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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린이 Apr 12. 2019

네 숨 만큼만 있다오거라

어쩌다, 수영

엄마 아빠의 태국 여행을 이틀 앞둔 날 전화벨이 울렸다. 동생이다. 엄마가 여차 저차 해서 수영장에서 다쳤다는 소식이었다. 수영은 안전한 운동이지만 수영장에서는 늘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난다. 젊은 남자의 평영 킥에 갈비뼈에 금이 간 할머니도 있었고 샤워실에서 미끄러져 머리를 다친 사람도 있었다. 마음이 철렁 내려앉아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접영을 하던 같은 반 회원 팔에 엄마가 눈을 맞아 눈 주위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단다.


동생이 말했다.

"이제 1번 안 한대"


분명 심각한 일인데 웃음이 터졌다. 나도 말했다.

"그래 이제 좀 내려놓고 즐기시라 해"


수영장 단체 강습반에서 '1번'이란 참으로 위대하고도 고독하면서 무거운 이름이다. 수영인들에게 '1번'이라고 하면 '아! 그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자리!'라는 반응이 돌아오지만 수영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미묘한 자리의 무게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학급의 반장? 아니야, 훈련소의 조교? 사실 나는 '1번'을 해본 적이 없어서 더더욱 설명이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1번'은 단체 강습반의 가장 선두에 서는 사람을 말한다. 'IM(Individual Medley-개인혼영 a.k.a 접배평자) 4바퀴 도세요'라거나 '접영 킥, 평영 팔로 두 바퀴 돕니다' 같은 강사의 지시를 찰떡같이 알아듣고 이행해야 하며, 강습반 전체가 원활하게 돌 수 있도록 늘 강철 체력을 유지해야 한다. 뒷사람에게 따라 잡혀서도 안되고 중간에 쉬어서도 안된다. '자유형 다섯 바퀴 돌고 시작합니다'라는 상황에서 한 바퀴를 더 돌았다가는 수강생들에게 원성을, 한 바퀴를 덜 돌아서는 강사에게 질책을 받는 정말이지 고뇌에 찬 자리인 것이다. 그래서 모든 반에서 '1번'은 일반적으로 '수영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차지하는데 '수영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란 '예쁘다'나 '매력적이다'는 말만큼이나 주관적이라 가끔 수영 경력이 길다는 이유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1번'자리를 놓지 않아 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엄마는 오전 7시 중급반 '1번'을 사수 중이었다. 수영장 새벽반의 특징은 '열혈 수영러'들이다. 출근 가방과 함께 수영가방을 한 짐 가득 싸서 출근할 수 있는 체력을 가진 사람들, 전날 과음을 했든, 야근을 했든 새벽에 운동을 할 수 있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 무엇보다 추운 겨울 칼바람과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고 수영장으로 나서는 락스물 중독자들이다. 학교나 직장 때문에 새벽반을 선택한 사람이 많은데 이는 곧 수강생들이 젊다는 얘기다. 엄마는 20대부터 40대까지 '젊은이'들이 가득한 반에서 당당한 60대 아줌마, 아니 할머니로 '1번'을 지키고 있었다. 실력을 갖춘 1번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엄마는 강습 한 시간 전에 가서 자유수영으로 연습을 하고, 한 시간 강습을 듣고 돌아왔다.  눈을 맞는 불상사를 겪기 전에도 그렇게 수영하다가는 언젠가 탈이 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해하던 참이었다.


"언니 몰랐어? 엄마 야심 있는 사람이야"

굳이 젊은이들 틈에서 기를 쓰고 '1번'을 놓지 않는 엄마를 두고 동생이 말했다. 아빠도 "가끔 몇 바퀴 도는지 헷갈린다며. 그냥 젊은 남자들한테 양보해"라고 한다. 그래도 엄마는 아랑곳 않고 선두를 지킨다. 엄마가 잘 못하는 평영을 할 때만 빼고 말이다.


'접영 최고에요'라는 선생님의 칭찬이 그렇게 만든 건지, 젊은 사람들 틈에서 속도에 밀리지 않고 자세도 흐트러지지 않고 수영하는 자신을 확인하고 나서 그런 건지, 엄마가 아침마다 잊지 않는 계란후라이 2개 덕분인지, 기를 쓰고 선두를 지키는 엄마의 그 열정과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하긴 엄마만 그런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잠영을 할 때마다 기절해서 떠오르기 직전인데도 마음속에서 '좀 더, 좀 더'하고 채근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수심이 낮은걸 뻔히 알면서도 스타트를 뛰어보고 싶은 충동도, 오픈 워터 자격증 없이도 깊은 바다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깊이를 두려워하도록 태어났지만, 우리는 그 깊이를 확인하기 위해 수영을 한다. 그 도전이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었지만 때로는 그 열정이 우리를 무모하게 만든다.


그림책 '엄마는 해녀입니다'에는 모든 수영인들이, 아니 인생의 바다를 건너는 우리 모두가 새겨들어야 할 명언이 나온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네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


욕심을 부리면 물은 안다. 억지로 이기며 나아가려고 하면 물은 귀신같이 알아챈다. 더 큰 전복을 찾으러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바다가 아래서 나를 당기는 순간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래서 해녀였던 할머니가 역시 해녀였던 엄마한테 그렇게 타일렀다. 욕심부리지 말고 네 숨만큼만 있다 오라고.


수영을 오래 하면, 그리고 나이가 들면 다 내려놓고, 욕심도 없어지고, 모두 해녀 할머니처럼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부처가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는 아직도 소녀처럼 꿈꾸고, 담대한 희망을 갖고, 욕심도 부려본다. 엄마도 아직 자라고 있는 걸까. 내가 아직도 철이 없는 것처럼. 우리 모두가 사실은 죽을 때까지 미성년인 것처럼. 엄마도 나처럼 내려놓는 법을 여전히 조금씩 배우고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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