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게 좋아? 사실 난 뭐든지 될 수 있어 (하트시그널3 이가흔)
연애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남자는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여자와 마주해 식사를 한다. 남자는 여자와의 지난 데이트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날은 좀 더 성숙해 보였는데"
그러자 화면의 '당돌'이라는 자막과 함께 여자는 이렇게 답한다.
"성숙한 게 좋아? 사실 난 뭐든지 될 수 있다."
나 역시도 무수히 많은 상황들 앞에서 '뭐든지 될 수 있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다짐을 하며 살아온 것 같다.
삶에서 마주한 여러 과제 앞에서, 직장에서 주어진 일 앞에서, 연인과 친구들 앞에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단지 나의 지난 모습과 닮아서 하트시그널 속 장면을 찾아보게 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저 장면으로 나를 이끌었던 건 화면 속 '당돌'이라는 자막이었다.
당돌하다 : 꺼리거나 어려워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이 올차고 다부지다(표준국어대사전)
당돌하다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런 뜻을 가지고 있다.
꺼리거나 어려워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이'
상대방을 위해 꺼리거나 어려워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이 나를 바꿀 수 있는 것. 그런 모습이 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자신감 혹은 그저 그렇게 하고 싶다는 마음.
어쩌면 그런 마음이 내가 생각하는 '사랑'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삶의 태도를 고민하게 된 장면이 연애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것이 어색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로맨틱한 사랑이야 말로 우리의 삶에 가득 찬 사랑들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니까.
삶에서 당돌하게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마주하고 싶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삶에서 마주한 우리 관계에서 부족했던 것은 마음의 크기가 아니라 당돌한 태도였음을 이제는 알 것도 같으니까. 어쩌면 마음의 크기가 태도를 만드는 데 영향을 줄지는 몰라도 당신을 위해서라면 이 일을 위해서라면 조금의 고민도 없이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마주하고 싶다.
당돌한 사람이 되고 싶다.