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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프 Dec 08. 2022

나는 초록 괴물, 헐크입니다.

“애미야, 참아라. 소송해야지 별 수 없다. 법인 돈 함부로 쓰면, 그거 감방행이거든. 걔가 엄청나게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는 거야.”

 

“걱정마라, 애미야. 걔가 ‘잘못했어요’라고 말할끼다. 사과하면, 네가 용서해줄 거잖아. 걔가 뭘 모르고  떠드는데, 어쩔 수 없다. 소장받아보면, 덜컥 놀랄 거다. 지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짓을 하고 있는지.”

 

“겁만 주자. 용서해주면 되니까.”

 

“내가 도와줄 테니 애미는 신경 끄고 애들 잘 키워라.”

 

“불쌍한 애다. 사과만 받자.”

 

나는 고소인. ‘불쌍한 애’는 피고인.


나와 ‘불쌍한 애’는 더 이상 대화가 되질 않았다. ‘죄송합니다’ 그 한마디를 들어야 했다. 그렇기에 기어코 소송이란 걸 했다. 법인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었다. 속에서 천불이 났다. 형사고소를 해야 했다. 차마 못했다. 형사소송이 뭔지 몰랐기에.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 했던가. '걔'한테 빨간 줄 생기는 것은 막아주고 싶었다.  난 충분히 잔인하지도, 용감하지도 못했다. 민사 소송.  합리적인 대응이라 생각했다. 법원서 발송된 우편물을 받고 나면,  '걔'는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사정할 것이고, 나는 너그러이 용서할 것이고. 그게 생각했던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그건 얄팍한 기대였다. 허접한 내 무식함이었다.

 



저쪽을 겨누었다. 미움, 분노의 화살로.  이상하게 소송이 껄끄럽게 진행되었다. 뭔 일인가, 소장을 뒤늦게 들여다보니, 아뿔싸. 아버님이 친구분과 함께 소장을 작성한 것이다. 친구는 변호사도 아닌데. 단지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인데. 변호사의  최종 확인 도장만 받아서 법원에 소장이랍시고 보낸 것이었다. 민망스러운 소장이었고,  싸움은 지지리도 더럽게 길어졌다. 부장판사 대 사무장의 대결이라니.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던가. 활화산이 된 나. 설상가상은 이때 사용하는 말인가.

 


뜯기지도 않은 채 신발장 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택배 상자. 뭉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머리카락. 무너질 듯 말 듯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빨래 무덤. 소송 시나리오의 주인공이 되고 나니, 미쳐 날뛰는 하루가 반복됐다. 나 자신을 매일 옭아매는 끈이었다. 나를 돕겠다고 나서 준 남편, 시부모도 매일 붉으락푸르락 화가 뒤범벅되었다. 내편이라 하지만, 그들도 내 적이나 다름없었다.



아,  안타깝게도 눈물, 고함은 아이들에게 쉽게 전염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방어선이 되질 못했다.

 


“9시다. 이제 양치하자.”

“네.”

시곗바늘이 9시를 가리키면, 헐크로 변할 듯 말 듯, 난 꿈틀거린다. 양치하면서도 키득키득. 잠옷 갈아입으면서도 하하호호. 엄마는 안중에 없다. 초록 괴물을 기어코 만나고자 너네들 주문 거는 거니? 심장이 떨려온다. 9시에서 무려 15분이나 지났다. 그들의 밍그적 밍그적은 기어코 불을 지핀다.

 



“야!”

“어서 방에 들어가라고.”

미끄러져 넘어질까 뒷모습이 아찔하다. 후다닥 달려들어가는 아이들. 어쩌랴, 너희들이 잠들어야 내가 사는데.

 

“어서 자.”

“빨리 눈감아.”

“눈 안 감아? 엄마 힘들어서 쓰러지는 거 보려고 그러니?”

 

매일 밤 내뿜었다. 고래고래. 고함은 아이를 놀라게 했다. 매일 반복되니 이제 익숙할 때도 되었는데. 아이들은 변함없이 당황했다. 목청 높게 소리치는 나, 참 말 못 할 엄마다. 눈을 움켜 감고 있는 아이들. 주먹 꼭 쥐듯 눈도 꼭 쥐고 있다. 다리까지 꼿꼿하게 펴며, 차렷 자세하고 있다. 고함 효과는 언제나 직빵이다. 점점 데시벨이 높아지니 목이 아픈 게 흠이다. 아. 목 따가워.

 


불을 끄고, 방문을 닫고 나오면, 굵은 눈물이 뚝뚝... 뭐가 그리 슬퍼서. 오늘도 하염없이 반복되는 내 눈물 잔치. 정신을 차려야 했다. 어떻게든 눈물을 붙잡아야 했다. 시리고 헤어 빠진 내 마음을 어루만져야 했다. 책상 앞에 앉아 노트를 꺼낸다. 언제부터인가, 매일 그렇게 쓰기 시작했다. 엄마 반성문 시작은 단순했다. 처음엔 ‘미안하다’ 네 글자를 썼다.


'미안하다.'


 가장 하고 싶은 말이었다.

 

헐크가 되고 나서부터 글로 푸는 법을 터득했다. 초록 괴물은 혼자 삭이는 시간을 갖는다. 그렇게 손을 움직이고 나면 어느새 분노가 사라진다. 엄마 반성문은 두꺼워질수록, 나의 초록빛은 옅어져 갔다.


"대충 말아 간도 안 맞는 계란말이를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다."

" 오늘 읽기로 약속한 한글책 한 권을 잊지 않고  읽은 네가 자랑스럽다."

"엄마가 소리치는데 투정하지 않고  빨리빨리 움직여준 게 감사하다."

"또, 미안하다."


매일 반성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희망을 걸어본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다시 헐크 아닌 인간다운 엄마로 내일 만나기를 약속해본다. 쓰고, 지우고 또 쓴다.

 

내가 왜 화가 났었는지, 왜 울었는지 새까맣게 잊은 채 씩 웃고 있다.

 

“헐크 잘 들어!   애들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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