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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또각 Oct 30. 2019

기막힌 연애담 8

사랑은 스릴, 쇼크, 서스펜스! 中






별에서 온 그대


그는 서울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두 시간 정도 거리의 도시에 머무르고 있었다. 애초에 대학을 거기서 나와서 쭉 머물렀으니 지금쯤이면 나고 자란 고향보다 더 긴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으리라. 어쨌든 내 입장에서는 생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였다. 걔가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딱히 찾을 일이 없는, 그만큼 내게는 아무런 연고도 연유도 없는 장소. 그래서인지 더 설레더라. 걔 말고는 그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하는 이 도시에서, 나는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황홀한 착각을 느꼈다.


고속열차에서 내려 처음 발을 내딛는 순간 설렘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낯선 하늘. 낯선 공기. 낯선 풍경. 나는 신분을 숨기고 타국 땅에 당도한 이방인처럼 뜨거워졌다. 이곳에서라면 삶도 사랑도 리셋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드디어 내 인생도 피는구나. 피뢰침을 관통한 벼락처럼 이 세상의 운이 전부 나를 향해 달겨드는 느낌이었다. 열차 플랫폼에서부터 역사 밖으로 걸어 나가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이곳으로 이사와 집을 구하고 취직을 하고 그 애와 결혼해서 가족을 꾸리는 상상을 했다. 그런데 말이죠. 이 시발(始發)스러운 생각이야말로 이 모든 재앙의 시작이었다.


앞선 편에서 밝혔듯 그 당시 나는 반십년의 연애를 막 끝낸 참이었다. 것도 장렬히 차여가면서. 그래서인지 눈에 봬는 게 없었다.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남자를 잃자마자 나를 그토록 좋아했던 남자가 나타났다? 그가 5년 만에 찾아와서는 한다는 말이 '아직도 널 좋아하고 있어' 따위의 90년대 일본 순정만화에나 나올 법한 대사다? 한 술 더 떠 타고나길 우월한 피지컬이 소싯적 그대로 건재하다? (정말로다가... 여전히 쌔끈빠끈 하더라고요. 저속한 표현 죄송합니다만 이 표현만큼 찰떡같은 게 없더랍디다. 맞아요. 제가 좀 저속합니다.) 너 진짜 어느 별에서 온 거니, 싶을 정도로.


아 잠깐. 이건 여러분이 인정해줘야 된다. 아니 솔직히 대박이잖아요. 내가 눈이 안 돌아가게 생겼냐고요. 이건 너무 드라마잖아. 그찮아요. 그러니 자연히 내 모든 신경이 내꺼인듯 내꺼아닌 내꺼같은 그놈에게 쏠릴 수밖에. 역시 이번에도 변명은 않겠다.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잘생겨먹은 얼굴로 요리조리 불꽃 슛을 던져대니... 피구왕 통키 납셨고 홈런왕 강속구 듭셨는데 내가 무슨 수로 피하랴. 그냥 정신 놓고 장단 맞춰 춤사위를 추다 보니 어느새 아침이 왔네?


그렇다. 우리는 그렇게 롱디를 시작했다.






롱디는 사랑을 싣고


개인적으로 21세기 대한민국 3대 비극 중 하나가 <기러기 아빠>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사회적 영향력은 정말로 어마무시하다. 물론 집집마다 사정이야 당연히 있겠으나 내가 거기까지 알 권리는 없고 (물론 의무도 없고). 여기서 문제는 내 사정도 그들만큼이나 급급하다는 거다. 기러기 아빠는 외롭다. 그래서 그 외로움이 온 군데로 튄다. 특히 직장에선 그 정도가 보다 심하다. 가령, 어떻게든 밥은 함께 먹어야 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퇴근은 늦게 하며, 안간힘을 다해 모든 일을 본인 부서로 끌어오신다. 언뜻 보면 무지막지한 워커홀릭 같은데 솔직히 그냥 전형적인 불안장애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속에 뚫린 커다란 빵꾸를 채울 수가 없는, 아주 슬픈 현대인의 고질병 말이다.


문제는 그 최대 피해자가 바로 부하직원이라는 거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홀로 남은 적적함이 환장의 콜라보를 이루며 십수 년간 메말라있던 그들의 말주변에 물꼬를 튼다. 열린 수도꼭지처럼 넘쳐흐르는 잡수다와 멈출 줄 모르는 잔소리의 향연은 곧 타노스급 파괴력을 발휘한다. 결과는 뻔하다. 상사의 과분한 의욕과 지나친 담소에 부하직원의 멘탈은 와르르, 퍼어엉, 와장창. 이것은 수명을 줄이는 아주 탁월한 방법이다. 진짜다. 결코 내가 기러기 아빠인 상사에게 시달려봐서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아니 맞다. 젠장. (기러기 아빠는 진심 법적으로 금지시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웬 기러기 아빠 얘기냐 싶겠지만, 암튼 골자는 <롱디가 나빴다>는 거다.


그래요, 롱디. 이게 진짜로 할 게 못 된다. 물론 처음에는 애틋하다. 그렇게 처연하고 아련할 수가 없다. 한국 땅이 넓어봤자 얼마나 넓다고 아무리 멀어도 꼴랑 네댓 시간 거리에 있으면서도 세상 모든 그리움이 저희 것인 양 굴게 되더라.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은 백 프로 팩트다. 심지어는 심리학 이론서에도 이를 설명하는 용어가 있을 정도니. (*단순노출효과: 어떤 대상을 자주 볼수록 호감도가 높아지는 현상. 다시 말해 안 볼수록 호감도도 떨어진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연인들이 물리적 거리쯤이야 쉽사리 이겨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삶이 고달프면 이기고 말고가 어딨겠는가. 당장 오늘의 피로조차 못 이기는 마당에. 그러므로 가진 거라곤 시간뿐인 백수 한량이거나 할 줄 아는 건 노력뿐인 열정 만수르가 아닌 이상, 롱디는 대체로 파국행 특급열차고 이별행 총알택시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나의 경험상 그렇다는 것이다. 내 주변엔 잘만 롱디하는 커플들도 물론 있다. 나의 롱디가 망한 건 아마도 매우 높은 확률로 그와 나의 애착유형 탓이리라. 제법 심오한 얘기니 다음 기회로 넘기기로 한다.) 아무리 사랑을 가득 싣고 달린다 한들, 사람은 어깨가 무거우면 짐부터 내려놓게 되는 법이니까. 우주선도 비상사태에선 화물칸부터 떨어내고 가듯 말이다.


아무튼 기억하시라. 롱디의 꽃말은 롱타임노씨라는 걸.






그 남자네 집


삶에는 유독 짙은 순간들이 있다.* 색이든, 맛이든, 향이든. 짙은 기억은 잘 없어지지 않는다. 내게는 그와 함께 했던 8개월이 참으로 짙은 시간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어린 시절 함께 한 추억이 있었고, 오랜 기간 알아온 역사가 있었으며, 이제와서는 불가피하게 삶이 섞일 수밖에 없는 장소까지 있었으니까.


당시 응급의학과 2년 차 레지던트였던 그의 일상은 인간의 것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적절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 그는 미친 듯이 빽빽한 교대근무에 언제나 수면부족에 시달렸고, 대부분의 끼니 또한 몸에 가장 나쁘다는 인스턴트로 때웠으며, 심지어는 쉬는 날에도 어디선가 앰뷸런스 소리가 들려오면 반사적으로 발작을 일으키는 둥. 당최 누가 의사고 누가 환자인지 모를 만큼 열악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그의 집에서 홀로 보내곤 했다. 사실 집이라고 해 봤자 작은 주방과 욕실이 딸린 원룸이 전부였고, 그에 비해 그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너무도 길었다.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술을 홀짝이거나. 그마저도 재미가 없으면 청소, 빨래, 아님 설거지 따위를 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먼지 한 톨 없이 닦아놓은 바닥에 앉아 끔뻑끔뻑 졸다보면 어느새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했고, 창문 틈새로 서늘한 바람이 들이칠 즈음 그가 바쁜 걸음으로 귀가했다. 그는 잠든 나를 깨워 해가 진 거리로 데려나갔고, 우리는 적당한 식당을 찾아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그런 다음엔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아랫목에 나란히 앉은 채 티비를 보며 웃고 떠들고 도란도란 서로의 하루를 묻다가 잠에 들었다. 고 할 줄 알았죠.


세상 팔자에도 없는 우렁각시 놀이를 했겠습니까, 이 내가.


뭐, 앞부분까진 진짜였다. 뒷부분도 어느 정도는 진짜다. 다만 뉘앙스가 다를 뿐. 그때 대학원생이었던 나는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종종 그의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냈던 건 사실이다. 나의 대기시간에 비해 그의 집이 작았던 것도 사실,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던 것도 사실. 심지어는 청소, 빨래, 설거지를 해놓은 것도 놀랍게도 전부 사실인데,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무슨 무수리 코스프레 이딴 걸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매우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행한 게 맞다. 불행이자 다행히도 상당한 정리강박증을 앓고 있던 나에게 그의 자취방은 굉장한 도전과제로 다가왔으며, 결국에는 참다 참다 도저히 이건 사람이 살 곳이 못 된다는 판단을 내리고 그 집의 불량한 위생상태를 <처리>해 준 것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선량한 오지랖이랄까 순진한 정복욕이랄까 그게 화근이었다. 그때는 정말로 새까맣게 몰랐다. 앞으로 그놈의 집구석에서 어떤 진풍경이 펼쳐질 지. 어떤 그악스러운 물건이 튀어나와 내 정신을 가차없이 공격할 지. 평생 살면서 유령의 집, 헌티드 하우스, 고스트 맨션 따위에도 쫄지 않던 내가, 무려 남자친구네 집에서 인생 최대의 공포를 맞닥뜨리게 되다니. 인류의 미래를 앗아갈 거대악의 탄생이라도 목격한 심정. 여기가 내 관짝이다 생각하고 집째로 뚜껑 덮어 매장하고 싶은 심정. 아니면 차라리 벤자민 버튼이라도 눌러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싶은 심정. 그 정도로 이 에피소드는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든 희대의, 역대급, 최악의 사건으로 남아있다.


결국 나의 두 번째 연애는 그곳에서 시작하고 그곳에서 끝났다.

바로 총체적 난국이자 판도라의 상자였던, 그 남자네 집에서.


우리의 결별은 그것으로 족했다. (박완서, <그 남자네 집> 中)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고

맞수는 한지붕 아래에서 만난다.


시작은 탁상 귀퉁이에 붙어 있던 작은 포스트잇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세 번째 남자친구네 집 냉장고에 붙어있던 편지를 보고 한방에 훅 가게 된 결정적 계기다. 본디 그깟 편지 하나 보고 뒷목 잡을 만큼 약한 사람은 아니다. 체급은 후달려도 맷집으론 절대 안 딸리니까. 근데 이 새끼 덕에 알찬 트라우마가 생겨버렸다. 정식 병명은 <구여친흔적공포증>이다.) 적혀있는 내용인즉슨 '오빠를 위한 월남쌈 레시피'였다. 냉장고에 재료를 넣어뒀으니 꼭 해 먹으라는 말과 함께, 정성스럽게 그려놓은 요리 순서도까지. 귀여운 필체 속에 사랑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전여친이 써준 건가 보네. 나는 퍽 씁쓸했다. 아무래도 현남친의 집에서 그녀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이 마냥 기쁜 일은 아니니까.


근데 그건 애교 수준이었다. 그다음엔 침대 밑에서 귀걸이 한 짝을 발견했고, 화장실 선반에서 쓰다 만 파운데이션 샘플을 주웠다. 아무렇게나 탁상 위를 뒹굴던 머리끈부터, 액자 틈에 끼워놓은 폴라로이드 사진까지. 내가 모르는 추억을 머금은 것들이 발견될 땐 단순히 서글프기만 했다. 근데 생활밀착형 물건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하니 진심으로 미치겠더라. 아니 왜 안 치우냐고. 왜 안 버리냐고. (참고로 이것들은 내가 뒤지려고 작정하고 찾아낸 물건들이 아님을 밝힌다. 진짜 뒤지려고 작정해서 발견한 물건은 따로 있다.) 어느 순간부터는 레이더가 온통 그쪽으로 곤두서서 벽지 뒤 시멘트 속에 숨겨놓은 기념일 편지까지도 발견할 기세였다.


다정하기도 어찌나 다정한 여자를 만난 건지, 집구석 곳곳마다 그녀의 흔적이 없는 곳이 없었다. 뻑하면 튀어나오는 메모들과 삶의 흔적이 역력한 소지품이 발각될 때마다 나는 굉장한 속도로 노이로제에 빠져들었다. 이쯤 되면 걔랑 연애를 하는 건지 걔 전여친이랑 연애를 하는 건지 모를 판국이었다. 아주 세기의 사랑을 하셨던 모양인지, 나는 두 사람이 공유했던 모든 색깔의 감정을 다 보았다. 이 엄청난 TMI의 바닷속에서 나는 허우적대며 괴롭게 신음했다. 마치 집안에 숨겨진 이스터에그를 전부 찾아내지 못하면 영원히 여기서 못 나가는 저주에라도 걸린 기분이었다. 나는 비운의 팩맨처럼 온 집안을 샅샅이 들쑤시고 다니며 야금야금 그 여자의 흔적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버리고 버려도 영영 끝나지 않는 게임을 하면서.


남의 일기장 속에 갇힌 느낌이었다. 이 다음엔 뭐가 튀어나올까. 또 어떤 비밀이 강제로 드러날까. 신경쇠약에 시달리던 끝에 내 항마력도 바닥을 드러냈다. 궁지에 몰리니 사람이 이상한 짓을 하게 되더라. 이제는 굳이 열어보지도 않을 곳들까지 들쑤시기 시작한 것이다. 옷장 맨 안쪽이라든지, 서랍 깊숙한 곳이라든지. 분명히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었는데도 나는 아랑곳 않고 그곳을 침범했다. 명백히 내 잘못이 맞다. 그러나 그런 잘잘못을 따지기에는 이미 사태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화산이 터지고 만다. 간이 서랍장에서 나오지 말아야 할 게 나온 것이다. 정확히는 나한테만큼은 절대로 발각되지 말았어야 할 법한 물건이. 차마 글로 묘사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엄청나게 선정적이고 충격적으로 변태적인, 뭐 아무튼 내 취향은 완벽히 빗겨간... 한 줌짜리 여자 속옷 말이다. (이 한 줄을 쓰기까지 진짜로 힘들었다. 당최 키보드를 몇 번이나 빠갤 뻔 한 건 지 모르겠다.) 그걸 보는 순간 심장이 벌컹벌컹 뛰고 피가 거꾸로 솟구치더라. 왜냐면, 누가 봐도 이미 몇 번이고 입었던 티가 역력했기 때문에. 최소한 나한테 줄 선물은 아니었다는 얘기지. (줘도 안 입는다. 아니 못 입는다. 적어도 맨정신엔 죽어도 못 한다. 아 물론 취향은 존중한다. 그러나 이해와 공감은 아주 다른 문제니까.)


내가 아주 벌집을 쑤셨구나. X벌 진짜 X같네. 하는 생각 밖엔 안 들었다.


그의 지난 연애사가 속속들이 까발려지는 동안 (당연히 연애를 한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모럴도 없는 야만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갈등? 왜 없었겠는가. 그 앞에서 울어도 봤고 빌어도 봤다. 근데 소용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었다. 차라리 화를 냈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그때는 원망보다 슬픔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래서 화조차 제대로 낼 수가 없더라. 나를 만나기 위해 무려 12년을 기다렸다고 말했으면서. 나를 못 잊어 전여친과도 헤어진 거라고 말했으면서. 근데 이렇게 앞뒤가 다르고 언행이 다르면 나는 어떡하라고. 더 이상 누구를 믿으라고. 너는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안 긁은 복권인 줄 알았는데. 근데 그냥 긁어 부스럼이었구나.


언젠가 진지하게 남자사람친구에게 물은 적이 있다. 전여친의 흔적을 치우지 않는 이유가 대체 뭐냐고. 근데 대부분의 남자들이 아마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를 것이라더라. (이거 실화에요?) 아니 여보세요 선생님들. 이건 정말 예의가 아니다. 전여친이든 현여친이든, 양쪽 모두에게 말이다. 그러니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면 명심합시다. 추억은 남기되, 물건은 버리자.













*삶에 짙은 순간들이 있다: 정선우 작가님의 <낙원의 이론>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했습니다. 제가 최근에 미쳐있는 판타지 소설입니다. 본 에세이와는 하등 상관없는 근미래 디스토피아 SF 로맨스물인데 정말 강추에요. 감히 <해리포터>와 어깨를 견줄 급의 엄청난 스케일과 작가님의 미쳐버린 필력에 무릎이 갈리고 오열파티를 하실 겁니다. 갑자기 뜬금포지만 암튼 판타지 좋아하신다면 완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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