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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린 Dec 05. 2022

불확실함을 탐색하다.

군인, 군악대장 가족입니다만


군악대장의 아내로 산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이미지를 남기는데, 종종 정체성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선택의 갈림길, 비무장 지대, 들 푸른 초원에서 홀로 핀 장미 등등의 것을 느끼게 한다. 군인이면서 지휘를 하는 역할은 직업과 예술가 어디쯤 아닐까 생각하게도 했으며 밥벌이를 넘어 자신의 전공과 악기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자아실현의 장이라는 생각이 들게도 했다. 


이성과 감성의 장이 허락되는 교집합 어딘가, 군인이어서 훈련도 하고 병사분들과 함께 호흡하고 생활한다. 또한 지역에서 공연도 하고 행사도 진행한다. 단단하고 강압적이며 통제적인 상황에서 피어나는 예술적 감성이다. 표현하는 모든 것이 예술이라고 했던가. 남편이 무대 위에서 공연하고 지휘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름 

척박함에서 즐거움과 희망을 끌어올리는, 아름다운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국력을 강화하고 전쟁을 대비하지만 전쟁이 다 가 아니듯, 메마른 곳에서도 꽃은 피어나는 남편의 직업은 마른 의식에게서 영혼의 생기가 돌게 하는 의미 있는 일이라 영롱하다고 느꼈다. 


군의 성향이 강한 곳에서 군악은, 할 일 없이 행사나 치르고 논다는 범주였고, 군악이 활성화되어 있는 곳에서는 동경의 대상으로 비쳤다. 그에 따른 대우나 분위기도 상이했는데 간극의 온도차는 추웠다 따뜻했다를 반복했다. 소위 놀면서 돈 버는 부류가 이미지 되었을 때는 가족에 대한 분위기도 차가웠고 무대 위 자주 올라 노출이 많이 되는 이미지에서는 가까이하고 싶으나 선뜻 가까이하지 않는 동경하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였다. 


두 경우 다 난감하거나 불편하고 좋거나 매끄러운 감정을 낳는데 굳이 선택하라면 질투를 받더라도 환영받는 분위기를 선택하고만 싶다. 가만히 서있는데도 눈총을 받을 거라면 인정을 받으면서 눈총을 받는 게 숨은 쉬어진다. 제 값을 하는데도 놀면서 나랏돈 받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은 어투로 봐서나 대하는 태도로 봐서나 신경에 날이 선다. 


동경에 의한 과도한 관심은 아내인 나는 어떤 사람인지,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크는지 어떤 태도로 사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의 눈이 수십만 개다. 통과하라고 있는 것도 아닌데 도덕적인 관념이나 윤리적인 태도로 행동해야 할 것 같은 모범적 문이 도사린다. 군악대장 와이프는 이렇더라 하는 채점이 매겨지는 듯한 상황. 내뱉는 말이나 언행이 타인의 도화지에 그려지는 순환이다. 예술적 특유의 분위기를 풍기는, 그래서 눈에 쉽게 띄는, 독립적인 지점 어디쯤이면서도 직업이 군인이라 정의되는 그즈음. 


타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어쩌면 이건 내가 타인을 의식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행여나 말이 돌 거라면 ‘그 사람 괜찮은 사람이더라’는 말이 돌길 바랐고 ‘마음이 따듯한’ 사람으로 비치길 원했다. ‘계급 그까지 꺼’ 속세를 해탈한 사람이길 바랬고 ‘사람과 사람으로 진정한 만남이어야지’ 인성이 보이길 바랐다.


나로서 산다고 하지만 세상과 부딪히며 마음의 성숙을 이루어간다. 혼자인 상태가 편할 때도 있지만 외롭고, 어울려서 즐겁지만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관계 속에서도 내 맘 같지 않을 때는, 아파트 단지 안이 지옥이 따로 없다. 의도치 않음이 의도된 것처럼 비칠 때의 난감함이란, 방금 전까지 친근하게 지냈던 이가 갑자기 싸늘하게 차가워지는 간극을 혼자서 위로하고 메꾸는 감정의 노동이 된다. 남편의 직업이라서 연관성이 없을 것 같지만 연결이 되어 있는 미묘함에서 나의 자리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6676#modal   펌


계급 문화와 특유의 환경이 내포되어 있는 군인가족 지점에서 

개인성이 강한 내가 

더불어 살아가며 성장하는 일상을 담습니다.

보편성과 개인성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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