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군악대장 가족입니다만
이사 후 처음 맞는 주말 아침이다. 며칠 전 이삿짐을 쌌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시작한 이사는 오후 1시쯤 시작되어 7시 즈음이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비는 시작할 때보다 더 세게 내렸다. 또다시 이사다. 이번 이사가 어느덧, 5번째. 군인 가족이라면 숙명이다.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는 이사업체 사람들이 짐 정리를 마치고 돌아간 후, 우리 가족만 남았다. 연결된 것이 아무것도 없고 사전 정보도 전혀 없는 곳에서의 우리. 밖은 깜깜하고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장대비가 되어 창밖에 방울진다. 이 안에서 우리만 있다는 생각에 적막하다. 아, 외롭기도 했던가. 익숙하지만 명확하지 않은 모호한 감정들이 안개처럼 스며든다. 다시, 또다시.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이다.
일단은 몸져눕고 싶었다. 머리가 아팠고 몸은 무거웠다. 2주째 지속된 갈라진 목소리는 더더욱 허스키한 말로 나왔고 따끔했다. 아이들을 챙겨야 한다는 의무와 의지로 몸을 움직였다. 밥을 먹여야 했고, 씻겨야 했고, 일단은 낯선 곳에서의 적응을 위해 엄마로서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했다. 정들었던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보고 싶다며 첫째 딸아이는 눈물바람을 한다. 혼자였다면 어떻게든 이 상황을 받아들여 보려고 몸부림치겠지만 엄마는 딸아이의 눈물바람을 보기가 괴롭다. 가슴 한구석에서 물 젖은 솜 마냥 그저 함께 먹먹하다. 익숙한 곳에서 낯선 곳으로의 이동. 그것은 일순간 모든 것이 정지되는 것 같은 리셋 버튼이 된다.
군인 가족으로서의 이사가 자신의 책임인 양. 남편은 부지런히 집 이곳저곳을 손본다. 바닥을 몇 번이나 닦고, 망가진 곳을 수리해가고, 필요한 것을 다시 챙겨보는 중이다. 부족한 것을 채워가고 애매한 것을 확실히 매듭짓고, 살기에 불편할 곳들을 불편하지 않게 한 번 더 만지는 손길이 섬세하다. 함께 동사무소에 가서 주소를 이전하고, 주로 다닐만한 동선을 함께 지나가고, 미처 다 알지 못하는 지역적 특색에 한 번 더 눈길을 주며 나에게 말을 건넨다. 아이들의 학교까지 우리는 함께 방문해보며 상담을 하고 상의를 한다. 아....... 이 모든 것을 나 혼자 했더라면 얼마나 더 적막했을까.
새로운 장소에 낯을 가리고, 익숙하지 않음에 어색해하는 것이 어른답지 못한 것일까. 이사가 익숙해지는 순간이 오면 나는 더욱 성숙해진 어른이 되어 있을까. 아이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어른이면 적응이 한결 쉬워지는 순간일까. 아이들과 남편 덕분에 기운을 내고 적응을 해 보려 유연한 척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어색한 것은 사실이 되어 낯선 공기 내음을 풍긴다.
딱히 꼬집어 어디가 아픈지 모르겠으나 마음이 시들었던 하루하루에 남편과 함께 움직이니 그나마 움직일 힘이 난다. 다른 생각하지 못하게 부지런히 말을 건네는 아이들 덕에 정신을 잡아보려 노력한다. 가족의 힘이란 이런 것인가. 적응이란 게 배터리 충전하듯이 단번에 차오르면 좋겠지만 이번 지역에서는 얼마나, 또 어떻게 적응이 되어 갈까. 이제껏 그랬듯 알게 모르게 스르르, 생소했던 것이 익숙해지고, 낯설었던 것이 당연해지는 그 순간이 되면 적응이 되어 있다 표현할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지낼 앞으로 2년여의 시간은 어떻게 지나가게 될까.
계급 문화와 특유의 환경이 내포되어 있는 군인가족 지점에서
개인성이 강한 내가
더불어 살아가며 성장하는 일상을 담습니다.
보편성과 개인성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