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 <스타벅스 일기> 책 리뷰
1. 이외의 인물에게서 듣는 스타벅스 이야기
환갑이 다 되어가는 슨생님이 전하는 스타벅스 이야기라고 하면 평범하지 않게 다가옵니다. 물론 요즘은 카페도 어르신들 비중이 엄청 높아져서 으르신 적응이 다 끝난 상황이기는 합니다. 제가 근무하는 지역인 사당만 해도 교통의 요지라 그런가 카페에 어르신들이 단체로 바글바글한 광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극 내향성의 잡순이라고 주장하는 번역가 슨생의 스타벅스 일기는 흔히 만나기 어렵습니다.
스타벅스에 얽힌 이야기는 솔직히 흔하디 흔하디 흔하디 흔해 관심이 가기보다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만도 합니다. 스타벅스서 일어나는 일이 특별할 것이 있겠습니까? 누구의 목소리와 시각으로 들려주는가가 특별함을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변수입니다. 그런데 저자가 권남희 슨생님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냥 읽어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냥 막 미친 듯이 재미있거나 유익하지는 않아도 적어도 쿡쿡 웃을 수 있는 소소한 재미 이상은 무조건 보장이라는 기대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 기대는 충분히 넘치게 현실이 되었습니다.
상황 자체가 재미있는 것이 권남희 선생이 커피를 못 드신다고 합니다. 커피를 못 마시는 분이 전문 커피 매장에 매일 출근도장을 찍으며 전해주는 이야기라는 컨셉이 재미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일매일 드시는 음료가 바뀌는데 이 와중에 스타벅스 덕후들이 주로 하는 일들을 따라 하며 스벅 문화에 익숙해져가는 모습이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아 즐겁습니다. 뭔가 조마조마하며 내 일처럼 전해 듣는 맛이 아주 찰진 이야기입니다.
반려견을 잃은 슬픔에 두문불출하다가 이러다 큰일 나겠다는 생각에 세상으로 나선 곳이 스타벅스였다는 것 자체가 신기합니다. 그렇게 만난 스타벅스 이야기는 사랑하는 딸과의 상호작용, 간간히 등장하는 여행 이야기 등이 더해져 의외의 풍성한 이야기가 됩니다. 일상의 익숙함 속에 간헐적 신선함이 함께하는 맛깔나는 이야기입니다.
2. 왜 권남희 선생이 특별한가?
이분 글에 본인은 그저 일개 번역가일 뿐이라고 계속 이야기하시는데, 사실 어지간한 독자라면 이분을 모를 수 없을 만큼 유명하신 분이십니다. 번역한 책만 대충 잡아도 300여 권에 달합니다. 32년을 일하셨으니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이 안되는 오래된 책까지 더하면 훨씬 더 많은 작품을 번역하셨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베테랑 오브 베테랑이십니다.
하루키 센세를 비롯해 무라카미 류라든가 마스다 미리, 요시다 슈이치, 미우라 시온, 온다 리쿠, 기시 유스케 등 일본 문학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읽어봤을만한 수많은 책들이 권남희 선생님의 손을 거쳐갔습니다. 김난주 선생님과 함께 일본 문학 번역하면 바로 떠오르는 분들 중 한 분입니다. 그렇기에 오래전부터 책을 읽으면서 봐왔던 성함이라 어떻게 생겼는지 본적도 없지만 내재적 친근감이 넘치는 인물인 것입니다.
뭔가 혼자 익숙해서 마치 친한 사람 같은 느낌이 드는 분을 번역 문장으로만 만나다가 직접 이 분의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즐거운 것이죠. 물론 그렇게 좋으면 팬으로 만나기도 하고 다른 책도 직접 읽어보면 되는 거 아니냐라는 의문이 생기실 수도 있지만 저의 관심과 애정이라는 것은 그 정도 강도나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느슨한 호감만 있는 것이지 뭔가 행동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책을 발견했으니 한 김에 읽어보며 친한 척을 해 본다 이 정도인 것입니다.
되지도 않는 개인적인 호감 같은 것을 책 리뷰에 쓰는 이유는 이 책의 내용을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없기도 하고, 저처럼 그저 반가움에 이 책을 집어 들고 읽어보실 분들의 비중이 꽤 높을 것으로 예상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스타벅스에서 일하면서 쓴 일상 에세이가 뭐 그리 관심을 끓일 이 있겠습니까? 저자에 대한 관심이 책을 읽게 되는 주요 요인이겠지요.
이 분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는 또 한 가지는 자기 분야의 전문가이자 실력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 스스로 이 분이 번역한 책을 읽으면서 문장에 불편함을 느낀 기억이 없고, 편하고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어떤 리뷰에서도 번역이 불편했다거나 번역 문장을 지적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번역이 잘 되었다는 이야기일 텐데, 이 양반이 스타벅스에서 번역을 하는 이야기는 천상 동네 아주머니 같습니다. 작업물은 철저하고 프로페셔널한데 그 과정을 가까이서 보면 이게 제대로 되는 건가 싶은 그런 언발란스 상황에서 오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누구나 떠올릴 만한 대중적이고 일상적인 공간, 특별한 직업을 가진 저자, 따뜻한 문체와 번뜩이는 재치와 위트, 맛있는 음료와 파트너, 그리고 늘 바뀌는 주변 이용객들의 다양한 에피소드가 어우러져 편안하고 즐겁고 웃음 짓게 만드는 에세이입니다. 뭔가 특별히 배우거나 교훈이 없어도 읽고 나면 기분 좋아지는 책이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입니다. 이 분이 쓰신 다른 에세이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또 잊을 만하면 찾아서 읽어봐야 될 거 같습니다. 기분 좋은 책을 만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