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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또각 Oct 17. 2019

기막힌 연애담 7

사랑은 스릴, 쇼크, 서스펜스! 上





지난 편 이후로 사과시계를 샀다는 지인들이 제법 있었다. 뜻밖의 재능 발견이다. 직군을 영업 쪽으로 옮겨야 하나 일주일 내내 고심했다. 이처럼 본의 아니게 사람 마음을 흔들 줄 아는 내가, 왜 구남친들한테는 휘둘리기만 했던 것일까. 생각해 봤는데 처음부터 그들을 이겨먹을 생각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사랑하는 상대를 이겨서 당최 어디다 써먹는단 말인가.


연애는 게임도 아니고 전쟁도 아니다. 승자와 패자를 갈라야 하는 싸움이 아니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연애에는 성공도 실패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연애에 성공하면 결혼하고 연애에 실패하면 이별하는 거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결혼이든 이별이든 인생의 수많은 경험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고 결혼이 가벼운 행위라는 건 결코 아니다. 결혼은 당연히 무겁고도 어렵다. 무엇이든 법적 구속력이 있는 건 으레 그런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함부로 안 덤비니까.) 아무튼 골자는 '실패한 연애'란 실상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만큼은 나의 지론을 살짝 비껴가야만 할 것 같다. 왜냐면 나의 두 번째 연애는 그야말로 <폭망(Epic Fail)>이었으니까. 나는 나와의 싸움에서도 대참패를 하였고, 그와의 사랑에서도 대실패를 하였으며, 전리품으로 얻은 건 너덜너덜해진 정신과 내 피땀눈물로 써낸 박사논문 정도가 있겠다. (뭐 어쨌든 그 와중에도 학위를 땄으니 나도 참으로 난년이다.) 그 지독한 엔딩에 대한 설명을 돕기 위해, 잠시 그보다 한참 앞선 시점으로 건너 뛰도록 하겠다.





응답하라 2002


이 친구와의 첫 만남은 내가 열 세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무섭다는 초등학교 육학년. 초딩 중에서는 제일로 왕고라지만 인생 통짜로 놓고 보면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말랐을 시기다. 알만한 건 다 알면서도, 실은 똑바로 아는 게 한 개도 없는 그런 나이에 나는 그 애를 만났다. 우리는 같은 학년 같은 반이었고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 인지하고는 있었으나 딱히 별 관심은 없는 그 정도 사이였다. 얼굴은 밤톨만하고 수업시간마다 엎어져자며 허구헌 날 츤츤거리는 이름 예쁜 애. (어찌나 잠이 많은지 그 애 별명은 한결같이 '나무늘보'였다.) 딱 그 만큼의 인상만 남겨놓고 그 애는 어학연수를 떠났다.


2년 후 그 애가 미국에서 돌아왔다. 바로 <폭풍의 전학생>이 되어서 말이다. 그 애가 전학오던 날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 한다. 앞반 애 뒷반 애 할 것 없이 소문의 이방인을 보겠답시고 교실 복도에 벌떼처럼 달려들어 그를 구경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상태가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이였기 때문이다. 꼭 만화책에 나오는 남자애처럼 노란 머리칼에 적당히 그을린 피부. (심지어 알고보니 염색모도 아닌 자연모였다. 머리색이 원래 밝은 편인데 볕에서 하도 뛰어놀다보니 제대로 탈색이 된 사례였다.) 중학교 교복과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외모인데도 막상 입혀놓으니 이상하고 아름다운 불협화음을 내더라는 것이다.


제도권에 적당히 순종하는 척 언제든 일탈을 꿈꾸는 어린 맹수 같달까. 덕분에 그는 등장만으로도 전교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단숨에 일약 슈퍼스타로 뛰어올랐다. 다행히 능력치가 따라줬다. 머리는 원래 좋았고, 운동신경은 타고 났으며, 성격이 삐딱해서 더 재밌었다. 꼭 불량식품 같은 애였다. 성분은 별로 안 궁금해도 맛은 죽도록 궁금한 음식 말이다. 그 당시 나만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닌 모양이다. 아무튼 매 쉬는시간 그를 보러 오는 학우들이 교실 앞뒤로 한가득이었니... 내 맘 속엔 이미 작은 불씨가 피어올라 활활 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쯤되면 지겨우시겠지만 뭐 어쩌겠어요 제가 이렇게 생겨먹은 걸. 그에 대한 나의 정복욕이나 승부욕은 너무나 마땅하고 당연한 일이었다. 더욱이 이쯤되면 믿기지도 않으시겠지만 또 어쩌겠어요 제 인생이 우연으로 점철된 코미디인 걸. 인터넷소설 남주 뺨 치게 유명했던 그가 하필이면 전학을 온 반이 우리반이었고, 또 하필이면 배정받은 자리가 내 뒷자리였다. 이쯤 되면 우연 아니고 그냥 인연이라 치자.


모두가 중이병에 한 번쯤은 걸린다는 열다섯의 여름. 온 나라가 월드컵의 열기로 가득하고 전국민이 하나 되어 붉은악마를 자처했던 그 해. 한국이 이탈리아를 제끼고 숱한 월드컵 베이비의 탄생을 예고했던 바로 그 해. 15세의 나와 그는 앞뒤로 15센티 간격을 두고 앉아서는, 그로부터 15년 후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도 못한 채 썸을 타기 시작했다. 2002년의 여름만큼 뜨거운 썸을 말이다.





인생의 회전목마


썸은 뜨거웠을지 몰라도 정작 연애는 미적지근했다. 당시 유행하던 투투(사귄 지 22일 되는 날이다. 요새도 이런 거 챙기는지 모르겠다. 참말로 별 게 다 재미졌던 때다.)가 지나자마자 내가 그를 차버렸기 때문이다. 투투가 되던 날, 그는 나에게 물고기 모양의 은목걸이를 선물했는데 그가 나에게 목걸이를 채워주는 모습이 또 핫이슈가 되어 전교에 생중계가 되었더라는 기억이 있다. (요즘 같은 시대였으면 유튜브에 영원한 흑역사로 박제되어 평생 이불킥 했을지도 모른다. 끔찍하다.) 별 꼴값을 다 떨어놓고도 나는 그를 찰 수 밖에 없었다. 결정적으로는 성격 때문이었다.


성격 차이. 주로 연예인들이 속사정을 말하긴 껄끄럽고 겉사정을 만들자니 머리 아플 때 써먹는 결별 사유다. 나 역시 이별을 고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그와의 성격 차이였다. 다만 연예인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진짜로> 성격 차이가 심했다는 점이다. 나의 독자님들은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셨겠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외향적이고 전투적인 하이퍼 텐션의 조증 인간이다. 그런데 그는 뼛속까지가 내성적이고 사색적인 마이너 텐션의 울증 인간이었다. 사실 이 어마어마한 성격 차이 때문에 그와 나는 15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후에도 똑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정말이지 사람은 안 변하더라. 그 사실이 나를 너무나 슬프게 한다.


아무튼 그때의 우리는 어렸다. 그래서인지 그는 참으로 치기 어리게 나를 사랑해주었다. 막말로 우리 부모님도 나에 대한 애정을 그렇게까지 표현해주시지는 않는다. 근데 그는 언제나 한결같이, 정말 미친듯이, 어쩌면 비현실적으로, 그렇게 나를 좋아했다. 열다섯의 가을이, 그리고 겨울이, 그리고 열여섯의 봄이 올 때 까지도. 그렇게 우리가 열일곱, 열여덟이 되고, 스무살이 훌쩍 넘을 때까지도.


아마도 내가 태어나서 남에게 그만큼의 사랑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며, 다시는 누군가에게 그만큼의 사랑은 받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에 대한 자기비하나 내 미래의 연인에 대한 과소평가는 아니다. 오히려 상황에 대한 철저한 객관화다. 왜냐면 그가 준 사랑은 애초부터 정상이 아니었으니까. 이게 드라마라면 진정한 로맨스였겠지만 이건 현실이기에 사실은 파토스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그런 종류의 사랑은 받고 싶지도 주고 싶지도 않다. 양쪽 모두 불행해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나는 배가 부를 정도의 사랑을 얻어먹고서도 요지부동 꿈쩍 않는 잔인한 사람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내 주변을 배회했고 언제나 나의 곁을 맴돌았다. 심지어는 내가 연재 초반에 언급했던 나의 첫사랑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가 사랑하고 실연하고 좌절하고 아파하던 모든 순간에 나를 지켜보며 함께 울어주었다. 그에게 나는 북두칠성이었고 나에게 그는 해바라기였다.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견우와 직녀라든가,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든가, 그런 관계였다면 이야기가 훨씬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중간에 우리를 가로막는 장애물만 치워버리면 되니까. 그러나 그와 나 사이에 자리한 벽은 그런 외부적인 요소가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둘 다 특목고에 가게 됐지만 그는 이과였고 나는 문과였다. 그때부터는 내 베프가 소식통이 되어주었다. 그와도 베프나 마찬가지였던 그녀에 따르면 그가 나를 무척이나 그리워했더란다. (위에서는 생략했지만 그가 전학왔을 당시 내 짝꿍이 바로 내 베프였다. 그래서 우리 셋은 자연히 친해질 수 밖에 없었다.) 차마 나에게 직접 연락하지는 못하고 꾸준히 내 소식을 물어보던 그와 직접적으로 연락이 닿은 것은 대학에 입학한 후였다.


그는 멀리 지방에 있는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그에게는 새로운 여자친구가 생겼고, 새로운 취미활동도 생겼다. 내면의 우울한 기질에도 불구하고 달리 아웃도어 스포츠를 제법 즐겼던 그에게 캠퍼스라이프는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듯 보였다. 그에 대한 일말의 죄의식과 소정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던 나로서는 한시름 놓게 되는 계기였던 게 분명하다. 다행히 한평생 나만 기다리지는 않겠구나 하는 오만한 생각과, 이제는 드디어 친구로 지낼 수 있겠구나 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인간의 심리가 그렇게 무 자르듯 단순한 게 아니라는 걸 전공수업을 통해 귀가 닳도록 배우던 중이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어렸고 어리석었다. 그래서 3학년이 끝나가던 어느날, 아주 안일한 마음으로 그에게 연락했다. 나에게도 드디어 남자친구가 생겼어. 내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남자야. 어차피 우린 이제 공식적으로 친구였고, 그 역시 나에게 여자친구 얘기를 가끔씩 했던 터라 나는 그냥 속편하게 떠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내 말에 그가 아무 대답도 않았다. 한참 후에 날아온 답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기다리면 나한테도 기회가 있을 줄 알았다고. 그런데 끝까지 너는 그 한 번을 나에게 안 준다고.


그때까지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가 나 몰래 여전히 나를 짝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홀로 지독한 열병을 앓던 그는 내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이유를 빌미로 영영 나와의 연락을 끊게 된다. 그리고 아무 잘못도 없는 내 베프와의 연락까지도 말이다. 그간 나에게 감정적 홍수만 일으켰던 그는 결국 메마른 가뭄이 되어 나의 곁을 떠났다. 내게 일방적으로 사랑을 퍼붓던 때처럼 똑같이 일방적으로 그 사랑을 단번에 거두며.


평생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그에게 연락이 온 것은 무려 5년이 지난 어느 가을날이었다. 내가 5년이나 만났던 첫 번째 남자친구에게 처참한 이별통보를 받고 난 바로 직후였다. 그때 나는 막 헤어졌던 그 남자의 영향으로 5년 내내 아무런 소셜미디어도 하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어떻게 알았는지 그가 기다렸다는 듯 연락을 해 온 것이다. 여전히 우연이라면 우연이겠고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다. 아무튼 전국적으로 <응답하라 1988> 열풍이 불고 있던 그 시점, 그가 내 맘 속에 잠들어있던 삐삐를 울렸다. 그리하여 나는 즉각 대답했다. 나 여기 있다고. 여기 잘 지내고 있었다고.


그렇게 우리는 재회했다.

긴긴 시간을 돌고 돌아 비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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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분량이 조금 짧습니다. 요새 업무에 치이느라 빠듯하게 연재일만 맞추고 있네요.

요번 편만 놓고 보면 무척 감상적이어 보이지만... 사실 그 뒤부턴 막장일거란 거 이제는 다들 아시죠?

주말에 열심히 끼적이고 다음 편은 좀 더 길게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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