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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천동잠실러 May 20. 2024

결혼하고 애를 키우니 알게 되는 것들

부부의 밑바닥, 부모의 밑바닥, 그리고 나의 밑바닥

2024. 5. 20. (월)


새벽 2시가 다 되어서야 아이가 잠에 들었다.


자정쯤부터 계속 뒤척이며 우는 아이를 안고 달래다 간신히 내려놓고 보니 새벽 2시. 이제 4시간쯤 후에 출근을 해야 하는데, 하도 아이와 씨름을 하느라 서로 땀범벅이고, 막상 아이를 내려놓고 나니 진은 다 빠졌는데 잠이 깨버려 멍하니 앉아 있다 쓰는 글이다.


아마 지난주에 한 단유 탓일 것이다.


품에 안겨 자면서도 계속 '엄마'를 외치고, 이미 안겨 있으면서도 안아달라고 손을 뻗고 발버둥을 치는 것을 보면. 첫째 때는 새벽에 아이가 계속 울면 '왜 아무 이유 없이 우니'라며 답답해하곤 했는데, 겨우 두 번째이긴 해도 이젠 그러려니 하고 그 시간을 견뎌내곤 한다. 그러다 보면 그 끝에 어렴풋이 아이가 왜 울었는지, 아이가 왜 다시 곤히 잠이 들었는지 알게 된다.


아내는 이미 지난주 내내 이 일을 겪었을 것이다.


내가 회사에 간다는 이유로, 아내는 아이가 울면 졸린 눈을 비비며 둘러업고 거실로 나왔을 것이고, 그래서 난 지난 한 주 내내 둘째가 밤마다 이리 몸부림을 치는 줄을 몰랐다. 아침에 퀭하게 나를 반기는 아내에게 '잘 잤냐'라고 물어보면 항상 '찰떡이가 조금 뒤척였다'라고 했다. 그러다 오늘, 찰떡이가 어쩌다 내 옆에서 잠이 든 덕에, 찰떡이가 지난 한 주간 결코 '조금' 뒤척인 것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집에서 두 아이와 매일 씨름을 하는 아내도, 새벽에 나가 일하고 저녁이나 밤에 돌아오는 나도, 누구 하나 여유롭거나 피곤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근 후 만난 서로에게 '네가 고생했다'라고 웃으며 말해준다는 것이, 동화책에 당연스레 그려져 있는 가족의 한 장면이, 이토록 힘들면서 당연하지 않은 것임을 몰랐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상상했던 것보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힘든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밑바닥을 본다.


방금 전에도 그랬다. 둘째 찰떡이가 갑자기 울어대는 바람에 한 2시간 자다 깬 채로 아이를 안고 나왔는데, 한 시간을 넘게 잠들었다 울었다를 반복하니 나중엔 짜증이 났다. '왜 이러는 거야... 제발 좀 자자'하며 이리 안았다 저리 안았다 자세를 바꾸니 아이가 더 울고, 주말 내내 약속에 상갓집에 일정이 많았어서 피곤한 나도 같이 울고 싶은 지경이었다. 그러다 눈도 못 뜨고 '엄마'를 연신 외치는 찰떡이를 보고 괜스레 마음이 짠해져서 '괜찮아...'라며 등을 살며시 쓰다듬어주니, 거짓말처럼 진정된 채로 잠이 들었다.


아빠 품에 한참을 안겨있고 나서야 진정된 둘째 찰떡이


성숙한 사람끼리 애를 낳는 것이 아니다.


20대 때는'나보다 성숙한 사람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래야 나도 그 사람에게 배우고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맞고 틀린 것이 어디 있겠냐만은, 막상 20대 때 만난 아내와 결혼을 하고 함께 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조금씩 저 말이 실제와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미숙할 때 서로를 좋아해 결혼을 했고, 서로 사랑하며 살다 생긴 두 아이를 키우며 그제야 조금씩 성숙해져 가고 있다. '행복한 가정'에서의 '행복'은 동화책의 한 장면이 아니라, 우리가 오늘처럼 서로를 배려하며 한숨 덜 자고, 한숨 한 모금 더 쉬며 희생하는 그 과정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힘든 일이었지만, 그 어렵고 힘든 만큼 아내와 나는 성숙해지며 서로를 조금씩 더 배려해나가고 있다.


부부가 되며, 그리고 부모가 되며 넓고 깊어지는 밑바닥


가끔 두 아이가 함께 낮잠이나 밤잠에 들면, 아내와 멍을 때리다 낄낄 거리며 하는 이야기가 있다. 결혼하기 전, 그리고 신혼 때는 각자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줄 알았는데, 애를 키우며 보니 솔로/신혼 때의 그 '독립적인' 힘듦이 너무 그립다고. 그 당시 우리에게는 회사에서의 이런저런 사건들이 너무나 버겁고 힘든 일들이었는데, 불과 4년 지난 지금 다시 돌아보니 그마저도 그리운 순간들이었다고. 마치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처럼 '아니야. 지금 더 즐겨야 해! 화장실 문 닫고 가고, 혼자 커피 마실 수 있고, 둘이 여행도 다닐 수 있잖아! 아무리 힘들어도 주말에는 꼭 둘이 여기저기 여행도 다녀!'라고 외치고 싶다며 웃곤 한다.


맨날 카페에서 저딴 사진이나 찍을 때는 알 수 없던 것들 (너희들은 4년 후에 아무 데도 못 가게 된다)


그렇게 돌아보면,  짧디 짧은 4년 동안 결혼도 하고 두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우리 부부는 그만큼 성장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밑바닥도 보고, 서로의 밑바닥도 보며 많이 울고 웃었다. 그리고 이제 사랑스러운 두 아이가 우리 부부의 밑바닥을 심해와 같이 넓고 깊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어찌 행복하지 않을 있겠는가. 앞으로의 나날들이 너무 기대가 된다.


아. 어서 자야겠다. 지금 누워도 3시간 정도 더 자고 왕복 3시간 통근길에 몸을 실어야 한다. 내일 아침이면 퀭하게 현관에 선 나를 '푹 자고 일어나 기분 좋은' 둘째 찰떡이의 미소가 반겨줄 테니 말이다. ^^ (ㅎ)

 

사실 찰떡이도 단유 후에 깊이 자고 늦게 일어나서 배웅 안 해줌 (꿀떡이는 안 해준 지 오래)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제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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