히 일어난다. 대장 사모님은 부하 아내가 모셔야 한다.


남편이 대장이면 아내도 대장 아내이고 남편이 평사원이면 아내도 평사원이다. 여기의 분위기가 그렇단다. 그렇다면 만날 사모님이 심신적으로 건강하길 빌어야 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게 어디 마음처럼 될까. 계급사회에서 ‘네가 나보다 계급이 낮으면 당연히 그에 맞게 대우해야지’ 생각이 우선적으로 깔려 있는 사람이라면 아랫사람을 위하는 바람을 갖는 게 옳지 않다.


이쯤 되면 궁금증이 인다. ‘군인가족이면 변죽을 맞춰야 하는가?’ 이건 사회생활인가? 지금 사는 이곳이 내 밥벌이인가?(밥벌이라고 해서 당연한 것도 아니지만).  가족끼리 충성을 한다고 해서 진정한 충성이 되는가? 과연 사람이 사람에게, 그것도 한창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챙겨야 할 시기에 가정을 둘째로 두고 윗사람의 니즈(needs)를 우선 해야 한다는 게 상식적인가? 높은 계급의 체면에 걸맞은 아랫사람이 된다는 게 뭔가? 계급사회는 이런 건가? 계급이라는 틀이 일상 속 공기처럼 세세하게 스며들어 있어 미처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끼처럼 퍼졌다. 안 그런 척, 과거보다는 훨씬 나아진 척 하지만 관습은 그래야 한다는 명목에 묶여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많이 흐려졌다는 말도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지 않나.


두 어번 반복되는 이 모양새가 아무래도 묘하다.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지인은 나보다 너 댓살이 어린 사람으로 따뜻하고 온화하고 푸근하다. 사람 참 좋다. 해서 아껴주고 싶은, 동생 같은 사람. 허나 가만 생각해 보니 나이가 더 많고 내 남편이 선배라고 해서 하는 행동이라면 나는 조금 거리를 두겠다. 왜냐면 당신의 선의가 당연한 게 아니다. 그저 단순히 배려하는 것이라면 감사하지만 계급 사회에서의 예의 이런 거라면 불편하다.


육아관이 맞고 관심도 비슷하다지만 진정으로 관심이 있는 건지 아니면 선후배라는 계급에게 맞춰주는 건지. 웃음도 말도 먼저 나오지 않고 변죽은 맞추되 넉살 좋게 대화는 하지만 자연스럽지 않은 문장의 선택이라면 나도 불편하고 당사자는 더더욱 어렵다. 난 사람과 인연과 만남이 좋지 누군가의 양보로 수월해지는 사이는 원치 않다. 건강한 관계가 될 리도 만무하고.


내가 이 사람과의 대화와 관계가 편하다는 건 상대방이 그만큼 나에게 배려하고 양보하고 맞춰주고 있다는 거다. ‘마음이 맞다’라는 건 확률적으로 얼마나 어려운가. 내 마음과 너의 마음이 다른데 어떻게 같은 마음이 될 수가 있나. 내가 정말 이 사람을 아끼고 보살펴주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하고 싶다면 어려움이나 난감한 일은 만들고 싶지 않다. 나 편하고 유익하자고 타인의 귀한 시간을 좀 먹게 하고 싶지 않다. 허니 정말 중요한 일 아니고서야 거리는 좀 두되 마음은 우선하는 게 좋겠다.








계급 문화와 특유의 환경이 내포되어 있는 군인가족 지점에서

개인성이 강한 내가

더불어 살아가며 성장하는 일상을 담습니다.

보편성과 개인성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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