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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Jul 21. 2024

귀여우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요시타케 신스케 <오늘도 신경 쓰고 말았습니다> 책 리뷰






1. 인과를 따지지 말자. 창작 노트다.

요시타케 신스케의 책은 항상 사고 나면 돈이 아깝습니다. 살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에 다 읽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꾸 사게 됩니다. 몇 가지 놓치기 어려운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 <오늘도 신경 쓰고 말았습니다>는 뭔가 새로운 스토리가 있을 것 같지만, 가장 중요한 "창작 노트"라는 단어를 캐치했어야 합니다.


창작 노트라 그야말로 아이디어 스케치들이 아무 인과 없이 쭉 배열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냥 한 컷 한 컷 별도의 그림들이 모여 있는 그림 단품 모음집 같은 책입니다. 하나의 책으로 완성도를 논하자면 완전 꽝입니다. 장난하냐는 말이 목구멍 너머 튀어나올 뻔했습니다. 이걸 하나의 스토리나 통일성 있는 책으로 이해하고 읽다 보면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 책을 사면 인과는 절대로 따지지 맙시다. 하나하나 한 페이지 안에서도 위와 아래 그림을 개별로 취급합시다. 가끔 한 페이지 안에서 위아래 그림이 연결되는 경우도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2. 그래도 사볼 만하다. 그림이 귀여우니까.

인간적으로 요시타케 신스케의 "빠"거나 초극성 팬이거나 혹은 이 양반의 책을 모조리 사 모으고 있는 분이 아니라면 여러분에게는 정중히 사지 말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냥 서점에 서서 10분이면 다 읽.. 아니 다 볼 수 있는 분량입니다. 내용은 어차피 없으니까 파악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고요.


책 소개를 보니 저자를 '누구보다 날카롭게 우리의 마음을 파고드는 사람'이라고 평가해 두었습니다. 그러면서 믿고 보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습작 노트를 들여다보는 내밀한 재미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내밀한 재미가 1도 없었습니다. 정말 내용상의 재미만으로 평가하자면 일 평생 읽은 그 어떤 책보다 딱히 내용상의 재미는 없었던 탑 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사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림 자체가 너무 귀엽습니다. 원래 살다 보면 개뿔 아무 내용도 없어도 귀여우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상황이 은근 종종 있지 않습니까?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입니다. 여러 가지 욕할 만한 건덕지가 상당히 많은데 귀여운 거 하나로 모든 것이 용서되는 그런 책입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출판사도 미쳤다고 이런 책을 내겠습니까?






3. 출판사, 역발상의 기개를 칭찬한다.

이 책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김영사에서 출간했습니다. 김영사는 기개 넘치게 졸라 두꺼운 책도 막 내버리는 출판사입니다. 한때 도서정가제가 되기 이전에 출판 단지 김영사 건물 2층에서 반값 리퍼브 도서를 사 재끼던 아름다운 기억을 바탕으로 좋은 이미지가 남아 있는 출판사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김영사에게 어떤 시각으로는 책 같지도 않은 이런 책을 호방하게 출간을 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출판사 입장에서는 이 그림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다 보면 그림들 사이에 녹아 있는 작가의 해맑은 유머와 재치, 위로 뭐 이런 것들을 느껴주기 바랐겠지만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으른 인 저는 그런 것 따위 조금도 못 느꼈습니다. 그러니 제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 책이 정말 완성된 한 권의 책이라고 하기에는 하자가 많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저는 그저 제가 마음에 문제가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이 책은 유일한 원 포인트! 그냥 미친 듯이 귀여운 거 하나로 우직하게 끝까지 밀어붙이는 책입니다. 그만큼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까지 도무지 뭔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던 그런 책이란 말입니다. 이런 그림들로 책을 한 권 뚝딱 만들어낸 저자와 출판사는 얼마나 귀여움의 힘을 믿었다는 것입니까? 대단한 일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림이 정말 귀엽습니다. 내용을 논하기 어려울 만큼 귀엽습니다. 뭔가 한 가지라도 특출하면 모든 것이 다 용서된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어 저를 해탈로 이끄는 놀라운 책입니다.


심지어 이 책은 저와 노 여사가 함께 고른 책입니다. 책을 굳이 굳이 구매해서 데려온 이유는 그림 그리기 좋아하고 이야기 만들기도 좋아하는 둘째가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 아빠와 함께 살면서 후줄근한 추리링을 입고 이런 느낌의 그림을 끄적거리며 살았으면 하는 바램을 담아 선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먹고살기 힘들고 피곤한 세상인데 부모가 구박만 안 하면 그런 삶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산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이유는 이렇게라도 변명을 늘어놓지 않으면 이 책을 구매해버린 저 자신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살기 어려우니 이런 등신 같은 짓을 하면서 오히려 뭔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아이러니가 통하는 그런 책인 것입니다. 호방하게 사재끼는 낭만을 느끼게 해준 고마운 책입니다. 여러분도 등신 짓거리의 팔딱임을 느끼고 싶으시다면 한 번 사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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