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새 학년이 시작될 때마다 경건하게 치르던 연례행사를 떠올린다. 교과서 표지에 반, 번호, 이름을 곱게 써넣는 일로, 글씨가 반듯하지 않거나 허용된 공간을 벗어나는 실수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대참사로 여겼다. 노트 맨 앞장은 필기가 맘에 들 때까지 뜯기는 수모를 당했다.
시간이 흘러 망친 필기는 메모 앱의 '되돌리기' 한 방이면 감쪽같이 회생 가능한 시대를 맞이했고, 덩달아 내 증세에도 차도가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1월 1일자 일력을 단정하게 찢는 일에 몰두하거나, 하루의 시작 출근길에 마주하는 불쾌한 일을 '오늘 일진이 좋지 않네'로 일반화하는 형태를 보면 이 병은 완치되지 않음이 분명했다.
처음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증상으로 '처음병'이라 명명한다.
여전히 건재한 처음병자는 이 공간의 포문을 어떤 글로 열지 몰라 수 일을 망설였다. 이 글이 나을지, 저 글이 나을지 한참을 고민하다 정말 그냥 '아무 글'을 끼적여보자는 정 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첫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시작 전 흥미를 잃을 바엔, 아무 말 대잔치로 처음병을 희석해 버리는 기적의 (야매)치료법을 택한 것이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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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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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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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은 무의미와 닿아있지 않다. 되려 처음이 선사하는 중압감으로부터 해방되게 하여 더욱 의미가 있다. 앞으로 이 공간은 과거의 나와 끊임없이 이별하고 조우하는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염원을 담아,
아무아무말아무나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