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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g Nov 22. 2019

돈이 많아도 지금 하는 일 계속하실 건가요?

어느 반찬가게 주방보조의 사명감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서 미술팀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남양주에는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는 스튜디오들이 있다. 그곳에서 일하시는 스텝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우리 중에 돈 많으면 이 일 계속할 사람 아무도 없다."

내가 참여한 뮤직비디오는 2박 3일 동안 진행되었고 그 3일 동안 나는 딱 두 시간을 잤다. 그 외에는 계속해서 뛰어다니고 이일 저일 구멍들을 메꾸며 촬영을 계속해갔다. 그래도 광고 촬영 필드보다는 뮤직비디오 촬영이 훨씬 일이 편한 거라고 했다. 광고 촬영계는 한 달이면 한 달 두 달이면 두 달 내내 집에도 못 들어가고 잠도 거의 못 자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얼마 못 버티고 도망가버리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사직서도 아니고 말 그대로 무단결근하고 연락을 두절한 체 도망을 가버리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뮤직비디오계는 양반이라고 했다.

이틀 동안 잠을 못 자니 땅이 나를 향해 올라왔다 들어갔다 하는 것처럼 보였다. 진지해야 될 순간에 웃음이 피식피식 나기도 하고 눈앞이 희미해지기도 했다.

촬영이 모두 끝나고 청소까지 마치니 혼이 다 빠져나가 버려서 집에 갈 힘조차 없었는데. 같이 일하던 아트팀 멤버들은 술을 마시러 간다고 했다. 술 힘으로 버티는 게 습관이 되었다고 했다.


해리포터 중에서
노동과 돈의 상관관계는   없는게 현실이지만, 돈이 많아도 하고 싶은 일은 있을  있지 않은가?


직업인의 사명감을 의사 같은 특수 직종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비롯해 정식 직장까지 다양한 종류의 직업군을 경험했는데, 매번 사명감을 찾는 것에는 재주가 있었던 것 같다. 심지어는 지금 반찬가게 주방보조와 신메뉴 개발을 하면서도 대의를 위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반찬가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통적인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유아식 구매비율이 전체의 80프로를 넘는다. 그러니까 아기 반찬을 만드는 곳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전업주부라고 하더라도 아기 반찬을 따로 만드는 일은 보통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다. 맞벌이 부부라면 더욱이 그렇다. 전업주부라면 아기 반찬만, 맞벌이 부부라면 가족들 먹거리까지 구매하는 것이 대부분인 것 같다.

가정에서 요리는 시간과 정성 그리고 기술까지 요하는 고강도의 노동이지만, 당연하게 여성의 역할로 아직도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반찬가게를 이용하는 손님들도 그 사실을 주변인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아 한다. 본인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고 평가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SNS로 고객들과 소통하면서 반찬을 사 먹는 것이 더 이상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고 전달한다. 가사노동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일이며, 심지어는 육아의 일부분인 이 유아식 만들기는 공동 육아의 차원에서 사회도 함께 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이다. 반찬가게는 영리 목적이지만 현재의 고객 필요도로 본다면 어린이집처럼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까지 생각한다.


또한 우리 반찬가게는 아침에 가장 신선한 재료를 선별해 가져와서 어떠한 화학조미료도 사용하지 않고 만들어 낸다. 조미료 대신 매일 아침 정성 들여 뽑아낸 육수를 베이스로 사용하기 때문에 감칠맛은 있되 자극적이지 않다. 국산 재료들을 기본으로 사용하고 단가가 정 맞춰지지 않는 재료들은 수입 재료를 사용한다. 고객이기 전에 우리 가족, 이웃, 이웃의 아기들이 먹는 음식이다. 수익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첫 번째 가치는 아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반찬가게는 오늘 만들어서 다 팔리지 않은 음식은 내일 다시 팔지 않고 모두 '푸드뱅크'를 통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기부한다. 신선하게 만들어서 바로 밀봉해 냉장 보관하는 음식들이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적어도 3일은 되는 음식들이지만 그날 판매되지 않은 음식은 다음날 팔지 않는다. 대신 이 멀쩡한 음식들이 또 다른 이웃들에게 도움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이렇게 작은 일에도 가치를 찾고 선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반찬가게 주방보조일도 보람찬 일로 다가올 수 있다. 현상유지가 최고라는 말이 아니다. 일에만 집중하면 차라리 괴로움이 적다. 일을 안 할 때 괴롭다. 이 회사가 진짜 나한테 필요한 걸까 오만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부디 사명감을 찾자. 초등학교 때 무엇이 왜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라고 이야기했듯이. 지금 하는 일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아니라면 다시 시작하는 일은 그러하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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