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자 아빠가 되어 바라보는 아름다울 미(美)
2025. 11. 7. (금)
오늘 아침, 차를 타고 길을 지나가다 횡단보도 앞에 선 한 여성분을 봤다. 통이 넓은 운동복을 입은 채로 유모차를 끌고 계셨는데, 먼 산을 보며 걸어가다 아이가 칭얼대면 유모차에 걸린 장바구니에서 과자를 하나씩 꺼내 물려주기를 반복했다. 일상에서 흔히 보던 장면이었는데 문득 아내가 생각났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밤늦게까지 야근하던 워커홀릭 아내도, 세 아이를 낳으며 지난 5년 간 저런 일상을 지냈겠구나 싶었다.
요즘 아내가 듣는 온라인 강의가 있는데, 얼마 전 강사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 "남편들이요. 회사 가면 어떻습니까? 젊고, 예쁘고, 화려하게 꾸민 아름다운 여직원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우린 어떻습니까? 음식 묻은 티셔츠에... (중략)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슨 말인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강의 주제가 가정에 대한 것이니 뭐 '우리도 노력하자'는 취지인 듯했다.
나이가 어린것과 외모를 꾸미는 것은 팩트이자 개인의 의지이고, 예쁘다는 것은 각기 다른 기준이 적용되니 굳이 판단하지 않더라도,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다투고 싶은 의지가 생겼다. 나의 아내도 결혼 전에 젊고, 예쁘고, 매일 화장하며 거리를 활보하던 직장인이었다. 내 눈에 여전히 예쁘지만, 지금은 애 셋을 낳으면서 이전보다 나이가 들었고, 화장은커녕 옷에 묻은 음식도 닦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실에 앉아 아이를 옆에 눕힌 채 야끼소바를 먹고 있는 아내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아내는 내게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 나 또한 결혼 전에는 주변에서 말하는 것과 언론• 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떤 연예인의 외모가 대세이고, 누구는 허리가 몇 인치이고 얼굴은 얼마나 작고 등등. 지금 돌아보면,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 보고 고민해 볼 개인적인 경험이 없으니 외부의 말과 의견에 더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러나 결혼 후 비로소 아름다움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이 생기기 시작했다. 바다 앞에서의 떨리는 프러포즈, 정신없었던 결혼식, 매번 마음 졸였던 아내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현재진행형인 육아까지. 결혼생활은 숨 쉴 틈 없이 치열했다.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안에서 수많은 감정들이 오고 갔으며, 또 그 감정들 안에서 아내와 나는 조화와 균형을 지키려 부단히 노력했다. 수십 년 간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던 아내와 내가 '우리'가 되어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그 무엇보다 소중했다. 그 시간들은 아내와 나, 오롯이 우리 둘 만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둘 외에 누가 그 과정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을까?
아름다움이란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국립국어원).
강사님 말처럼 우리 회사에도 예쁘게 화장한 채 출근하는 젊은 여직원들이 많다. 하지만 민낯으로 운동복을 입은 채 거실에서 야끼우동을 먹고 있는 아내가 내게 더 아름답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점점 더 아름다운 존재가 될 것이다. 세 아이를 함께 키우며 우리는 앞으로도 수많은 일들을 겪을 것이고, 그 안에서 '함께'라는 이름의 시간과 추억을 첩첩 쌓아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5년 전보다 지금, 그리고 지금보다 5년 후 아내와 나는 더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자연스러워져' 갈 것이다. 그리고 그 자연스러움은 다른 사람이 아무리 어려도, 아무리 멋진 화장을 해도 넘어설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는 아내가 가장 아름답다. 앞으로도 그렇다.
Reference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https://opendict.korean.go.kr/dictionary/view?sense_no=552994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