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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현지 Nov 30. 2020

그러니까 오늘

최근 잠을 통 이루지 못하고, 먹지 못하는 것이 단순히 피로 탓인 줄 알았다. 피로한 이유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테니, 잘 자는 편이 되려 신기할 것이다. 잘 먹지 못하는 결말은 못 자서 피곤한 서사와 매치하면 인과 관계가 완벽했다.

크게 대수롭지 않았다.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날이 있고, 태어난 것 자체가 행복으로 느껴지는 날이 있다. 크지 않은 삶의 굴곡은 하루에도 몇 번씩 존재한다.

이틀 휴가를 냈다. 여태껏 여행으로 일과 여가를 간신히 분리해왔으나, 코로나라는 변수가 등장하며 다음 달까지 소진해야 하는 휴가가 80시간이 남았다. 환산해보면 약 10일이니, 올해 단 5일 정도의 휴식만 취하며 살아온 셈이다. 휴가는 매번 다음 달 나의 몫으로 미루며 살았다. 눈치 주는 사람 없고, 오히려 동료들이 "제발 휴가 좀 가세요."라고 독려해주는 편이지만 휴식보다 '소진' 목적에 충실한 이틀을 택했다.

"내일 5시 회의는 제가 갈게요. 미팅콜 주세요."
"현지님, 휴가 아니세요?"


코로나 때문에 외출이 자유롭지 않은 탓인지, 마음도 어딘가로 떠날 준비가 안된 탓인지, 휴가를 조금 널널하게 일하는 날로 여겼다.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았고, 밥 맛은 없었다. 엄마가 몇 주전에 두고 간 김치와 반찬은 뜯지도 않았다. 휴가에도 마음 한 구석은 계속 불안했다.

쉬는 기간에도 SNS에서 '오늘의집 웨비나 요약', '일 잘하는 사람의 30계명' 같은 콘텐츠를 소비하다 보면, 기막힌 알고리즘의 세계가 '워커홀릭 자가진단 테스트'로 인도한다. 30개 문항 중 28개를 동그라미 쳐도 지금 현 상황을 타개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이 집 용하네'가 끝이었다. 딱히 모르는 사실도 아니었으니, 모종의 공식(?)으로 확인한 수준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

그러니까. 평일, 주말 각각 이틀을 합한 휴가를 마치고 복귀하는 월요일. 노트북을 켜자마자 몰려오는 두려움에 눈물이 터지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괜찮은 줄 알았다. 과중한 업무에 지친 몸이 가끔 이상 신호를 보내와도, 그저 체력이 약한 나의 탓으로 귀결해왔던 것처럼. 나는 나에게 몹시 둔하고 무심한 구석이 있다.

갑자기 소름 끼치게 무서웠다. 주어진 업무가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맡은 업무가 많아 동료들이 1인 기업이라고 농담을 해도, 웃으며 되받아쳤는데 오늘만은 달랐다. '도망치고 싶다.'라는 생각에 온몸이 불안으로 휘감겼고, 곧 울음으로 목이 메어왔다.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질문에 Y의 선택지가 생략된 기분이었다. 결과를 알면서도 결과를 인정하기 싫어서 자꾸 질문으로 돌아가는 느낌. 평소라면 감정 컨트롤 또한 프로의 기본 소양이라며 스스로를 논리로 설득하고 달랬겠지만, 마음이 머리를 거부했다. 혼자서는 도통 해결하지 못할 것 같았고 두려움은 기댈 곳을 원했다.


"잠시 20분만 미팅 가능하실까요?"


직속 상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닦느라 네 번째 티슈를 뽑던 찰나였다.

"현지님 무슨 일이에요?"


화상 미팅 화면 안에서 울고 있는 나. 평소 웃는 모습만 보여준다고 '조증' 아니냐고 유쾌하게 의심하던 이사님의 첫마디였다.

"갑자기 이유 없이 눈물이 나요. 무서워요."


이사님은 웃으면서 천천히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가장 잘하고 있는 얘가 왜 이런 고민을 하는지 리더로서는 도통 이해가 안 되지만, 사실 일을 잘하게 되는 상황 같은 건 평생 오지 않는다고, 내가 우러러보는 누군가도 매일이 챌린지고, 끝이 없다고.

업무를 한 단계씩 퀘스트 깨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세, 네 단계를 넘나들며 비 정상적인 속도로 뛰고 있는 사람이라 늘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을 안다고. 본인이 생각한 수준보다 훨씬 더 난이도 높은 업무를 하고 있는 사람이고, 회사에서 높은 난이도의 업무를 주는 것은 그 정도의 업무를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 때문이라고. 반대로 쉬운 일을 주는 것이 더욱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다만 혹시나 덜고 싶은 업무가 있으면 말을 하라고, 조금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그 찰나에도, 가진 업무 어느 하나 내려놓기 싫어서 "업무는 괜찮아요. 마음이 문제예요." 라며 얘기를 풀어놓는 내가 너무도 우습지만,

잘하고 있다고 말해줘서가 아니라 본인도 나 만한 시절에 겁이 나서 울었던 적이 있다고, 지금도 가끔 그렇다고, 끝이 없을 거라고, 울고 나면 한결 가벼워지니 눈물이 날 때는 마음껏 울어도 된다고 하는 말이 참 위로가 되어. 미팅을 마치고 나서도 조금 더 울었다.

나의 하루를 곱씹는다. 대충 시키는 일이나 하면서 월급을 받아가는 사람이었다면 절대 없었을 일, 아니 공감 조차 하지 못할 이야기임에 스스로가 안쓰러우면서도 기특한 마음이 든다. 과거 나의 리더가 밟아온 길을 현재의 내가 걸어가고 있으니, 이것보다 힘이 되는 반증이 어디 있을까. 그렇게 오늘을 애쓰며 견디며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저녁,

오랜만에 빵 하나를 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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