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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키우는 중입니다.

천천히 커라. 천천히

by 봉천동잠실러

2025. 10. 26. (일)


셋째 태어난 지 한 달 남짓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매일이 빨리감기 중인 테이프 같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첫째와 둘째 먹이고 입혀 등원시키고, 이후 신생아 육아와 집안일을 하다 보면 어느덧 하원 시간이 된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면 까만 천장을 보고 누워 잠에 드는 나를 발견한다. 하원 후 '마셔야지' 생각만 했던 커피가 현관에서 외롭게 식어가듯, 내 눈꺼풀도 무겁게 내려앉곤 하는 것이다.


유치원 가방, 어린이집 가방 그리고 기저귀 갈이대가 공존하는 세상이라니.


상상도 해본 적 없다.


자유를 원했다면 세 번째로 오면 안되지



"계획...이세요?"


지난 1년 간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셋째는 계획이세요?"인 것 같다.


첫째부터 셋째가 계획이라도 한 듯 2년 터울로 나왔으니 궁금할 만도 하다. 놀이터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봐서 이제는 자동으로 대답이 나온다.


결론부터 말하면 '셋째를 낳겠다'라고 계획한 적이 없다. 애가 생기는 것이 계획한다고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자세한 내용은 반년 전에 쓴 아래 글 참고).




천천히 커라... 천천히


셋째 육아. 앞선 두 번의 신생아 육아와 다른 점이 있긴 하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천천히 커라.'


첫째 때는 두려움이 컸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아이를 데려오던 날, 그 조그마한 아이를 침대에 눕혀 놓고 아내와 느꼈던 막막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라는 압박감이 너무 커서, 분명 예뻐하면서도 '아가야 빨리 커라' 주문을 외우곤 했다.


둘째 때는 미안함이 컸다. 갑작스러운 동생의 등장에 놀란 첫째의 퇴행을 보며 마음이 주저앉았다. 첫째 눈치를 보면서도 동시에 둘째에게도 미안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할 것이 아닌데, 시간이 지나면 다 제자리로 돌아오고 자연스레 가족이 되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래서 그때도 '빨리 커라'는 주문을 외웠다.


그런데 셋째 때는 두려움이나 미안함이 없다. 앞선 두 번의 신생아 육아를 겪으며 이제는 크게 두려울 게 없어졌달까? 육아용품들도 출산 후에 준비하기 시작했고, 없으면 또 없는 대로 괜찮다는 것을 안다. 무엇보다 첫째와 둘째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리고 설령 퇴행이 있어도 '괜찮다'는 것을 안다. 막연한 두려움도 없고, 끝도 없는 미안함도 없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없는 것이다.


울어도 두렵지 않아. 잘 울어야 잘 큰다.


그래서인지 하루하루가 아쉽다. 셋째 꼭꼭이는 엄마 뱃속에서도 우량아였고 병원, 산후조리원에서도 우량아였으며 집에 와서도 우량아라서 벌써 오동통 너구리가 다 되었는데, 매일 아침 더 통통해진 것을 보면 그게 그렇게 아쉽다. 매일 아침 안았을 때 뭔가 묵직해진 느낌이면 "야.... 천천히 커라 천천히..."라고 농담을 하곤 하는데,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꼭꼭이는 아주 빠르게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오동통 다리. 한 달도 안 되어 5kg를 넘은 꼭꼭이 (Feat. 모유 파워)


그 아쉬움을 아기 꼬순내(?)를 킁킁거리며 달래고 있다.


셋째는 사랑이라던데, 직접 경험해 보니 맞는 말이다.


셋째는 사랑이다. 킁킁킁


하루종일 꼬순내 킁킁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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