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군악대장 가족입니다만
현재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는 대략 15동 남짓으로 입구에서부터 들어서면 4층 건물이 양쪽으로 늘어져 있는 모양이다. 초입에서 중간쯤 들어오면 1층엔 관리사무소, px(군 할인마트), 2층엔 아담한 어린이 도서관, 3층엔 헬스 공간, 독서실이 마련되어 있다. 그로부터 조금 더 들어오면 현재 우리 집이 있고 한 건물만 더 지나가면 회관과 후문이 있다.
단지 내에는 놀이터가 있고 배드민턴이나 테니스를 즐길 수 있는 공간도 조성되어 있다. 쪽문 쪽으로 나가면 자전거 도로와 바로 연결되어 있어서 산책하기에도 좋다. 외엔 밭이나 산이 뻗어 있고 실개천이 흐른다. 군부대들이 산속 어딘가, 시골 어딘가에 있다 보니 당연히 군인가족이 사는 주거 단지도 그 주변이다. 자연 가까이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함께 하는 게 좋다.
멀리서 보면 평범한 아파트 단지가, 하늘 위에서 바라다보면 다 비슷한 분위기의 건물들이 가까운 땅에서 겪자니 건물마다 지위가 붙었다. 아파트 입구에 사는 사람들은 낮은 계급, 들어갈수록 높은 계급. 입구 쪽은 평수가 가장 좁고 단지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진다. 가장 안 쪽 끝에 있는 건물인 108동은 소위 말해 계급이 높으신 분들이 거주하신다. 다른 지역 아파트 단지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묘한 분위기가 있는데 여긴 계급 분위기가 유독 강하다는 점이다.
“택배 아저씨한테 108동 맨 끝 집 앞에 놔달라고 하잖아.”
“아니, 계급이 뭔데 이 동 수에 이사를 와?”
108동은 아파트 입구에서 시작해 후문 쪽에 다다라야 만날 수 있는 건물이다. 101동부터 시작하자면 제일 지위 높은 건물이 되신다. 높으신 그곳에 사는 분은 종종 잊지 않고 동 수를 이야기하곤 했다. 다 같은 외형의 건물이지만 가장 넓은 평수를 누리며 윗 공기가 맑으신지 108동 프리미엄을 만끽한다. 남편의 계급이 나의 계급이 되는 합일. 계급의 높고 낮음이 인성의 높고 낮음이 아닐 텐데 자신의 정체성이 어디에 찰싹 붙어있느냐가 여실히 드러나는 민 낯.
내심 ‘군인가족은 우리나라 국민의 혈세로 지어진 건물 안에서 살거든요.’ 문장이 인다. 관사 내에 사람 사는 아파트는 거기서 거기, 다 비슷하지 않을까. 내 돈 주고 산, 혹은 내 정성 들여 가꾼 집이라면 모를까 나라에서 살도록 허락해준 집이 왜 개인 소유의 무언가처럼 자랑하고 싶을까. 동수가 높은 공기를 벗 삼아 인생의 선배처럼 조언을 한다. 나도 네 시절 때 그랬다 훈수도 둔다. 한 단계 높은 차원의 계급을 가진 남편의 아내이니 특권인 건가. 그게 어떻게 우월감이 되고 자랑이 되는지 이해되지 않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도 있으니 그러려니 한다. 어쨌든 ‘이 단지 안에서는 높으니 그러고 싶은가’ 하고 말이다.
뉴스에서 보면 서로 다른 경계로 ‘우리 놀이터에서 놀지 마라’, ‘우리 아파트 주민 아니면 들어오지 마라’ 등을 종종 보게 된다. 표현이 다를 뿐 주거공간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건 어디에나 있다. 가까이에서, 또는 그룹에 속한 사람들끼리 있다 보니 도드라져 보일 뿐. 어깨를 스치는 모든 이가 스승이라고 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으니 그 또한 배움으로 교훈을 얻으면 되지 않을까. 사람 사는 모습, 개인이 동력으로 삼는 가치관은 당사자의 몫이다.
나는 그저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는데 그나마 무난하게 살 수 있는 건 군 아파트 덕분이라 생각한다. 국민이 지어준 집에 군인이라는 이유로 공짜로 살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인가. 깨끗하고 정갈하게 잘 살다가 다음 이가 오면 좋은 기운이 흐르도록 잘 이어주는 게 현재 사는 보금자리 인연에 대한 보답이다.
계급 문화와 특유의 환경이 내포되어 있는 군인가족 지점에서
개인성이 강한 내가
더불어 살아가며 성장하는 일상을 담습니다.
보편성과 개인성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