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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린 Apr 30. 2022

당신 부하가 아니지 말입니다.

군인, 군악대장 가족입니다만

남편과 잘 싸우지는 않지만 간혹 트러블이 일 때가 있다. 바로 어떠한 일을 갑자기 통보하듯이 말하는 것. 생각하지 못했고 사전에 미리 이야기된 게 아닌데 남편이 ‘이거 좀 했어야 하잖아’하고 툭 내뱉으면 시간이 임박한 상황이 연출되고 당황스러움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갑작스레 내뱉은 일이 중요도가 높을수록 분노도 높다. 갑자기 훅 파고든 곤혹감에 나 역시 버럭 하게 되는 거다. 


“사전에 미리 이야기를 해 주면 좋잖아. 내가 당신 부하야? 왜 명령조로 말하는데? 당신이 명령하면 들어야 해? 앞 뒤 맥락 없이 딱 자르고 갑자기 말하면 내가 어떻게 다 알아?”


그렇다. 상명하복의 분위기가 만연한 군대에서 일하다 보니 남편이 간혹 명령을 내리듯 의사전달을 한다. 같은 말이어도 ‘이것 좀 해 줄래, 저것 좀 부탁해’ 하면 듣는 입장에서 여유가 생긴다. 당일치기로 갑자기 말하는 것이 아닌 미리 며칠 전에 언질을 주면 금상첨화다. 공손하고 배려하는 말을 듣고 싶지 상대방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은 채 혼자서 결정해 통보하는 식이면 거부감이 인다. 어느 순간 남편도 그러한 점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는지 부대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들의 공통적인 대화 역시. ‘우리 와이프도 내가 당신 부하야? 이야기합니다’ 하더란다. 


위에서 명령을 하면 ‘네’하고 들어야 하는 군 분위기가 익숙해진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스며들었나 보다며 멋쩍어한다. 한 번은 ‘미리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머릿속에서만 한 거였나 봐.’ 한 적도 있다. 그야말로 서로가 난감하다. 자신이 인식하고 있음에도 습관이 되어 나오는 행동이라니. 본인도 어리둥절이다. 


때론 그 선이 모호할 때도 있다. 평소에 잘 들어주다가 갑작스레 버럭 하면 남편도 ‘새삼스레 왜 그래’ 할지도 모르겠다. 웬만하면 부탁을 잘 들어주고 싶고 가능하면 한 마음으로 행동하고 싶은데 그것이 나의 존엄성과 거리가 멀어진다 생각하면 갑자기 울컥하는 거다. 요약하면, 익숙해진 나머지 당연시되어버린 습관이나 갑작스러운 요구가 기분 좋을 때는 오케이 아니면 분노가 된다. 


처음에는 이해가 전혀 되지 않았던 것이 상황을 이해하고 정리가 되자 서로를 더 배려하게 되는 과정이 된다. 부부가 대화를 통해 서로를 더 알아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생각도 하고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맞춰가는 거구나 배우게 되고. 나를 알고 남편을 알고 사회적 역할이 만든 습관을 이해하는 것 말이다. 해서 이제는 좀 같이 살았다고 이해하게 된다. 화내지 않고 ‘미리 좀 말해 줄래, 갑자기 말하면 어떻게 하니’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남편도 미리 언질을 주고 나도 갑작스러워 당황할 일이 줄었다. 







계급문화와 특유의 환경이 내포되어 있는 군인가족 지점에서 

개인성이 강한 내가 

더불어 살아가며 성장하는 일상을 담습니다.

보편성과 개인성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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